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테슬라는 왜 위기인가
[한경비즈니스=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혁신가 엘론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자동차 산업을 뒤흔들 기대주로 촉망 받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테슬라가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태로울 것이라는 주장도 줄을 잇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를 넘어서던 테슬라의 주가 역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테슬라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바뀐 표면적 이유는 바로 보급형 전기차 모델3의 출시 지연이다. 모델3는 프리미엄 전기차를 만들던 테슬라가 대중 시장으로 판매 전선을 넓히기 위해 준비한 작품이었다.

모델3가 공개되자 많은 투자자들은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테슬라가 빠르게 도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기대감이 커지면서 테슬라의 주가도 무섭게 올랐다.

하지만 모델3는 뜻밖에도 양산 단계에서 큰 암초를 만났다. 모델3는 공개된 후 40만 명이 넘는 고객들의 예약을 받을 정도로 선풍적 관심을 끌었지만 작년 3분기에 고작 260대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테슬라는 고객들에게 조속한 출시를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당초 테슬라는 모델3가 작년 12월부터 대량생산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올해로 연기한다고 설명했다. 출시 지연의 주된 원인은 배터리 조립 공정의 이상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른 기업보다 뒤처진 자동화 공정 등 테슬라의 근본적 생산 문제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는 차세대 전기트럭 세미(Semi)를 발표했다. 테슬라는 자사의 첫째 트럭 제품 세미가 한 번 충전으로 무려 800km를 달릴 수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모델3로 촉발된 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모델3처럼 투자자나 대중의 기대치만 올려놓으려는 전략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거셌다. 실제 양산이 어려운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장밋빛 전망만 제시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선풍적 인기를 불러일으켰던 테슬라의 제품들은 대체로 일반 소비자보다 소수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전기차였다. 다른 자동차 기업과 달리 대량생산에 대한 고려가 크지 않았고 출시가 다소 지연되더라도 심각한 고객 반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잘나가던 테슬라는 왜 위기인가
◆대중차 모델3, 분기에 고작 260대 생산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자동차 산업을 석권하기 위해서는 100여 년 전 헨리 포드가 모델T를 만들었듯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테슬라는 소수 부자들을 위한 자동차 기업으로 남게 될 것이고 흑자 경영도 상당히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모델3를 기반으로 자동차 산업의 선두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큰 실망으로 바뀌었다.

테슬라의 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매일 80억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는 우울한 언론 보도도 나왔다.

테슬라 역시 최근 자동화 생산 설비 기업 퍼빅스(Perbix)를 인수하는 등 생산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지만 장기적 사태로 이어질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테슬라가 다른 자동차 기업과 전격적인 협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했다.

시야를 돌려 보면 이는 비단 테슬라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첨단 기술을 자랑하면서 신제품을 공개한 많은 정보기술(IT) 기업 역시 정작 양산 단계에서 큰 곤경을 치르곤 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이끄는 애플은 핵심 부품 설계와 디자인·소프트웨어만 개발하고 대부분의 부품 생산, 세트 조립은 외부에 위탁하기 때문에 다른 기업보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애플 역시 제품 출시 일정 혼선과 이따금 불거지는 품질 문제로 적지 않은 잡음을 겪었다.

인터넷 기업 구글은 스마트 글래스와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하드웨어 영역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있다. 특히 구글은 최근 HTC의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하고 자체 설계한 스마트폰 픽셀2를 선보이는 등 스마트폰 사업 재도전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 가상현실(VR) 스타트업 오큘러스 인수 후 VR 헤드셋 개발에 적극적인 페이스북이나 중국의 알리바바·텐센트 등이 인공지능(AI) 스피커와 같은 다양한 하드웨어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기업들에 하드웨어는 매우 낯선 분야다. 세련된 제품 기획과 첨단 기술 확보만으로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수 없다. 본격적인 생산 단계에서는 제품 개발과 전혀 다른 이슈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빠르게 생산하는 한편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한편 판매 추이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될 때 어떻게 재고를 관리할지에 대한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하드웨어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하드웨어 기술이 발전할수록 포함하는 부품과 공정의 수 그리고 이와 연관된 업체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 각종 문제를 야기할 위험도 크다. 아무리 생산 공급망 관리(SCM)에 정통한 기업도 이 때문에 신제품 출시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겪기도 한다.
잘나가던 테슬라는 왜 위기인가
◆난관에 부닥친 신생 하드웨어 기업

하드웨어 사업에 새롭게 뛰어든 많은 기업들 역시 이 때문에 큰 난관에 부닥치는 사례가 많았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빠르게 제품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기능을 수정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는 사업의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단시간에 해결하기도 어렵다. 결국 기업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혹은 외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트렌드를 주도하는 구글 역시 초기에는 독자적으로 자동차를 제작하려고 했지만 자동차 제조 역량의 한계를 깨닫고 크라이슬러 등 여러 자동차 기업들과의 협력으로 선회했다.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AI 등 첨단 IT 트렌드가 여러 산업에 걸쳐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원활한 제조 공정 및 안정적 품질관리라는 제조업의 기본이 필요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특히 하드웨어와 연관 깊은 사업일수록 신제품을 차질 없이 생산하기 위한 치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제품의 특징은 물론 가격과 품질 그리고 생산량 등 서로 다른 요인들을 유기적으로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글로벌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소프트웨어·하드웨어 등 다양한 기술이 혼재되는 비즈니스가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고 각 영역 간 경계도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하지만 생산과 품질을 안정적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조업의 역량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핵심적으로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테슬라가 겪고 있는 문제는 그 어느 기업이라도 직면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많은 기업들의 주요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