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Ⅱ]
-삼성·LG, 기업용 시장서 격돌…네이버·카카오, 해외·국내 오가는 ‘투 트랙 전략’
블록체인에 올라탄 대기업…핵심은 ‘자체 플랫폼 구축’
(사진) 홍원표 삼성SDS 사장이 지난해 6월 유럽 최대 글로벌 핀테크 콘퍼런스인 ‘머니 2020 유럽’에서 ‘블록체인의 상용화, 디지털 금융을 넘어’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제공=삼성SDS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암호화폐 공개(ICO)가 전면 금지됐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업들의 블록체인 산업 진출이 더욱 활발해졌다. 이는 블록체인이 갖는 특성 때문이다. 다수가 투명한 방법으로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고 참가자에게 보상을 줄 수 있다. 금융·물류부터 환경까지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무궁무진하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이 ‘제2의 인터넷’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시장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연달아 블록체인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전담 조직 신설은 물론 블록체인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아직은 초기 단계로 구체적인 수확을 기대하긴 이르다. 중요한 점은 블록체인의 토양이 되는 ‘플랫폼’이다. 이더리움·이오스와 같은 기존 플랫폼 안에서 디앱(탈중앙화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자체 플랫폼을 구성해 이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SK텔레콤,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 조성”

SK텔레콤은 지난해 말 새롭게 블록체인 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을 신설했다. 이를 위해 한국 IBM과 SK C&C를 거친 오세현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장에게 조직을 맡겼다.

SK텔레콤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자산 관리, 지불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세현 유닛장은 “모든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마일리지 등의 금융·비금융 자산과 암호화폐 등을 하나로 관리하고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지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SK텔레콤은 건전한 암호화폐 생태계를 조성하고 블록체인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이 그리는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ICO를 통해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 체계적인 행정 지원과 조언을 통해 안전하고 투명하게 거래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일회적 투자자 매칭이 아닌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돕고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사회적 기업도 육성한다. 오 유닛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사업을 하고자 하는 기업과 개인, 사용자 모두가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생명도 블록체인 업무를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를 설립했다. 동시에 여의도에 이어 둘째로 개장한 공유 오피스 ‘드림플러스 강남’을 ‘블록체인의 성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한화생명 블록체인팀도 이곳에 입주한다. 드림플러스 강남에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을 입주시키고 한화생명의 블록체인 관련 사업과 행사를 모두 이곳에서 진행한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각각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통해 블록체인 사업에서 맞붙게 됐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은 금융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신규 자회사 ‘라인파이낸셜’을 올해 1월 일본에서 설립했다. 향후 라인은 라인파이낸셜을 기반으로 암호화폐 교환·거래소·대출·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한국법인 라인플러스는 4월 블록체인 자회사 ‘언블락’을 설립하고 블록체인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광고 회사 AD4th 공동 창업자 이희우 씨를 영입했다. 언블락은 블록체인 기술 연구, 관련 사업 투자와 암호화폐 시장 연구에 나선다. 또 디앱을 구축하기 위해 블록체인 프로젝트 아이콘과 조인트벤처 ‘언체인’도 설립했다. ‘언체인’과 ‘언블락’은 블록체인이 필요한 회사에 관련 기술을 대신 개발해 주거나 기술을 판매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는다.
블록체인에 올라탄 대기업…핵심은 ‘자체 플랫폼 구축’
(사진) 오세현 SK텔레콤 블록체인 사업개발유닛장(왼)과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카카오는 3월 27일 여민수·조수용 공동대표의 취임 기자 간담회에서 신규 성장 동력으로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블록체인과 관련한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카카오G’를 설립했다. 또 카카오의 손자회사이자 카카오G의 자회사로 일본에 그라운드X를 설립해 다수의 아시아 파트너가 참여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생태계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직에는 퓨처플레이의 최고기술책임자였던 한재선 대표가 선임됐다. 한 대표에 따르면 그라운드X는 유의미한 참여자 수를 가진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을 올해 안에 만들 계획이다. 이 플랫폼은 카카오만의 것이 아닌 아시아의 공동 플랫폼으로 참가자가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구조다.

가전과 스마트폰에서 맞붙어 온 삼성과 LG의 미래 전쟁터도 ‘블록체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모두 발 빠르게 자사의 플랫폼을 구축했다. 기업용 블록체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다시 맞붙게 될 삼성·LG의 플랫폼

삼성SDS는 2015년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를 개발하고 물류와 인증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넥스레저는 기존 블록체인 기술로는 구현이 어려웠던 실시간 대량 거래 처리, 자동으로 안전하게 거래를 실행하는 스마트 계약, 관리 모니터링을 구현했다. 최근에는 물류 분야에서 블록체인 접목에 앞장서고 있는 IBM과의 협업을 추진 중이다. 또 국내 해운·물류 업체들이 참여하는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통해 블록체인 기술이 물류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 연구하기도 했다.

동시에 금융권에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은행연합회와 KB국민·신한·IBK기업·KEB하나·BNK부산·전북은행 등 6개 은행이 공동으로 블록체인 인증 시범 사업을 시작하는데 여기에 삼성SDS의 넥스레저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LG CNS는 5월 13일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 ‘모나체인’을 출시했다. 모나체인은 금융·공공·통신·제조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 적용 가능한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이다. 핵심 기능은 디지털 인증, 디지털 커뮤니티 화폐, 디지털 공급망 관리다. 디지털 인증은 스마트폰 등 개인 휴대 기기의 개인 식별 번호(PIN)나 지문 등 생체 정보만으로 이용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 표준인 분산 신원 확인(DID) 기술이 적용돼 다른 시스템과의 연계가 쉽다는 게 장점이다.

LG CNS 측은 “모나체인의 디지털 인증을 이용해 병원에서 의료비를 결제하면 자동으로 보험금이 청구된다”며 “관련 정보가 보험사와 병원 등에 신속하게 공유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커뮤니티 화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화폐 발행과 복지 수당 지급 등에 최적화된 서비스다. LG CNS가 은행에 블록체인 플랫폼을 제공하면 은행이 화폐 발행과 유통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 LG CNS는 시중은행과 커뮤니티 화폐 사업을 준비 중이다. 디지털 공급망 관리(SCM) 기능은 제품 생산에서 고객 인도까지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각 이해관계인에게 공유한다. 생산시간 단축, 적정 재고 유지, 운송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최고기술책임자 현신균 LG CNS 전무는 “모나체인 출시를 통해 금융 외 공공·통신·제조 등 다양한 산업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말했다.

플랫폼이 범용성을 갖기 위해선 다수의 참여자들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토큰 이코노미’를 외치는 이유다. 토큰 이코노미는 블록체인 서비스 참여의 대가로 이용자들에게 암호화폐를 지급하는 경제를 말하는데, 일종의 ‘보상’을 통해 더 많은 이용자를 생태계에 참여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블록체인에 올라탄 대기업…핵심은 ‘자체 플랫폼 구축’
SK텔레콤은 전면에 ‘토큰 이코노미’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네이버는 라인플러스가 설립한 조인트벤처 ‘언체인’을 통해 디앱 구현에 최적화된 ‘토큰 이코노미 기술 플랫폼’을 구축한다. 이미 간편 결제 시스템이나 웹툰 등 자사 콘텐츠를 보유한 네이버와 카카오는 자체 코인을 간편 결제나 콘텐츠 사용에 접목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블록체인 플랫폼은 허가받은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대부분이다. 금융과 물류에서 사용되고 있는 삼성SDS의 넥스레저가 대표적인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기업들은 B2B 비즈니스에서 블록체인을 적용하기 위해 프라이빗 블록체인 쪽에 우선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퍼블릭 블록체인과 혼재된 형태의 사업 모델을 도입할 가능성도 높다. 보상으로 암호화폐가 주어지는 토큰 이코노미를 실현하기 위해선 퍼블릭 블록체인의 구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ICO는 토큰 이코노미의 ‘필요조건’일까

‘스타트업’과의 상생도 눈에 띈다. 국내에서의 ICO가 전면 금지돼 있고 규제도 엄격한 상황이어서 스타트업엔 존폐 여부가 달린 자금 유치가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기업들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통해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함과 동시에 해외 진출의 돌파구도 찾고 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국내 규제에 따라 해외에서 ICO나 관련 사업을 펼치는 일이 많아졌다. 한편 스타트업들은 최근 잦아진 대기업의 블록체인 사업 진출에 기대감을 품고 있다. 대기업의 블록체인 사업 진출로 전반적으로 긍정적 이미지가 형성되고 시장의 ‘판’이 커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규제는 스타트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해외와 국내를 오가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카카오는 최근 블록체인 자회사를 총괄하는 지주사 ‘카카오G’를 일본에 설립했다. 카카오의 100% 자회사인 카카오G는 회사 전체 블록체인 관련 글로벌 전략을 설계한다. 이에 앞서 카카오는 일본에서 3월 블록체인 그라운드X를 설립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블록체인 자회사 역할을 하는 ‘그라운드1’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 세워질 블록체인 자회사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카카오G가 맡게 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지역 모바일 메신저의 ‘강자’인 라인 또한 일본을 거점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관련 규제에서 더 자유롭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해 암호화폐를 법적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고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거래소도 정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ICO가 토큰 이코노미의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ICO가 뒷받침돼야 더 활발한 생태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돋보기-코오롱에코원, ‘카본 블록’으로 에너지 절약 독려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올해 초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각국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지만 블록체인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에는 대부분이 동의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회의원 회관에서 5월 23일 ‘블록체인과 토큰 경제를 활용한 기후행동 선포식 및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환경부와 환경 단체, 대기업 및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참석해 블록체인을 탄소 배출량 감축에 활용하자는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1년에 300조원에 다다른다. 1년 치 정부 예산이 약 400조원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다. 여기에 전 세계가 내뿜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은 약 527억 톤(2014년 BAU 기준)에 다다른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국가들은 ‘파리협정’을 통해 2030년까지 약 420억 톤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로 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지금부터 연간 100억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업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또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 527억 톤 중 32.7%인 172.3톤이 시민과 관련돼 있다.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한국이 처한 환경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블록체인 기업들이 어떻게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코오롱의 환경 계열사 코오롱에코원이 뛰어들었다. 환경보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에게 보상하기 위해 코오롱에코원은 ‘카본 블록’이라는 시스템을 설계 중이다. 이수영 코오롱에코원 대표는 카본 블록에 대해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쉽고 편하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 행동을 자동으로 보상해 주는 블록체인 기반의 환경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코오롱에코원은 개인의 에너지 절감 활동을 검증하는 체계에서는 ‘평가’와 ‘보상’이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본 블록은 입증은 간편하게, 평가는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 거주하는 40대 남성이라는 가상 인물이 있을 때 경기도 거주, 40대, 남성이라는 다양한 집단에 속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속한 집단의 평균 에너지 사용량을 비교해 얼마나 절약했는지 다각도의 조건에 따라 비교할 수 있다. 여기에 ‘영향력 지수’를 반영해 환경단체나 기업에 속해 넓은 전파력을 가진 개인에겐 더 많은 보상이 가게끔 했다.

카본 블록은 ‘교통’에도 주목했다. 개인이 쓰고 있는 교통카드의 데이터, 카풀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통해 참가자의 대중교통 탑승 이력을 관리한 후 이를 보상해 주는 시스템이다. 또 ‘에코토큰’을 통해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면 탄소 포인트를 주고 이를 에코토큰과 교환해 실제 구매에 적용할 수 있게끔 한다. 1일 스포츠센터 이용권, 온라인 교육 상품권 등 제공자에겐 별도의 비용이 들지는 않지만 서비스를 광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장시킨다. 이수영 대표는 “기후행동 노력이 한국에서만 이뤄져서는 의미가 없다”며 ‘토큰 이코노미’를 활용한다면 넓은 범위로 빠르게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용어 정리
-디앱 : 특정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실행되는 탈중앙화한 응용 서비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티밋’이 대표적 사례.
-프라이빗 블록체인 : 블록체인의 종류 중 하나. 기관이나 기업이 운영 주체로 사전에 허가받은 이들만 쓸 수 있다. 암호화폐의 발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퍼블릭 블록체인 : 역시 블록체인의 종류 중 하나로 모두에게 개방된 블록체인이다. 네트워크 확장이 어렵고 거래 속도가 느리지만 블록이 생성되고 유지될 때 인센티브 형식으로 암호화폐가 필요하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