오래된 산업화의 성지에 예술가와 창업가가 새로운 숨결 불어넣다
군중 속의 고독이 더 외로운 법이다. 을지로 대로변의 화려한 빌딩 뒷길에는 한때 제조업의 메카였던 구도심의 모습이 존재한다. 을지로는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호황기를 맞았던 곳이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산업의 흐름이 바뀌면서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손님이 찾지 않을 것 같던 낡은 산업화의 골목에 최근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이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다. 화려함과 거리가 먼 서울의 중심,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을 만나러 을지로로 향했다.
◆인쇄소 골목에서 만나는 새로움
을지로3가역에 내리자 낡은 간판을 건 인쇄소·철공소·자재상이 여전히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쇄소 골목으로 들어가자 짐을 나르는 사람들과 트럭이 바쁘게 지나갔다. 의구심을 갖고 향한 곳은 을지로 뒷골목을 변화시킨 첫 시도 격인 ‘호텔수선화’다.
지도상으로는 호텔수선화가 맞는데 어디서도 간판을 볼 수 없었다. ‘명진사’라는 커다란 간판 앞을 몇 번이나 오가다 계단 가까이에 있는 ‘호텔수선화’의 작은 표지판을 보고 겨우 계단을 올랐다. 호텔수선화를 찾기 위해 작정하고 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지나치는 게 당연해 보였다.
호텔수선화는 이름과 달리 세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작업실 겸 카페다. 지금은 다른 두 디자이너가 새로운 지역에 쇼룸을 차리면서 주얼리 디자이너 원혜림 대표가 혼자 운영하고 있다. 4층에 도착해 조심스레 철문을 여니 오래된 호텔 로비 같은 카운터와 빈티지한 조명이 반겨줬다. 낡은 건물 외관에 가려진 내부는 디자이너들의 독창적인 감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처음엔 카페로 대박 날 생각은 아니었어요. 주얼리·가방·의상 디자이너였던 친구 세 명이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전시도 하고 월세도 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죠. 마침 을지로가 작업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중심점이었어요.” 을지로의 재탄생을 개척한 계기를 묻자 원 대표가 답했다.
임차료가 싼 것도 을지로에 터를 잡는 데 한몫했다. 원 대표는 을지로3가 상가가 대부분이 권리금이나 월세 인상이 없다고 말했다.
간판은 일부러 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업이 바빠 간판 다는 걸 미루고 있었는데 오히려 ‘숨은 카페’로 유명해졌다고 했다. 지금은 간판이 없는 게 호텔수선화를 비롯한 을지로 핫 플레이스의 정체성이 됐다. 호텔수선화가 자리 잡자 원 대표의 예술가 친구들도 하나둘 을지로로 들어왔다.
작업도 하고 교류도 하려고 만든 카페지만 지금은 평일 저녁에도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파티나 화장품 회사의 신제품 론칭 행사를 위한 대관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한 달 전에도 옆 골목에 카페가 생겼어요. 요즘은 찾아오는 이들이 한 곳만 들르지 않고 ‘을지로 투어’를 하러 오더라구요. 그만큼 을지로에도 콘텐츠가 많아졌다는 뜻이겠죠.”
◆저렴한 임대료가 젊은 창업가 끌어들여 원 대표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른 골목에 자리한 ‘십분의 일’을 찾아갔다. 을지로의 여느 가게들처럼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방문할 리 없는 곳에 자리했지만 금세 ‘힙스터’들의 성지가 됐다.
‘십분의 일’은 친구 10명이 ‘청년 아로파’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이 언론사 스터디를 함께하던 친구다. 월급의 10분의 1씩 모아 만들었다고 해서 가게 이름도 십분의 일이다. 을지로에 자리 잡은 이유는 역시 저렴한 임차료 때문이었다.
드라마 PD로 일하던 이현우 십분의 일 대표는 ‘문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반전 매력’이 을지로 상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십분의 일도 손님들로 가득 찼다.
십분의 일에서 나와 익선동을 지금의 핫 플레이스로 만든 주인공을 만나러 갔다. 익선동에서 카페 ‘식물’을 운영하고 있는 루이스 박이다. 루이스 박은 런던을 베이스로 하는 포토그래퍼 겸 아트디렉터였다. 원 대표와 친분이 있어 호텔수선화의 디렉팅도 맡았다. 카페 겸 술집인 ‘잔’은 2017년에 그가 을지로에 문을 연 둘째 공간이다. 익선동에 이어 을지로까지, 루이스 박은 뜨는 동네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잔’을 찾아 골뱅이 골목 어느 빌딩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자 바깥과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벽지마저 디자이너의 작품인 ‘잔’은 사람과 사물, 공간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가득 묻어나왔다. 벽을 뚫고 지나가는 테이블과 벽 사이로 언뜻 보이는 타인의 동작까지. 삶과 공간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그가 만든 디테일이 눈에 띄었다.
루이스 박에게 을지로가 뜨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을지로는 쿨한 동네가 될 수밖에 없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아티스트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저렴한 임차료, 서울 중심부라는 편리한 교통편, 신도시에 질린 젊은이들이 구도심으로 눈을 돌리는 트렌드까지…. 을지로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런던이나 독일 등 한국보다 좀 더 빠른 문화 선진국에 살았기 때문에 한 지역이 문화적으로 발전되는 요소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다만 다른 점은 한국은 구도심의 재생도 너무 빨리 이뤄져요. 익선동이 그 예죠.” 아직 구도심의 낡은 껍질을 벗지 못한 건물은 을지로 역사를 그대로 함축하고 있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핫 플레이스’가 모여 있는 을지로3가 수표동 일대의 88.2%가 보수나 재건축이 필요한 노후·불량 건물이다.
1층에는 인쇄소나 노포가 자리하고 있고 젊은 상가들은 3층이나 4층에 터를 잡고 있다. 다른 골목상권과 달리 중심이 되는 거리도 없다.
을지로3가의 핫한 가게를 탐방하려면 지도를 보고 골목골목을 열심히 찾아다녀야 한다. 간판도 없어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음악이나 조명이 새어나오는 곳을 눈치껏 알아채야 한다.
루이스 박은 을지로가 홍콩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표현했다. “을지로는 옛날 홍콩 영화에 나오는 도시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곳이에요. 을지로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나면 다시 밀물처럼 을지로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찾아와요. 허름한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는 감각적인 가게들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판타지 같은 공간이죠.” ◆예술가와 장인의 기묘한 동거
을지로3가를 뒤로한 채 세운상가가 있는 을지로4가로 향했다. 을지로3가가 젊은 창업가들이 자생적으로 조성한 상권이라면 을지로4가는 민·관 협업을 통해 활력을 찾고 있었다.
1970년대 세운상가는 제조 산업의 중심지였다.
‘세운상가 한 바퀴만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업화 시대를 대표했던 상징물이었다. 용산전자상가의 설립과 강남 개발 등의 요인으로 상인과 주민 대부분이 떠나고 1990년대부터 슬럼화가 계속됐다. 잊혀 가던 세운상가와 그 아래 산림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9월 세운상가 활성화를 목표로 한 서울시의 ‘다시·세운’ 프로젝트가 일부 마무리됐다. 철거될 뻔했던 세운상가를 존치하고 제조 산업의 토대 위에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처를 조성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상가 건물 양 옆에 정비한 보행 데크에서 유리로 된 ‘세운 메이커스 큐브’를 볼 수 있었다.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는 17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호랑이 카페, 그린다방 등 서울 중구청이 지원하는 청년 상인들의 카페와 식당은 젊은 관광객들이 세운상가를 방문하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전자 부품 점포가 대부분이던 세운상가 곳곳에서 문화 전시 공간도 만날 수 있었다. 세운상가 4층에 입주한 콜론비아츠에서는 심승욱 작가의 작품 전시가 한창이다.
세운상가에서 나와 아래에 있는 산림동 골목길로 향했다.
산림동은 조선시대부터 자리를 지키던 옛길부터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까지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듯한 골목은 낯설지만 발걸음을 빨아들이는 묘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값비싼 임대료에 방황하던 예술가들과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강철을 연마했던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펼쳐졌다. 낡은 철공소가 즐비하던 산림동에 예술가들의 발길이 이어진 데에는 중구청의 노력이 있었다.
중구청은 2015년부터 을지로 디자인·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해 예술과 상생을 통한 도시 재생을 계획했다. 이 프로젝트는 청년 예술팀을 선정해 을지로 곳곳에 빈집과 공간을 임대해 청년 예술가의 작업실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을지로에 둥지를 튼 7팀의 청년 예술가들은 회화·도예·공예·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작업실과 갤러리를 꾸며 을지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산림동에선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듣기 위해 R3028의 고대웅 작가를 만났다. R3028은 8명의 젊은 예술인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전시회를 열거나 동네 주민을 초청해 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고 작가는 산림동의 정체성을 ‘축적’이라고 정의했다. 산림동에 쌓여 있는 시간과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이웃 기술 장인들과 협업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고 작가가 기술 금속 장인과 협업해 완성한 ‘장인의 화원’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철의 소음이 잦아드는 저녁에는 골목길 마당에서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연다. 고 작가는 “예술을 통해 주민들과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R3028을 비롯해 7개 팀이 참여하고 있는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는 서울시 내에서도 도시재생의 우수사례로 꼽히고 있다.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이하숙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 이하숙 주무관은 “을지로 골목은 타일, 도기, 공구, 조명, 가구, 미싱, 철강 등이 한 곳에 밀집돼있어 상용화 되지 않은 부품이나 재료들을 구해야 하는 예술인들에게 좋은 입지조건”이라며 “지역 장인과의 협업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책 '골목길 자본론' 저자)
“을지로는 새로운 유형의 골목상권” 을지로 상권 취재에는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동행했다. 모 교수는 ‘골목 경제학자’로 유명하다. 도시 재생과 골목길 경제학 도시 재생과 골목길 경제학 전문가로 책 을 집필했다. 그에게 을지로 골목상권의 특징을 물었다.
Q. 을지로 상권을 익선동·연남동 등 다른 골목상권과 비교할 때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공간 디자인에서 차이가 큽니다. 연남동·삼청동·가로수길 등 기존의 골목상권은 주거지 인근에 형성된 근린 상권이나 기존 상권의 배후 상권이 새롭게 활성화된 지역이에요. 을지로는 이와 달리 주거지역이 아닌 도심 산업 지역에 형성된 상권이죠. 젊은 상가가 들어서고 있는 을지로3가는 산발적이고 분산적인 상가 구조예요.
익선동·경리단길·연남동 같이 하나의 중심 길이나 블록을 따라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도시 계획이 전혀 안 된 골목에 임대료가 저렴한 건물을 찾아 젊은 창업가들이 몰리다 보니 지금 같은 현상이 발생한 거죠. 다른 골목상권 같이 하나의 거리로 확장될 가능성이나 대규모 권역 상권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새로운 성격의 골목상권이라고 볼 수 있죠.”
Q.을지로 상권의 미래를 어떻게 보셨나요.
“을지로 상권이 매력적인 상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 공간 구조를 유지해야 합니다. 을지로4가 구역은 세운상가뿐만 아니라 오래된 적산가옥이 혼재돼 있고 1920년대 지은 고건축물도 많아요. 공간 디자인적으로 건축적인 가치나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젠트리피케이션보다 듀프리피케이션(재개발)을 막아야 할 것으로 보이고요. 오래된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한 후 건물 재생을 통해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논의가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Q. 듀프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무분별한 재건축을 자제해야 합니다. 정부는 문화재 지정으로 재개발과 재건축을 억제할 수 있고 상인과 건물주는 현재 공간에 창의적인 골목 장인과 가게를 유치함으로써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 이렇게 도시 재생을 통해 건물 가치가 높아지면 건물주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재개발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한경비즈니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