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납골 공간으로 갈 곳 없는 유골
‘늙은 사회’ 일본에서는 죽음이 흔해지면서 사후 문제가 고령 인구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의 종활 산업 시장 규모는 적게는 2조 엔에서 많게는 5조 엔대로 분석된다. 소매업은 물론 서비스업까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 격화에 따른 가격 할인이 일상적이다. 유언·재산 정리부터 장례·묘지 준비까지 스스로 준비하는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그중 하나가 유골의 처리다. 예전에는 매장하거나 화장해도 납골당에 모시는 게 일반적이었고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사망 건수가 급증하면서 점차 토지는커녕 납골 공간마저 부족해진 상황이다.
갈 곳 잃은 유골은 지방자치단체에 넘쳐난다. 전국 각지에서 유골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이 본격화되는 추세다. 2017년엔 부인의 유골을 보관해 오던 70대 남성이 이사한 집에 둘 곳이 없자 역내의 코인 로커에 넣어두고 가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유골 방치는 다양하다. 인적 드문 매장 앞은 물론 경륜장·휴게소 등에서도 발견된다. 2017년까지 5년간 유골 방치로 경찰에 접수된 신고만 411건에 달한다.
지자체도 골칫거리다. 개별 지자체의 사회복지협의회 등에는 매일 본인 사후의 유골 수습을 부탁하는 문의가 잇따른다. 자녀가 있어도 소원하거나 형제가 많지만 누구에게도 부탁하고 싶지 않아서다.
가령 후쿠오카 사회복지협의회는 이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산골(散骨)과 납골 업무를 시작했다. 의뢰자의 90% 이상이 가족·친지가 있지만 민원은 늘어난다. 느슨한 가족 관계로 사후를 타인에게 맡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줌 유골의 엄중함조차 달라진 것이다.
유골 처리가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또 있다. 생전에 묘를 사 뒀는데도 정작 본인이 사후 상황이어서 어떤 회사와 어느 묘지를 계약했는지 불분명한 절차상의 문제 때문이다. 주변의 인지나 기록이 없다면 찾기가 쉽지 않다. 홀몸노인이라면 본인 이외에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악에는 묘를 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연고 낙인까지 찍힌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거나 의지할 이가 없어 본인이 외롭게 준비한 게 무연고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묘지 정보가 업자에게 전달되지 않은 결과다. 묘를 알아도 옮겨 줘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없을 때도 많다. 치매 등의 이유로 묘지의 존재를 본인도 망각할 때가 있다.
◆보관창고·제로장…새로운 유골 방식
고객과 업자의 연결 고리를 자처하는 지자체도 있다. 요코스카시는 이용자로부터 묘지 등 희망을 청취한 후 업자와의 계약까지 지켜본다. 이후 이용자가 사망하면 시가 신속히 장례 회사에 연락해 마지막 납골까지 챙겨주는 구조다.
묘지 회사는 도산하거나 폐업하는 곳도 있다. 대금을 치렀는데도 묘지 조성조차 안 돼 들어갈 수 없는 사례다. 가령 2016년 11월 후계 가족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묘지를 만들겠다는 모회사가 도산했다. 이 회사의 부채 총액은 7억 엔대다.
이 회사는 종활 산업의 인기에 편승해 공동묘지를 건설하는 등 새로운 영원(靈園)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이 와중에 가격 경쟁이 심화되자 도산했고 납부 비용도 변제할 수 없다고 밝혀 공분을 샀다.
피해자만 200명이 넘어 매스컴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자금 회수가 곤란해진 회사가 손쉽게 매출을 올리려고 묘지 완성 이전에 전액 납부를 유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례·납골 등을 행하는 비영리 민간단체(NPO)가 회원이 맡긴 예금통장에서 거액을 무단으로 인출한 사건도 있다. 돈은 NPO 간부가 개인 용도로 횡령했다.
갈 곳 없는 유골이 안치된 보관 창고는 증가세다. 90%는 신원이 밝혀진 일반 시민이다. 고인의 주소·이름을 알아도 어느 묘소를 가야 할지 확인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 공간에 함께 운반·보관된다. 사후 묘지를 수소문해 보지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묘지 정보가 주민표(주민등록증)·호적등본 등 공식 서류에 있을 리도 없다. 묘지를 알 수 없는 유골은 우선 지자체 관리의 납골당으로 옮겨진다. 납골당이 차면 유골은 항아리에서 꺼내 주머니로 옮겨지고 최종적으로는 무연묘지에 이장된다.
지자체는 특정 종교를 선택할 수 없어 제사는 금지된다. 무연묘지에 옮길 때 유골함과 함께 자주 발견되는 게 예금통장인데, 이는 생전에 죽음에 대해 준비했을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무연묘지다. 결국 논의 상대가 없다면 행정 창구와 소통하는 방법이 권유된다. 최근 일본에선 행정 창구에 악덕업자 정보가 취합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안타깝게도 장례 회사에 유골을 맡긴 후 연락이 두절된 유족도 있다. 유골을 우편으로 보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지만 그래서 나온 게 ‘제로장(0葬)’이다. 장례의식, 유골 보관, 묘지 조성 등 일체를 생략하는 형태다. 화장만으로 모든 게 끝난다.
유골 처리는 화장장에 위임한 후 일체 관여·수령하지 않는다. 유골은 계약한 절이나 묘지로 가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면 전문 처리 업자에게 넘겨진다. 뼈에서 분리된 귀금속을 재생한 후 유해 물질을 없애고 분립화해 특정 장소에 묻는다.
요컨대 제로장은 금전 부담으로의 해방을 뜻한다. 산골 대행도 인기다. 1건에 대략 2만5000엔이면 가족을 대신해 바다에 뿌려준다. 고객은 전화·메일로 신청한 후 유골을 우편으로 보내면 끝이다. 수령 후 작게 분쇄해 물에 녹는 종이에 싼 후 뿌린다.
지바의 모 회사는 개시 이후 2년간 1000건의 실적을 쌓았다. 기존 묘지의 철거·정리 서비스도 있다. 20만 엔대면 산골까지 포함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자녀나 가족에게 묘지 관리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해외에서 찾아보는 대안은
주목받는 ‘대만식 유골 처리법’
그러면 대안은 있을까. 대만처럼 화장 이후 산골까지 모두 무료로 지자체가 제공하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대만은 행정 주도로 사후 처리가 일괄·의뢰된다. 타이베이시는 합동 장례식장을 마련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액 무료인데다 장의를 간소화하고 환경에 친화적인 장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한몫했다.
합동 장례뿐만 아니라 묘지도 무료다. 수목장이든 산골이든 유골을 자연으로 회귀시키는 자연장이 대표적이다. 타이베이시의 사망자 5명 중 1명은 묘표조차 없는 자연장을 택한다.
시당국이 자연장을 대안으로 내놓은 이유는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과거처럼 매장이 계속되면 토지가 심각하게 부족해진다. 전통적인 매장 문화였던 대만에서 화장 비율이 90%를 웃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납골당 용량은 한계 상태에 이르렀다. 납골당이 용량 한계에 근접하면서 물량 부족 때문에 거액에 매매되거나 신규 건설의 주민 반대 등도 심각하다. 자연장은 이런 가운데 부각됐고 일본 정부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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