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던 프리미엄’을 브랜드 철학으로…감성 가치 창출에 집중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2011년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 현장. 벨로스터와 콘셉트카 ‘커브’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현대차 발표회장에는 외신 기자와 외국 자동차 업체 관계자들로 북적거렸다.
이 자리에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로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인 ‘뉴 싱킹, 뉴 파서빌리티스(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라는 현대차의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을 발표하며 신(新)브랜드 경영을 선포했다.
현대차 51년 역사에서 기술→가격→품질 경영에 이은 넷째 현대차의 경영전략 발표였다.
정 부회장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감성적인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며 “‘가장 현대적인 현대차만의 프리미엄’이란 의미의 ‘모던 프리미엄(Modern Premium)’을 브랜드 방향성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현대차의 경영전략은 대폭 조정됐다. 브랜드와 관련된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혁신’까지 더하며 현대차는 현재 ‘브랜드 경영 3.0’ 시대를 열고 있다.
현대차는 디트로이트 모터쇼 발표 이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같은 해 곧바로 시작한 찾아가는 비포 서비스, 홈투홈(Home to Home) 서비스, 365일 찾아가는 시승 서비스 등 다양한 새로운 정책과 제도, 프로그램 등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2011년 11월 발표된 ‘2011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브랜드 가치가 전년 대비 19.3% 증가한 60억 달러(7조원)로 61위에 올랐다. 현대차의 브랜드 경영에 대한 진정성이 통한 것이다. ◆ 브랜드 경영의 서막 알린 ‘2011년’
2012년에는 ‘고객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하는 차’라는 의미를 지닌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 캠페인도 펼쳤다. 현대차의 브랜드 방향성을 전 세계에 일관되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정 부회장이 내세운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과 슬로건은 당시 금융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2012년 유럽 자동차 시장의 자동차 전체 판매량이 7.7% 줄어들었지만 현대차 판매는 오히려 8.6% 증가했다. 시장점유율도 3.5%를 기록하며 3% 벽을 넘어섰다.
하지만 자동차와 관련된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 경영은 현대차라는 브랜드 자체를 알리기에 2% 부족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현대차가 내놓은 ‘브랜드 경영 2.0’은 바로 ‘프리미엄’, ‘고성능’ 브랜드다.
2015년 현대차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하고 공식 출범시켰다. 이후 제네시스 브랜드의 두 차종 G80와 EQ900(해외명 G90)는 국내를 비롯한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안착하며 제네시스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였다.
G70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2021년까지 대형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3개 모델을 추가해 총 6종의 제품 라인업을 갖출 예정이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 론칭 역시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
현대차는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고성능 N 라인업 개발 계획을 밝힌 이후 고성능차와 모터스포츠 사업을 전담하는 ‘고성능사업부’를 신설했고 독일 BMW 고성능 브랜드 ‘M’의 북남미 사업총괄 임원 토마스 쉬미에라를 고성능사업부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N 모델은 벌써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첫 판매용 서킷 경주차 ‘i30 N TCR’이 지난해 10월 두 번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6월에는 양산 모델인 벨로스터 N을 정식으로 출시한다. 현대차는 프리미엄·고성능 브랜드의 라인업을 확대하고 영업·마케팅 부문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힌다는 복안이다.
프리미엄·고성능 브랜드를 선보인 현대차의 브랜드 2.0은 ‘개별 브랜드 전략’이다. 다양한 제품군에 각기 다른 브랜드를 붙여주는 것이다. 제품의 속성과 이미지에 맞춰 브랜드를 붙여줌으로써 브랜드의 초점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브랜드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선 품질에 대한 자신감과 개발·마케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만 가능하다. 이는 다시 말해 현대차가 품질이나 역량 면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별도로 현대차는 ‘통합 브랜드 전략’인 ‘브랜드 경영 3.0’ 전략도 추진 중이다. 현재 현대차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가장 힘을 주고 있다. 2015년 정 부회장이 직접 별도의 부서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브랜드 3.0 전략은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진짜 브랜드 3.0 전략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대하는 인식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자동차가 아닌 자동차 외의 모든 것을 활용해 브랜드를 홍보한다’는 사회 지향적 마케팅 기법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2016년 제네바 모터쇼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자동차가 아닌 친환경을 주제로 전 세계에 ‘현대차’ 브랜드를 알렸다.
자동차라는 제품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 광고판이나 홍보관은 물론이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브랜드 아이템 디자인 등을 통해 현대차의 브랜드를 홍보한다. ◆ 미술관과 공동 프로젝트도
현대차가 이러한 브랜드 전략을 시도한 이유는 소수의 눈에 띄는 특정 프로젝트의 성공이 아닌 고객의 시각에서 현대차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현대차 쇼룸을 방문한 고객에게 인테리어 디자인부터 브로슈어 그리고 이를 담은 패키지까지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담아 고객에게 제공한다면 이를 받은 고객은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경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대차의 브랜드 경영 3.0은 문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유명 미술관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이 숨 쉬는 국립현대미술관,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국 서부지역 LA카운티미술관,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등이 현대차와 손잡았다. 현대차는 이들과 짧게는 3년, 길게는 11년 후원 계약했다. 현대차는 이들 미술관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현대차 브랜드를 적극 알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매년 1명의 작가를 선정해 최고 수준의 전시회를 지원하는 ‘현대차 시리즈’를 운영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 내 최대 특별 전시관인 ‘터빈홀’은 현대차가 전시 운영 기금을 대는 대가로 현대차는 테이트 모던과 ‘현대 커미션’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가 1명을 매년 선정해 테이트 모던에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반 고흐 미술관과의 파트너십은 한국인에게도 특별한 선물이다. 현대차가 반 고흐 미술관을 후원하게 되면서 미술관 내 멀티미디어 가이드에 한국어 서비스도 추가됐다.
또한 현대차는 반 고흐의 대표작인 ‘해바라기’ 그림을 입힌 ‘아이오닉 래핑카’ 1대 등 총 2대의 차량을 반 고흐 미술관 측에 전달했다.
현대차의 브랜드 경영 3.0은 TV 광고에서도 접할 수 있다. 지난해 현대차는 미국의 최대 인기 스포츠 미식축구의 결승전인 슈퍼볼 광고에서 해외 파병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소재로 한 90초 분량의 다큐멘터리 광고를 내보내 미국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 광고는 마지막에 ‘더 나은 드라이브, 현대(Better Drive Us. Hyundai)’라는 문구가 아니면 현대차의 광고라고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현대차의 광고는 올해 슈퍼볼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현대차는 올해 20주년을 맞은 소아암 치료 프로그램인 ‘현대 호프 온 휠스(Hyundai Hope On Wheels)’를 소재로 한 광고를 선보였다. 소아암과 싸워 이를 이겨낸 환자와 가족들이 현대차 구매 고객에게 자신을 도와줘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이런 브랜드 마케팅은 기아차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아차는 유명 코미디언 멀리사 매카시가 니로를 타고 남극과 초원을 누비며 생태 보존 활동을 벌이는 내용의 ‘영웅의 여정’ 광고로 슈퍼볼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기아차는 슈퍼볼 광고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알려진 USA투데이 ‘애드미터’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한데 이어 유튜브 애드블리츠에서도 1위에 올라 두 선호도 조사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자동차 브랜드가 됐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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