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 그만두고 2002년 사회연대은행 세워…20년 임팩트 금융 '외길'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사주에게 사납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는 택시가 있다. 출자금을 분담해 조합원이 되면 이익을 배당받아 택시 수입을 조합이 관리하는 구조다.
택시 운전사가 주인이 되니 수익이 느는 것은 물론 난폭 운전도 줄었다. 2015년 7월 14일 출범한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쿱택시’다.
8등급 이하 저신용자와 신용 불량자 37명도 그해 10월 쿱택시의 조합원이 됐다. 택시가 아니면 생계를 이을 수 없지만 신용 등급이 낮아 대부 업체에서도 돈을 빌리기 어려웠던 이들이다. 37명에게 삶의 기회를 준 것은 무담보·무보증으로 10억원을 빌려준 한국사회투자였다.
한국사회투자는 금융 소외와 사회·환경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기업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재단법인이다.
이종수(64) 이사장은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매개체로 임팩트 금융을 활용했다. 그는 2002년 사회연대은행을 설립해 금융 소외 계층에게 소액 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대출해 자활의 기반을 닦아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개인 신용) 사업을 펼쳐 왔다.
2012년에는 주기만 하는 복지를 넘어 선순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사회투자를 신설했다. 서울시 충무로에 있는 한국사회투자 사무실에서 ‘따뜻한 금융인’ 이종수 이사장을 만났다.
-최근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실험 단계였다면 올해를 기점으로 임팩트 금융이 제2의 도약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사회문제가 점점 많아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최근의 사회문제들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어려워요. 2008년 금융 위기가 방아쇠를 당겼고 한국에도 관련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임팩트 투자에 대한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금융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거죠.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봅니다.”
-언제부터 임팩트 금융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해외 은행에서 일하다가 1999년 귀국길에 올랐어요. 그때가 1997년 외환위기 시기였죠.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어떤 이는 목숨을 던졌어요. 이들의 패자부활전을 위해 개인신용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사회연대은행을 만들고 10년 운영했죠. 그런데 한계를 느꼈어요. 우리 사회에 닥친 모든 문제들이 곪아터지면 끝은 ‘빈곤’으로 귀결되는데 포용적 금융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죠. 그래서 2012년 한국사회투자를 설립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어느덧 20년이네요.”
-임팩트 금융에 끌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당동 무허가 철거민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부조리한 세상에 좌절하고 분노하던 시기였죠.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갔지만 2학년 때 유인물을 만들어 돌리다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1심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고 그곳에서 각기 죄목이 다른 죄수들과 만났어요. 그때 내 가난은 가난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이들을 위해 살아야지 생각하고 복학 후 구로공단에서 열심히 야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취업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신원 조회를 하지 않는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어요. 미국계 은행에 입사하니 돈을 정말 많이 주더라고요. 일도 바쁘고 다 잊고 살았죠. 그러다가 1997년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 내전이 발발했어요. 폐허가 된 프놈펜 시내에서 오랜 내전에 지친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봤어요. 20년 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수많은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보람 있던 사업은 ‘쿱택시’고요. 그 외 사회주택 관련 프로젝트들을 30개 정도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현금흐름이 눈에 보이다 보니 투자 유치도 비교적 수월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줘 기억에 남습니다. 소셜 벤처 입주센터인 헤이그라운드도 우리가 투자했는데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공익에 수익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직 한국은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데 해외는 다릅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에만 투자하는 ‘소셜뱅크’가 40개 정도 있는데 이들과 기존 은행의 수익률을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한국사회투자는 서울시로부터 500억원을 받아 13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1~2개 외에는 모두 대출금을 무리 없이 잘 갚고 있죠. 단순히 자금을 빌려주는 은행과 달리 임팩트 투자는 ‘관계 금융’이란 점에서 오히려 밀착 관리를 통해 해당 프로젝트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죠.”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역시 재원 마련입니다. 임팩트 투자가 활성화되려면 민간에서 자금이 조성돼야 하는데 규모가 매우 작은 편입니다. 정부 재원을 확대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민간 재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민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먼저 임팩트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하고요. 둘째는 기업과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법제도가 갖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기부하면 세금 혜택을 주듯이 임팩트 투자 시에도 세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법 정비에 나서야겠죠. 마지막으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연탄을 나르고 김장을 담그는 활동도 좋지만 단순히 주기만 하는 기부만으로는 안 됩니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임팩트 금융으로 옮겨올 수 있다면 민간 재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겠죠.”
-이사장님의 최종 목표도 궁금합니다.
“임팩트 투자를 통해 서울 근교 작은 섬에 농어촌 지역 개발을 통한 활성화 모델을 만들려고 합니다. 식품 가공 공장을 지어 젊은이들을 유입하고 원재료를 재배해 어르신들이 수익을 얻는 구조죠. 제대로 된 요양병원도 설립해 퇴직한 60대에게 요양보호사 일자리도 마련하고요. 제1의 모델이 잘 만들어지면 다른 지역에 전파할 수도 있겠죠. 어르신들이 존엄하게 살다 가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제 꿈이 될 것 같습니다.”
◆약력
1954년생. 1979년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2003년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1979년 체이스맨해튼은행 입사. 2001년 에이온코리아 부사장·사장. 2002년 사회연대은행 대표상임이사. 2012년 한국사회투자 이사장(현).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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