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기업 가치 100배 키우기]
글로벌 기업에서 위상 높아진 CHRO…혁신은 인사에서 시작해 인사에서 끝난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Q. = 우리 회사는 창업한 지 40년 된 중견 제조회사입니다. 부친이 창업한 이후 회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2년 전 부친이 건강 문제로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제가 갑자기 경영 책임을 맡게 됐습니다.


그동안 불거졌던 문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안정화됐습니다. 이제부터 그동안 생각했던 구상을 현실에서 구현해 보려고 합니다. 조만간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경영 혁신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제가 고민하는 것은 TF팀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논의 내용이나 추진 방식이 많이 달라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특히 TF팀을 진두지휘할 책임자를 누구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기업의 사례를 보니 대부분이 기획이나 재무 쪽 경험이 많은 임원이 TF팀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좀 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사담당 임원을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 “인사는 지원 업무이고 인사 임원은 경영 핵심에서 벗어나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인사 책임자는 경영 혁신을 총괄하기에 적합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의 성패는 ‘인사수석’이 좌우한다
A = 기업에서 인사는 지원 업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폭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인사 담당자들도 현업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면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인사 책임자의 위상이 높지 않았고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인사 담당자들조차 자신들이 CEO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사 책임자가 경영진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기업도 많지 않았습니다. 인사 책임자는 대부분이 기획이나 재무 임원의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인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고인사책임자(CHRO)가 CEO의 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여전히 CHRO가 최고운영책임자(COO)나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CHRO들은 종종 회사에서 자신들이 위상이 낮다고 불평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규모가 웬만한 기업이라면 대체로 CHRO가 최고경영진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CEO는 CHRO를 자신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CHRO가 CEO와 직접 업무 현안을 논의하는 일이 잦아졌을 뿐만 아니라 이사회에서 발언하는 횟수도 많아졌습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CEO가 회사를 옮길 때 인사 책임자를 같이 데리고 가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CEO였던 잭 웰치는 “어떤 조직에서든 HR의 총책임자는 조직의 제2인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CEO의 시각에서 보면 CHRO는 적어도 CFO와 동등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사에 대한 기업의 인식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기업의 인사팀은 수익을 창출하는 부서가 아니라 급여나 복리후생 같은 것을 관리하는 부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업무를 지원하거나 관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회사의 위상을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존재가 됐습니다. CHRO는 CEO를 도와 회사의 사업 전략이 제대로 수행되도록 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의 컨설턴트인 필러는 몇 년 전 데이브 울리히 미시간대 교수와 CEO·COO·CFO·최고마케팅책임자(CMO)·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CHRO 같은 경영진의 연봉을 조사한 결과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상대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경영진은 CEO였고 그다음으로 CEO와 직무와 역할이 많이 겹치는 COO였습니다.

그런데 셋째로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은 예상을 깨고 CHRO로 나타났습니다. CHRO는 최고경영진 가운데 연봉이 가장 낮았던 CMO에 비해 33%나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습니다. 울리히 교수는 “뛰어난 CHRO가 드물다 보니 역량 있는 CHRO는 연봉이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습니다.

-CMO보다 연봉 33% 더 받는 CHRO

이렇게 CHRO의 역할과 직무는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인사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었을까요.

첫째, 인재와 조직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성장 전략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유능한 인재가 제때 수혈돼야 합니다. 단순히 유능한 인재가 아닙니다.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에 동의하는 인재여야 합니다. 또 이들이 조직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합한 자리에 배치돼야 합니다. 올바른 조직 구조와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이런 작업을 지휘하는 사람이 CHRO입니다.

기업에서 누가 CHRO를 맡느냐에 따라 기업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업무 역량과 성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헤드헌팅 회사에 일하다 보니 가끔씩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인재를 영입하는 ‘족집게 회사’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 회사엔 언제나 ‘족집게 인사 책임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현업에서 요청하는 인력을 채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요를 예측해 요청이 오기 전에 한 발 앞서 인재를 찾아 나섭니다. 지원을 넘어 주도하는 것이죠.

그렇게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적재적소 원칙에 따라 역량과 성과가 뛰어난 인재를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면 2~3년 뒤 회사는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인재가 인재를 부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니까요. 기업에서 인재는 성장기의 식물에 물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필요한 인재를 적시에 확보하는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둘째, CHRO는 CEO의 전략적 참모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서 조직의 제2인자는 재무나 마케팅 임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차기 CEO도 이들 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에선 종종 CHRO가 CEO로 발탁됩니다. CHRO가 단순히 경영 활동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전사적 전략을 이해하고 그 전략을 실행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의 CHRO는 수시로 최고경영진과 상담하고 자문합니다. CEO와 조직 현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CEO가 중요한 사안을 최종 결정하기 전에 최종 확인해 달라고 주문하는 일도 자주 벌어집니다. 과거에 그 역할을 CFO가 했는데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 CEO가 되려면 재무나 마케팅을 거쳐야 했지만 지금은 인사를 경험해야 한다는 인식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CEO와 CHRO의 역할이 비슷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사가 커지면 실행 방법을 찾는 것보다 사업 구상을 먼저 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사업 구상도 남에게 넘기고 그 일을 맡길 적임자 찾기에 몰두하는 시기가 옵니다. 판이 커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사업을 담당할 책임자와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게 CEO의 역할이기 때문에 CHRO는 CEO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CHRO를 구할 때 뛰어난 리더십과 전략 수행 능력을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CEO의 자질과 CHRO의 자질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CEO와 역할과 책무가 겹치는 COO를 제외한다면 리더십·사고방식·역량 면에서 CEO와 가장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최고경영진은 CHRO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 인사 책임자도 재무·마케팅 경험하게 하라

저는 가끔 정치인들을 만날 때마다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는 인사수석비서관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는 적임자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 적임자를 발굴하고 추천할 사람이 바로 인사수석비서관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사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국가운영 비전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현실에서 구현할 인재를 발굴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사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을 잘 보좌하려면 상당한 경험과 지식·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통령의 인사수석비서관은 이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거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사라는 내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하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인재를 발굴하고 대통령에게 추천하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대통령과 코드가 맞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충성심이 강한 사람을 후보로 천거하는데 그쳤습니다.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여야 할 인사수석비서관이 제 역할을 못 했으니 국정 운영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세계적 속옷 패션회사 리미티드 브랜드의 창업자 레슬리 윅스너는 정체에 빠져 있는 기업을 혁신하기 위해 강력한 경영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해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직학 교수이자 컨설턴트에게 자문하다가 아예 그 교수를 COO 겸 인사부문 부사장으로 영입해 혁신을 주도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사업과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주요 간부를 교체했습니다. 선발 기업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인재를 영입하고 내부에서 잠재력이 있는 직원을 과감하게 간부로 발탁했습니다.

인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제 경영 혁신은 인사 혁신에서 출발해 인사 혁신으로 끝나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하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사 책임자가 경영 혁신을 주도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경영 혁신을 주도할 인사 책임자가 이전에 재무나 마케팅 같은 다른 직무를 경험해 봤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특히 경영 혁신을 총괄할 사람이 나중에 CEO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