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유로화 사용 이익 및 필요성 감소…유로화 존속에 대한 의문도
이탈리아발 ‘유로존 위기 2.0’ 우려 확산

(사진)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최대 정당 오성운동이 정부 구성을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이탈리아의 정정이 불안하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EU) 탈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한동안 잠잠했던 이탈리아가 다시 유로존의 문제아로 떠오름에 따라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데자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길게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통합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로존 위기 1.0’에 이어 ‘유로존 위기 2.0’이다.


◆국제 금융시장도 변동성 장세 예상


유럽연합(EU)과 유로존은 각각 초기 7개국, 11개국으로 출발해 그동안 ‘확대’ 단계를 거쳐 현재 28개국(영국 탈퇴 시 27개국), 19개국 체제로 확립됐다. 하지만 2년 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극우 세력 약진, 올해 3월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약진하면서 균열 조짐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유로존 붕괴 위험을 나타내는 센틱스 유로존균열지수는 이탈리아 총선 이후 상승세로 전환돼 최근에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수준까지 급등했다.

EU집행위원회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를 종합해 보면 회원국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유럽 통합 앞날과 EU, 유로랜드 존속 여부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원국별로는 핵심국보다 비핵심국 국민일수록 더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결합이 다시 노출됨에 따라 유럽 통합 앞날은 △현 체제 유지 △유럽 통합 및 유로화 강화 △유럽 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 △유럽 통합 질서 회복 등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현 체제 유지 시나리오'는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금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유럽 통합 및 유로화 강화’는 유럽 위기로 붕괴 조짐을 보이는 유럽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유로본드(E-bond) 도입, 유럽통화기금(EMF) 설립, 재정동맹 등 미완성 과제를 해결하는 시나리오다.

두 시나리오보다 가능성이 희박한 ‘유럽 통합과 유로화 붕괴 시나리오’는 유럽 위기 회원국이 독자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혹은 국내외 정치적 압력에 의해 유로 통합을 탈퇴해 유럽 통합이 붕괴되는 것이다. ‘질서 회복’은 특별한 조치 없이 주변국의 경쟁력 회복과 재정 개선 등으로 회원국 간 불균형이 해소되면서 유럽 통합이 재정 위기 이전 상황을 회복하는 시나리오다.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최근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유로존 위기 2.0’을 해결하지 못하고 회원국 간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에 대한 유럽 통합의 근본 문제가 더 악화되면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은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숙취(hangover) 현상’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통합의 붕괴 가능성은 유로화 가치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1999년 도입돼 2001년 실제 생활에서 유통된 이후 유로화 가치는 한때 유로당 0.8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1유로=1달러’의 등가 수준 위에서 움직이며 비교적 견실한 움직임이 유지돼 왔다.


◆유럽 통합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늘어

‘유로존 위기 1.0’에도 불구하고 유로화가 등가 수준을 웃돌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EU가 전 세계 지역 무역협정 중에서도 역내 교역 비율이 높아 유로화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EU의 역내 교역 비율은 70%에 육박했던 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동남아자유무역협정(ASEAN)은 각각 40%대, 20%대에 머무르고 있다. 유로존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유로존 성장률은 2%대다. 예상 밖의 결과다. ‘미국 경제가 유일하게 좋다’는 선입견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양적 완화, 초저금리(마이너스 금리제 도입)로 상징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일관된 금융 완화 정책의 힘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ECB의 물가 목표치인 2%를 달성하기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들어 상승하는 추세다. 올 들어서는 국제 유가 상승과 경기 회복으로 ECB의 물가 목표치에 근접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태 직전까지 ECB도 테이퍼링(금융긴축)을 고려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요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업률도 2013년 중반 12.1%를 기록한 이후 감소 추세에 들어서며 올 들어 10%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유로존 실업률은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실업률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회원국별로도 독일·프랑스와 같은 핵심국인 10% 밑으로 떨어졌지만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과 같은 취약국은 여전히 20%에 근접해 편차가 심하다.

유로화 사용은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심화됐던 국가별 경제적 불균형 현상에 대응해 구제금융 지원과 금융 완화 정책을 펼치는데 용이하게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유로랜드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유로화 사용 수요와 필요성은 감소하는 대신 독자 통화 도입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통화 유로화 도입은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제기한 ‘최적 통화 지역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최적 통화 지역은 단일(통합) 화폐를 도입하면서 얻는 이득이 자국 화폐 주권을 활용하는 비용보다 커 단일 화폐가 도입되기 이상적인 지역을 의미한다.

먼델 교수는 EU와 같이 △상품과 서비스 △금융 및 물리적 생산요소 △노동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지역에서는 단일 통화 도입이 적합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이후 브렉시트 결정, 정치적 포퓰리즘 확산 등 유럽 통합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유로화 사용에 따른 이익과 필요성이 감소되고 있다.
이탈리아발 ‘유로존 위기 2.0’ 우려 확산
하지만 작년 9월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과 이에 따른 남유럽 위기가 확산되면 EU는 물론 유로화 존속에 대한 우려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달러·유로화 환율 전망치를 보면 올해 안에 등가 수준으로 다시 하락할 것으로 보는 투자은행이 늘어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