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주행·차량 공유 등 신기술 투자에 사활
- 전문가들 “추가 지원 합의돼도 한시적일뿐”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제너럴모터스(GM)그룹이 매년 생산 물량을 줄이던 한국GM 군산 공장의 폐쇄를 공식화했다. 매년 연말이면 반복되던 ‘한국GM의 철수설’도 현실이 될 수 있는 분위기다. GM은 최근 3년 동안 한국GM의 누적 적자가 약 2조원에 달한다며 5000억원 이상의 공적자금 투입과 세제 혜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설령 정부와의 협상에 성공해 남는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한국GM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든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GM, 결국은 한국시장 떠난다?
◆ 한국 시장 ‘철수 카드’ 꺼낸 든 GM

GM그룹이 ‘한국GM 철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단순한 압박용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이 엿보인다.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실제로 철수를 감행할 태세다.

GM그룹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스타일이 그렇다. GM 생산직 인턴으로 시작해 GM의 CEO가 된 그의 협상 유형은 한마디로 철저한 성과 중심형이다.

2014년 그의 취임 이후 GM은 러시아·태국·인도네시아·유럽·인도·아프리카에서 철수했다. 세계 곳곳에서 ‘먹튀’ 논란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장에서 가차 없이 철수했다.

특히 호주에서는 12년 동안 무려 1조7000억원을 지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호주 정부로부터 추가 지원 요청을 거절당하자 69년 동안 운영된 호주 홀덴 공장을 폐쇄해 버렸다.

아직 한국GM은 철수보다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을 우선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GM그룹이 보여준 한국GM 철수 압박은 ‘CEO의 철수 의지 표명→군산 공장 폐쇄→인력 구조조정→유상증자 요구→신차 배정 계획 발표→매각 의사 타진’이다. GM은 요구 사항을 얻어내기 위해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GM, 결국은 한국시장 떠난다?
◆ 군산 공장 폐쇄 이어 완전 철수도 시사

사실 한국GM의 군산 공장 폐쇄 가능성과 한국GM의 완전 철수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왔다. 군산 공장 폐쇄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2013년부터다.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차량 판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군산 공장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3년 14만5000대, 2014년 8만4000대, 2015년 7만 대, 2016년 3만4000대, 2017년(추정치) 3만8000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GM 측은 매년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진행해 군산 공장 노동자 수를 매년 줄여 왔다. 2013년 3464명, 2014년 3128명, 2015년 2376명, 2016년 2210명, 2017년 2044명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군산 공장에서 야심차게 생산한 ‘올 뉴 크루즈’ 차량 판매가 부진하면서 공장 폐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지난해 1월 출시된 신형 ‘올 뉴 크루즈’는 내수 시장에서 월 2000~3000대 판매를 기대했지만 지난해 총 1만554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신차가 출시됐는데도 2016년(1만847대)보다 오히려 2.7% 판매가 감소한 것이다. 크루즈를 통해 전년(18만275대)보다 7.6% 증가한 19만 4000대의 내수 판매 목표를 달성하겠다던 한국GM의 계획도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판매가 26.6% 줄었다.

크루즈의 부진은 즉각 군산 공장의 생산량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군산 공장에서 생산한 크루즈는 2만3000여 대에 불과했다. 차가 팔리지 않으면서 공장 가동률이 20% 아래까지 떨어지게 됐다.

군산 공장의 생산량 하락은 폐쇄의 결정적 단초가 됐다. 바라 CEO의 입을 통해 2월 6일 군산 공장 폐쇄 가능성이 거론됐고 이틀 뒤인 8일 군산 공장의 모든 공정이 중단됐다. 이어 2월 13일 올해 5월 말 군산 공장을 폐쇄한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군산 공장 폐쇄가 결정되면서 한국GM의 완전 철수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GM의 완전 철수설은 군산 공장 폐쇄 가능성 이야기가 나온 1년 뒤인 2014년부터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내수와 수출 부진,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 등 GM의 글로벌 사업 조정에 따른 영향과 과도한 차입 등으로 매년 적자가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한국GM의 영업이익은 2013년 1조865억원을 달성한 이후 2014년 마이너스 1486억원, 2015년 마이너스 5944억원, 2015년 마이너스 5312억원, 2016년 마이너스 4366억원, 2017년(추정치) 마이너스 8000억원 등 최근 4년간 2조5000억원 정도 적자를 봤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0월 한국GM의 자산 처분 거부권을 보유했던 KDB산업은행의 견제 장치가 소멸하면서 철수설이 더 확산됐다. 철수설이 공식적으로 직접 거론된 것은 2월 12일이다. GM은 군산 공장 폐쇄 결정을 밝히며 한국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이 자리에서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도 시사했다.
GM, 결국은 한국시장 떠난다?
◆ 정부, 연관 산업에 미칠 파장 우려

한국GM의 철수가 현실화하면 30여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GM과 직간접적으로 다양하게 얽힌 연관 산업마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한국GM에 대한 KDB산업은행의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GM의 정확한 경영 상태를 파악한 뒤 GM 본사가 내놓을 경영 정상화 방안 등을 검토해 지원 여부와 규모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GM은 실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하면서 조기에 완료되기를 희망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부와 KDB산업은행은 GM의 이런 의견 등을 감안해 통상 2~3개월이 소요되는 실사 기간을 1~2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이르면 3월 말, 늦어도 4월 중엔 정부와 KDB산업은행이 한국GM에 대한 실사 결과를 확보하게 된다. 실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이미 기초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정부는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주주·채권자·노동조합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인의 고통 분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 정상화 방안이라는 3대 원칙이 충족돼야만 지원 요청에 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GM, 결국은 한국시장 떠난다?
한국GM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정부 내에서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GM 본사가 한국GM 회생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정부 지원 여부와 지원 규모에 따라 한국 시장 잔류를 결정하고 지원이 끝나면 결국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GM은 일단 한국GM이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우리 정부가 추가 지원에 나서면 신차 2종을 배정해 한국에서의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한국GM이 그룹 내 중·소형차 개발을 전담하고 있어 GM이 전면 철수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GM은 결국 한국에서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유는 GM이 거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만 집중하고 돈이 안 되는 시장은 정리해 신사업을 위한 ‘실탄’을 최대한 확보하는 전략을 시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GM이 철수한 곳은 대부분이 오랜 기간 판매가 저조했던 지역이다. 쉐보레 브랜드 철수와 오펠 매각으로 손을 턴 유럽에선 고급차는 벤츠와 BMW 등에 밀리고 대규모 양산 차는 폭스바겐·르노·푸조시트로엥 등을 넘어서는데 실패했다. 1995년부터 진출한 인도에서는 22년간 점유율이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GM, 결국은 한국시장 떠난다?
◆ ‘철수 이후’ 준비 나서야

GM은 이들 시장에서 철수하며 마련한 자금으로 자율주행과 차량 공유 등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지나친 외형 확장과 방만 경영으로 도산 위기까지 몰렸던 GM은 독일과 일본 자동차 업체들보다 앞서 일찌감치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GM은 2016년 1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자율주행차 전문 기업인 크루즈오토메이션을 인수했고 자율주행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라이다’를 만드는 스트로브의 경영권도 손에 넣었다. 미국의 호출형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인 리프트에도 5억 달러를 투자했고 자체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메이븐도 설립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한국은 GM이 장기간 사업을 유지하는 데 불리한 측면이 많다.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고 그나마 판매량도 최근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GM의 국내 판매량은 전년 대비 26.6% 급감한 13만 대에 그쳤다.

신기술 개발이나 전기차 생산 등에서 별다른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다. 한국GM 노조와 정부는 GM에 전기차인 볼트EV의 일부 물량을 생산하도록 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하지만 아직 전체 판매에서 전기차의 비율이 낮은 데다 차량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 정부의 방침까지 고려하면 볼트EV의 생산 물량을 한국에 주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자율주행차 개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업체들이 포진한 실리콘밸리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야 해 한국이 일부 역할을 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GM 내에서 한국GM은 중소형차의 개발과 생산, 수출을 전담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형차는 대형 세단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픽업트럭 등에 비해 수익성이 낮다. 게다가 GM이 유럽에서 철수한 이후 수출도 감소세다. GM에 한국GM이 갖는 매력이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만약 한국GM이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크게 줄이고 4월로 예정된 신차 배정에서 새로운 차 생산을 맡게 되면 GM의 한국 철수설은 당분간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GM이 자율주행과 차량 공유 기업으로 대대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철수 가능성은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GM이 언급한 신차 2종의 배정은 결국 한국 정부의 추가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빅딜 카드’의 역할 정도만 하게 될 것”이라며 “만약 새롭게 배정된 신차의 글로벌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GM의 한국 철수설이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GM의 철수에 대비해 호주처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호주 정부 및 GM 협력 업체들은 GM의 호주 시장 철수를 대비해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덕분에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지위는 잃었지만 경제적 손실은 최소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