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러스·럭시, 택시업계 반발로 ‘사면초가’
규제에 가로막힌 카풀… 자율주행차 등장도 늦춘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자동차는 하루 중 약 4%의 시간만 도로를 달리고 나머지 96%는 주차장에 머물러 있다. ‘차량 공유’는 이 96%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차량 공유는 사업자가 소유한 차를 사용자들이 공유하는 ‘카셰어링’과 개인이 소유한 차를 택시처럼 활용하는 ‘라이드헤일링’으로 나뉜다. 라이드헤일링의 대표 주자인 ‘우버’는 2016년 기준 기업 가치만 680억 달러로, 세계 1위 스타트업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우버도 한국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국내에서는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자가용 승용차를 유상으로 타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 진출에 난관을 겪던 우버는 지난해 9월 ‘우버쉐어’를 통해 출퇴근 시간에만 운행할 수 있는 ‘카풀’로 돌파구를 찾았다. 국내에선 이미 스타트업 ‘풀러스’와 ‘럭시’가 지난해부터 활발한 카풀 서비스를 펼쳐 왔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규제에 가로막힌 카풀… 자율주행차 등장도 늦춘다
◆‘피인수’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

풀러스와 럭시가 처한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면초가’다. 시작은 풀러스의 ‘출퇴근 시간 선택제’였다. 카풀 점유율 1위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지난해 11월 도입했다.

유연근무로 다양해진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이 서비스는 풀러스 드라이버들이 본인의 출퇴근 시간을 원하는 대로 각각 4시간씩 설정해 하루 총 8시간, 1주일에 5일간 동승자를 태울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택시업계가 이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원하는 시간에 요금을 받고 사람을 태우는 출퇴근 시간 선택제가 기존 택시 영업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풀러스는 현행법상 ‘출퇴근 시간’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 없다고 말한다.

현행 여객 자동차 운수사업법 81조에 따르면 자가용 승용차를 운송용으로 유상 제공하거나 임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출퇴근 시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는 예외다. 카풀 스타트업들은 이 81조의 예외 사항에 따라 영업을 해왔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업계가 시끌시끌해지면서 풀러스와 럭시는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게 됐다. 지난해 8월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하고 각종 프로젝트를 함께할 예정이었던 현대차는 보유했던 럭시의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택시업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훨씬 거셌기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로서는 택시업계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럭시는 올해 2월 결국 카카오모빌리티에 인수됐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럭시의 지분 100%를 252억원에 인수했는데, 업계에서는 당초 럭시의 기업 가치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돌았다. 만약 카풀업에 드리운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더 높은 가격에 인수되는 것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택시는 타인끼리 밀폐된 공간(차량)에서 금전을 주고받는 행위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선결제는 물론 운전사와 손님이 서로의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도 있게 됐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우버와 리프트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카풀과 자율주행의 ‘상관관계’

반면 한국에서 풀러스와 럭시가 우버나 리프트처럼 성장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기존 택시 사업자의 이익을 보상해 줄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현상 유지를 하고 싶어 하는 정부의 시간 보내기로 카풀 스타트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지지부진한 사이 세계의 차량 공유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디디추싱’의 추진력은 무섭다. 2012년 설립된 이 기업은 우버차이나까지 인수하며 이미 중국 카풀 시장을 장악했다.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전기차와 충전소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차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차량 공유를 넘어 자동차 전 산업군으로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카풀 스타트업이 겪고 있는 난항이 향후 국내 모빌리티 산업군 전체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자동차는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이 돼 가고 있다. 제조사들 또한 이러한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국내에서 럭시와의 협업을 철회한 것과 대조적으로 동남아의 카풀 기업 ‘그랩’에 약 100억원대의 전략적 투자에 나섰다. 이 밖에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 등 세계적 자동차
제조사들이 우버·리프트·그랩에 투자하며 ‘카풀’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차량 공유는 자동차 산업의 최종 모델인 ‘자율주행차’와 결합한다면 더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차를 통해 카셰어링이 이뤄진다면 승객이 제일 두려워하는 운전자의 범죄 가능성이 전면 차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풀을 통해 축적한 교통 데이터는 자율주행차의 플랫폼 구축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랑 공유사에 ‘구애’를 보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은 결국 남(기계)이 운전하는 차량에 타는 것인데, 카풀을 통해 이러한 문화에 소비자가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자율주행 상용화의 첫걸음”이라고 카풀 기업의 가치를 고평가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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