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화생 표본 수집 키트 국산화 성공…탄저백신 공급으로 생화학전 피해 최소화 앞장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북한은 생화학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13종의 맹독성 물질을 보유 중이다. 이 중 탄저균 등 5종을 무기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북한의 테러 등에 대비해 2004년부터 주한미군은 물론 15일 이상 한국에 체류하는 미군 가족에게 ‘탄저백신’ 등을 접종하고 있다.

영원과학은 탄저백신과 보툴리눔 치료제 등 생화학전에 대비한 치료제를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기업이다. 원거리 적외선 유독가스 탐지 식별 장비, 유독 물질 식별 장비, 말라리아균 등 질병 원인 병원체 식별 장비(PCR)도 공급한다. 화생방 상황 발생 시 현장의 시료를 채취해 후송하는 ‘화생 표본 수집 후송 키트’의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전영진 영원과학 대표는 “2002년 생화학 테러 등에 대비한 전문 장비 개발을 목표로 창업했다”며 “북한의 핵공격 등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 구축 등에 대해 정부 기관과 의논 중”이라고 말했다.
전영진 영원과학 대표 “왕 지키던 기미상궁, 이젠 키트가 대신하죠”
(약력) 1962년생. 1988년 인하대 고분자공학과 졸업. 1990년 영인과학 입사. 2002년 영원과학 대표(현). 사진=서범세 기자

▶창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 졸업 후 10여 년간 독극물 정밀 분석 기기 등을 취급하는 기업에서 일했습니다.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국내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화생방 테러 등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 기관과 일하게 되면서 관련 전문 장비 개발을 목표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2002년 10월 창업 이후 국군과 협의해 국내 최초 화생 표본 수집 후송 키트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생방 상황 발생 시 현장 오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일체의 도구를 모아 놓은 제품이죠.

국군 표준 장비로 선정돼 육해공군과 소방서 등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약 800만원에 달하는 미국산 제품을 한국 실정에 맞게 개선한 것으로 가격은 약 400만원 수준입니다. 생화학전 대비 특수 장비를 국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왕의 수라에 대해 기미상궁이 사전에 유독성 여부를 검사했다고 하죠. 음식을 직접 맛보거나 은으로 된 바늘을 음식물에 담가 색깔의 변화로 유독성 여부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현장에서 간단하게 음식물 안의 독극물 존재 유무를 검사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음식물 테러에 대비해 개발한 ‘음식물 독소 검사 키트’를 활용하면 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이 제품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용법이 간단해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음식물을 키트에 동봉된 스포이트 등을 이용해 일정량 통에 넣고 물과 혼합한 다음 변색 키트에 떨어뜨리면 결과가 바로 나와요.

변색 키트의 각 부분이 검은색으로 변하면 해당 독극물이 함유돼 있다는 뜻입니다. 가격은 키트 한 팩에 약 20만원입니다. 현장에서 신속 정확하게 청산가리(사이안화칼륨)·비소·중금속 등 30여 가지의 독극물 함유 여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생화학전 등에 대비한 치료제도 공급한다고요.

“탄저균을 이용한 테러 발생에 대비하고 상황 발생 시 증상을 치료하는 탄저백신을 국내에 공급 중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치료제 겸 백신으로 승인한 세계 유일의 의약품으로, 미국 정부가 개발해 일반 기업에서 생산 중인 제품입니다.

탄저균은 흔히 백색가루로 불립니다. 공기에 분산된 탄저균을 흡입하면 폐로 들어간 균이 5일 내지 1주일 뒤 깨어나 인체에 독소를 배출합니다. 치사율이 약 90% 정도 되는 치명적인 균입니다. 하지만 탄저균을 흡입한 뒤에도 탄저백신을 주사하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가격은 1병에 60만원 정도 합니다. 예방용으로는 10명분, 치료용으로는 최대 3명에게 사용할 수 있고요. 국가 기관에서 유사시 활용하기 위해 비축해 둔 상황입니다.”

▶다른 치료제는 없습니까.

“FDA에서 승인한 유일한 의약품인 미국산 보툴리눔 치료제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자연산 독성 물질인 보툴리눔은 독성이 가장 강력합니다. 북한에서 다연장포나 장사정포에서 실어 한국 상공에 살포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생화학물질 중 하나로 알려져 있죠. 살포된 보툴리눔을 흡입하면 입과 기도가 마비된 후 폐가 정지하게 됩니다.

탄저균은 약 1주일간의 치료 가능 기간이 있지만 보툴리눔은 마시면 곧바로 인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폐 등이 정지되기 전에 이 치료제를 주사하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1병당 1명에게만 사용할 수 있고 600만원짜리 고가의 치료제입니다. 이 의약품 역시 법적으로 정부 기관에서만 비축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개발 중인 제품도 있다고요.

“탄저균·페스트·천연두 등의 생화학 무기 외에 유행성출혈열을 유발하는 한탄바이러스 등이나 식중독균·말라리아균·조류독감 바이러스 등을 검사하려면 최종적으로 생물 진단 장비(PCR)를 활용해야 합니다.

동업 관계인 국내 회사가 개발한 제품인데요. 대당 3500만원으로 미국산(9000만원)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이 장비는 민감해 전문가들이 주로 사용합니다.

휴대해 현장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제품을 개발 중입니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발생 현장 등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제품으로 보면 됩니다.

현재 국방부와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고요. 내년 안에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유사시 북한 핵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남한에서 폭발한다면 방사능 물질을 어떻게 빨리 제거할 것인지와 관련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응 방안 등을 정부 기관과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사시 사태 수습을 위해서는 핵 오염 구역 등을 신속히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주민을 대피시키고 해당 지역을 무핵화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원전 사고 등이 발생하면 항공기에 핵 탐지 장비를 탑재해 오염 구간을 파악합니다.

영원과학은 해당 장비를 정부 기관에 공급, 만약 국내에서 불법적으로 핵물질이 운반된다면 신속 정확한 탐지 및 식별을 통해 대책 마련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장비 운영 기관을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습니다만 불순분자가 소형 핵무기 등을 국내에 반입했을 때 신속히 이동 경로를 파악해 체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