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이 펼치는 비즈니스 ‘패권 전략’…시대 변화를 정확히 짚는 게 핵심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대기업에 종속된 납품 업체의 설움.’ 매우 익숙한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에 부품 소재를 공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억울한 계약 조건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그런데 꼭 이 말이 항상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제조업체에 운영체제(OS)를 제공하는 납품 업체다. 인텔도 마찬가지로 중앙처리장치(CPU) 칩을 공급하는 납품 업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억울한 을’로 보지 않는다.
PC의 사용자와 제조업체,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앱)과 주변 기기 관련 업체의 관계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가 익숙한 사용자들은 애써 리눅스 같은 다른 OS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아무리 좋은 앱이나 주변 기기도 윈도에 맞춰야 한다.
인텔은 CPU 칩을 만드는 경쟁자들이 온라인 판매를 통해 할인으로 공세를 펴자 ‘인텔-인사이드(Intel-inside)’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자사의 CPU를 채용한 기기는 ‘인텔-인사이드’라는 문구를 소비자에게 항상 노출시켜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용자들이 ‘그래도 CPU는 인텔’이라는 생각을 계속 갖게 하려는 전략이다.
물론 세상은 만만치 않다. PC보다 스마트폰을 더 자주 보는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이제 애플과 구글이 ‘갑’의 위치를 키워 가고 있다. 세상 바뀌는 줄 모르고 갑의 힘만 누리면 어느 날 갑자기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얘기다. (사진) 세게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 2018’이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인텔 전시장에서 참관객들이 인텔의 5G 터널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업에 ‘만민 평등’은 없다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계속 지키려면 더 많은 투입이 필요하고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무턱대고 공평하고 넉넉하게 마진을 나눌 수도 없다.
전쟁터에 나선 영주의 삶은 조용히 식구를 챙기면 되는 농민과 다르다. 물려받아 떵떵거리는 금수저의 갑질이 밉다고 모든 사업에 만민 평등을 들이댈 수는 없다. 그럴 수단도 없다.
고대 제국의 전쟁은 무역과 금융의 패권을 얻기 위한 경쟁이었다. 지금도 원자력 분야의 핵 협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통신·에너지 분야에서 자국 업체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게임을 만들거나 선택한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슈퍼 갑이 된다. 정보기술(IT) 생태계를 주도하는 애플, 세계인의 뇌신경계를 장악해 가는 구글도 마찬가지다.
그만 못하지만 IT 세상의 기초 소재인 반도체를 손에 쥐고 세계 IT 제조업체를 쥐락펴락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나름의 갑이다.
그러면 상세 설계대로 물량을 받아 생산하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업체는 서러울까. 애플의 협력 업체인 폭스콘은 연매출 170조원대의 세계적 기업이 됐다.
사업 생태계에서 최상위 패권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프리카 초원만 살펴봐도 그렇다.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는 물론 코끼리와 하마도 자기 자리를 찾아 생존하고 있다. 개도국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OEM 생산하는 회사도 쑥쑥 크는 상황이다.
세계 최강대국만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아니다. 어설픈 교수나 전문가들만 브랜드 마케팅만이 살길이라고 요란했다는 얘기다.
◆플랫폼은 곧 사업의 주도권
자신의 사업 방향을 중심으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플랫폼 전략은 사업의 주도권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 제품들을 생각해 보자. 카메라·시계·수첩·계산기·MP3·녹음기 등은 특별한 기능을 가진 것을 제외하곤 스마트폰 사업에 흡수됐다. 왜 카메라에 통신 기능을 부착하지 않고 카메라를 스마트폰에 넣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신 기기를 카메라보다 훨씬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통신 기기가 사용자 환경(UI)을 장악해 플랫폼 효과를 누린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생활 속에서 다양한 의미와 사연을 갖게 될수록 이런 효과는 더욱 강해진다. 이것이 사용자 체험(UX)의 힘이다.
스마트폰 회사가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 장면에 간접광고(PPL) 협찬을 쏟아붓는 이유다. 플랫폼 사업자는 사용자와 사업자가 맞물린 사업 생태계에서 갑의 주도권을 갖는다.
세상에 영원한 패권은 없다. 부와 화려함의 상징이던 백화점은 고급 브랜드의 독자적 매장과 마케팅, 인터넷 쇼핑, 대형마트, 아울렛 사이에 끼여 최고급 ‘명품관’을 제외하고는 여러 나라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고객과 판매자를 이어 주는 플랫폼 지위를 상실한 결과다.
자동차 회사의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애플과 구글은 IT를 활용해 기존 자동차를 사용자 정보를 바탕으로 도시 시설물과 교신, 최적 경로와 운행 모드를 조정하는 지능형 기기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자동차를 단순 운송수단이 아닌 휴식과 재미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이들의 전략이 실현되면 BMW나 현대차는 사용자 환경을 장악한 플랫폼 사업자의 지위를 잃고 구동장치를 납품하는 협력 업체가 될 수도 있다.
고객이 구동장치를 따로 알아서 선정하지 않는 이상 BMW나 현대차는 애플이나 구글이 주문하는 사양으로 만들어 납품하고 나름의 마진을 챙기는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체들이 최근 디자인을 강조하고 미술에 대한 후원을 크게 늘린 것도 UX와 UI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갑이 되는 세 가지 전략 포인트
그래서 사업의 세계에서 갑이 되려면 아래의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전략 포인트는 경쟁과 협력이 엇갈리는 사업 생태계의 구조를 읽고 자기 자리를 찾는 일이다. 애플이나 구글처럼 최고 지위의 주도권을 지향한다면 기존 생태계를 자신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패권 전략이 필요하다.
방송사에 불려가 출연하는 신인 걸그룹이 아니라 ‘내 공연에 특별히 방송을 허락하는 슈퍼스타 나훈아’가 되는 셈이다.
사업 생태계가 세계적 범위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플랫폼 패권은 정말 어렵다. 삼성처럼 애플이 바꾼 세상에서 조금 더 안정적인 제품과 실속 있는 부품 협력으로 나름의 지위를 확보할 수도 있다. 폭스콘처럼 패권 사업자의 충실한 협력자로 실리를 얻을 수도 있다.
사업 생태계의 구조를 읽지 못하면 세상의 흐름을 부정하며 우기다가 몰락하게 된다.
둘째 전략 포인트는 돈과 사람의 흐름을 잡는 일이다. 온라인 마켓을 생각해 보자. 구매자와 판매자가 모여 마켓이 확대돼야만 사업 가치가 커진다. 여기에 배송·보험·결합 마케팅 등 다른 사업이 맞물려 가치가 더해지고 또한 구매자와 판매자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작동해야만 사업의 주도권이 확보된다.
이런 원리는 동대문시장연합회에서 교통정리와 청소를 잘하고 먹거리·볼거리를 확보해 구매 고객과 입점 업체를 끌어들이고 배송·부품·창고 등 관련 사업도 모이게 한 것과 같다. 하지만 온라인 경제의 특성 때문에 쏠림 현상이 훨씬 빠르다 보니 앞선 주자가 절대 유리한 승자 독식(winner-take-all)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무료로(혹은 보조금을 써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는 정책이 자주 시도되는데 가격은 원가에 ‘적정 마진’을 붙여 정한다는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일반 사용자에게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출판 사업자에게는 유료 정책을 펴는 어도비처럼 공짜의 이면에는 따로 돈이 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를 머니 사이드(money-side)라고 한다. 무조건 공짜만 고집하다간 망한다.
셋째 전략 포인트는 세상의 변화를 읽고 패권의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사업 가치는 ‘장인의 땀방울’에서 만들어지지만 다양한 사업이 연결되는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 온라인 마켓을 넘어 관련된 사용자 정보와 정보처리 역량을 바탕으로 혁신적 배송과 미디어 서비스를 전개하는 아마존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업 분야에 걸친 변화와 연결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IT의 발달로 변화와 연결이 더욱 진전되는 만큼 경영자로선 세상만사를 이해하는 통섭의 노력이 절실해진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은 사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업 생태계의 변화에서 전략적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 ‘갑이 되는 전략’은 불가능하다. 사업 패권의 핵심인 플랫폼은 원래 다른 영역을 이어주면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융합과 통섭의 매개체가 아닌가.
사업이 힘들다고 막연하게 세상 탓하며 너그러운 상생 협력을 기대하기 전에 사업의 세계에서 갑의 지위가 무엇인지 알고 도전해 보자는 뜻이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