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Ⅲ]
-소비자 니즈, 갈수록 개인화…대응 민첩한 ‘스몰 비즈니스’ 강세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를 지닌 ‘왝더독(wag the dog)’은 주식시장에서 주로 쓰이던 용어다. 주식시장에서 기준물이 되는 현물시장이 기준물의 파생상품인 선물시장에 의해 좌지우지될 때 이 용어가 등장하곤 한다. 한마디로 ‘주객전도’다.

‘왝더독’이 주식시장을 넘어 전체 소비시장의 지형을 바꿀 키워드로 떠올랐다. 약자와 강자가 뒤바뀌는 현상이다. 아주 평범하고 어디서나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시대의 권력자가 되는 ‘마이크로 파워’의 시대다. 이미 식품·화장품·패션 등의 분야에서는 이런 변화가 낯설지 않다. 작지만 강력한 매력으로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스몰 비즈니스들의 사례를 짚어 봤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올해로 10년째 발간하고 있는 ‘트렌드코리아’에서 2018년의 키워드를 ‘언더독(underdog)의 약진’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산업 전반에 걸쳐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다.

‘마이크로 소비’를 보여주는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본래의 상품보다 ‘사은품’을 더 중요한 소비의 잣대로 삼는다. 대중매체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더 신뢰하고 주류 매체보다 1인 방송을 훨씬 더 즐겨 본다. TV 뉴스보다 카드 뉴스가 더 친숙하고 식사 때가 되면 백화점 푸드 코트가 아닌 노점의 푸드 트럭에서 사 먹는 음식이 훨씬 더 맛있다. 대형 기획사에서 내놓은 매끈한 신규 앨범보다 자기 취향의 곡을 들을 수 있는 인디레이블의 앨범을 더 자주 듣는다. 대형 종합 브랜드보다 싱글 프로덕트 브랜드가 인기를 끌거나 대형 스타보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패러다임도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 것인가’를 선택할 때 가격보다 가치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본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완벽한 기술이나 서비스보다 소비자들의 변화를 파악하며 작은 것을 자주 던지는 전략이 효율적일 수 있다.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고객’이 제품을 만드는 시대다. 즉 프로슈머와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이 점점 더 당연해질 것”이라며 “마이크로 소비가 일반화될수록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인간적인 감성’을 채워 주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큰 것보다 작은 것의 힘이 더 강해지는 시대가 오면서 ‘스몰 비즈니스’들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스몰 비즈니스는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소상공업·자영업 등을 일컫는 말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보기술(IT)과 함께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변화된 욕구를 반영함으로써 ‘작지만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스몰 비즈니스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양 애널리스트는 “미디어가 개인화되고 그에 따라 개인들이 점점 더 다양한 채널을 경험하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니즈가 더욱더 정교해지고 개인화된 수요로 나타나고 있다”며 “각각의 소비자들마다 다른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스몰 비즈니스들의 강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패션- SNS와 기막힌 결합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시대에서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쇼핑의 대중화가 시작된 지도 오래전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패션 의류는 ‘마이크로 소비’의 파워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스타트업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이미 패션 스타트업들은 SNS와 큐레이션(맞춤형 추천), 온·오프라인 연계(O2O) 등 다양하고 새로운 트렌드와 자유자재로 결합하며 패션 의류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2011년 설립된 스타트업 스타일쉐어에서 운영하는 ‘스타일쉐어’는 온라인 의류 판매가 아닌 패션 정보를 공유하는 SNS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2년 전인 2016년 쇼핑 기능을 추가해 가파른 속도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SNS와 쇼핑이 결합된 형태로 지난해 거래액이 200억원을 넘어섰다.

10~2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며 4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만큼 ‘패션업계의 페이스북’으로 불린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만 25만 명에 달한다. 소비자들은 SNS에 자유롭게 자신의 옷과 가방 등을 올리고 패션 스타일을 공유하며 피드백을 받는다. 인공지능(AI)으로 이와 같은 이미지를 분석해 사용자의 패션 스타일을 분류하고 그에 맞춘 상품을 추천해 준다.
‘마이크로 소비’를 잡아라,비주류 틈새 수요로 ‘대박’
스타일쉐어는 3월 GS홈쇼핑의 자회사인 에이플러스비의 온라인 쇼핑몰 ‘29CM’을 300억원에 인수하며 업계의 화제를 모았다. 패션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던 스타트업이 대기업 자회사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스타일쉐어는 이를 통해 29CM의 회원 100만 명 을 확보, 전체 회원 수만 500만 명이 넘는 패션계의 ‘공룡 스타트업’으로 거듭났다.

스타트업 크로키닷컴에서 운영하는 지그재그는 ‘맞춤형 큐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지그재그는 기본적으로 동대문 의류 매장을 비롯해 전국 2700여 개의 쇼핑몰을 모아 둔 포털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하지만 기존의 쇼핑 포털 앱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소비자들이 직접 입력한 취향이나 상품 종류 등을 바탕으로 2700여 개의 쇼핑몰 중 선호할 만한 상품을 자동으로 골라 추천해 준다. 이 밖에 사용자의 북마크 기록을 바탕으로 취향과 스타일을 분석·추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도입하고 있다.

지그재그는 2015년 론칭 이후 2년 7개월 만인 올해 1월 1000만 다운로드를 넘어서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그재그’ 앱 내에서 발생하는 주문 거래액도 분기마다 평균 10% 이상 늘어나며 2017년 총주문 거래액 3500억원을 달성했다.

특히 지그재그가 주목 받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네이버와 카카오가 양분하고 있던 온라인 의류 시장에 균열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 때문이다. 10~20대뿐만 아니라 30~40대 사용자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이다. 현재는 전체 이용자 중 10~20대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30~40대 사용자 수 또한 2016년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 소비’를 잡아라,비주류 틈새 수요로 ‘대박’
O2O와 온디맨드 서비스와 결합한 패션몰도 눈에 띈다. ‘골목상권의 모바일화’를 목표로 하는 로드숍 O2O 서비스 ‘브리치’가 대표 주자다. 가로수길의 로드숍, 홍대 로드숍처럼 지역마다 특색 있는 로드숍들을 직접 발로 뛰어 조사한 뒤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옷가게를 선별해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시킨다. 소비자들은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전국 ‘잇 플레이스’들의 옷가게에서 트렌디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판매되는 상품들의 실시간 랭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매일 신상품 업데이트 기능도 가능하다. 향후에는 국내 로드숍뿐만 아니라 브랜드 숍과 글로벌 숍까지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밖에 ‘브랜디’는 인스타그램·블로그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인플루언서를 활용해 상품을 홍보하고 쇼핑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잘 팔리는 핫한 상품들은 따로 모아 보여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고 필터 검색을 통해 원하는 마켓을 찾을 수도 있다. 카드와 휴대전화 결제를 통해 간편 결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 식품- ‘새벽배송’으로 판도 바꿨다

‘마이크로 소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산업 분야는 바로 식품이다. 무엇보다 1인 가족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집에서 음식을 해먹기보다 ‘밖에서 먹는 음식’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새벽 배송’으로 식품·유통업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마켓컬리와 프리미엄 반찬을 온라인으로 배달해 주는 배민찬, 축산물 직거래 유통 플랫폼인 미트박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중간 마진을 절감함으로써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직거래의 핵심은 ‘물류 혁신’이다. 스마트폰 앱을 매개로 배달 또는 배송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거나 중개 대행함으로써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C2C(소비자와 소비자 간 거래) 시장까지 확대해 나가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주문량을 미리 예측함으로써 물류를 최적화하는 데 고도의 IT를 적용하고 있다.

무서운 성장세로 시장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는 이들의 활약에 위기감을 느낀 대기업들이 오히려 이들을 벤치마킹 하는 중이다. 이마트·롯데슈퍼 등의 유통 대기업들이 최근 새벽 배송 등에 적극적으로 가세하는 모습이다.

2014년 국내 처음으로 ‘새벽 배송’의 개념을 도입한 곳은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들에서 운영하는 ‘배민찬(당시 배민프레시)’이다. 식재료가 아닌 밑반찬과 국찌개·도시락 등 이미 조리가 완성된 식품이 중심이 되는 만큼 1인 가족이나 워킹맘 등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타깃 층이 뚜렷한 만큼 이들에게 ‘최적화된’ 배송 시스템을 고민한 결과가 새벽 배송인 셈이다. 자회사인 물류센터를 통해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밤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 소비자가 원하는 주기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기 배달(서브스크립션)’ 서비스 등도 운영 중이다. 정기 배송으로 특히 인기가 좋은 것이 ‘해독주스·클렌즈주스’ 등 다이어트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식단이다. 또한 어린 자녀들을 위한 ‘아이반찬’ 등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세분화된 식단을 보유하고 있다. 배민찬은 2011년 설립 이후 매년 300% 이상 급성장하고 있는데, 2018년 3월을 기준으로 월매출은 100억원, 누적 가입자 수는 60만 명에 달한다.
‘마이크로 소비’를 잡아라,비주류 틈새 수요로 ‘대박’
유기농 먹거리를 판매하는 더파머스의 마켓컬리는 ‘새벽 배송’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마켓컬리를 대표하는 서비스는 단연 ‘샛별배송’과 ‘컬리어답터’다. 샛별배송은 서울, 경기, 인천 지역에 한해 오후 11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식재료를 문 앞에 배달해 준다. 컬리어답터는 샛별배송 불가 지역에 제공되는 서비스로 롯데택배를 통해 오후 8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식재료를 받아볼 수 있다.

대형마트의 가격 변동 상황 등을 모니터링해 판매 제품의 가격에 반영하는 ‘장바구니 필수품 최저가 보증제’도 마켓컬리만의 혁신 서비스 중 하나다. 매주 화요일 아침 10시에 장바구니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 IT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해 판매 예상 수량만큼 생산자에게 미리 물건을 매입하는 직거래 매입 방식을 활용해 서비스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2015년 설립 이후 출범 3년 만에 월매출 100억원을 달성했고 연평균 300%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누적 회원 수 60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또 하나의 스타트업이 글로벌네트웍스의 ‘미트박스’ 서비스다. 육류 수입 및 가공업자와 식당·정육점 등을 연결해 주는 축산물 직거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회원제 서비스로 운영되며 오뚜기 계열의 물류사인 오뚜기OSL과 계약하고 익일 배송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 어디라도 오후 3시 이전에 주문한 품목은 다음 날 도착될 수 있도록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트박스의 가장 큰 장점은 소비자들이 다양한 상품과 도매 시세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 회원과 일반 회원을 구분해 고객의 유형별로 원하는 상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세분화하고 있다. 가공 방법과 브랜드·등급·원산지·용도까지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조건의 상품을 검색할 수 있다. 2014년 설립 후 거래 규모가 2015년 89억원에서 2017년 875억원으로 100배 가까이 급등했다. 월평균 거래량이 20% 이상씩 꾸준히 성장하며 현재 월 거래액만 120억원 수준에 이른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