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분식 아닌 ‘단순 실수’ 가능성…원칙 중심 IFRS가 ‘해석 차’ 키워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의 운명이 안갯속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6월 7일 첫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짓지 못했다. 증선위는 6월 20일 2차 정례 회의를 앞두고 이 사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위해 6월 12일 예정에 없던 임시 회의를 이례적으로 열었다. 이 자리에서 삼성바이오의 2015년 이전 회계 처리도 함께 검토해야 최종 판단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새로운 변수의 등장이다. 검토해야 할 자료가 늘어난 만큼 최종 판단도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7월 4일로 예정된 정례 회의에서 최종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지만 8월 이후까지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오에피스 종속회사냐, 관계사냐
삼성바이오는 2011년 설립됐다. 삼성그룹이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제약으로 꼽은 지 1년 만이었다. 삼성바이오는 의약품을 위탁 생산하는 회사다. 이후 삼성은 의약품의 단순 위탁 생산을 넘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2012년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R&D) 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한다.
회계상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당시 삼성바이오는 미국의 바이오 제약 회사인 바이오젠의 공동 출자를 통해 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당시 지분은 삼성바이오가 85%(2805억원), 바이오젠이 15%(495억원)였다. 이후 삼성바이오는 수차례의 단독 유상증자를 거쳐 지분율을 94.6%까지 끌어올렸다. 두 회사의 지분 차이는 상당히 컸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는 회계 처리를 할 때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로 판단하고 장부에 올렸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바이오젠에는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콜옵션은 특정한 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다. 바이오젠은 전체 지분의 50% 가까이 삼성바이오에 매수를 청구할 수 있었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기한은 2018년 6월 29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삼성바이오는 2015년 바이오에피스를 회계상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사’로 바꿔 장부에 올렸다.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이 콜옵션 행사 의사를 밝힘에 따라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바이오에피스가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바뀌면서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는 종속회사인 바이오에피스를 연결재무제표(지배·종속 관계에 있는 회사를 단일 실체로 보아 각 회사의 재무제표를 종합해 작성하는 방식)에 포함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인식해 연결 재무제표에서 제외하고 지분법(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사의 실적을 보유한 지분 비율만큼 자기 회사 실적에 반영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처음부터 ‘관계사’로 인식했어야?
삼성바이오는 설립 이후 2014년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바이오에피스였다. 설립 초기 뚜렷한 수익 없이 R&D에 지속적으로 돈을 투자해야 하는 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와 같은 바이오에피스의 적자를 그대로 떠안은 삼성바이오는 2014년까지 손실 총액이 3000억원을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는 2015년을 기점으로 ‘흑자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이 역시 키를 쥔 것은 바이오에피스였다. 이즈음 바이오에피스는 그동안의 투자에 힘입어 바이오시밀러 개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이오에피스가 개발 중이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엔브렐과 레미케이드가 2015년 10월과 12월 잇따라 한국과 유럽에서 판매 승인을 받으며 기업 가치가 크게 뛰어올랐다. 삼성바이오는 안진회계법인이 평가한 바이오에피스의 공정가액(시장가)을 2015년 재무제표에 당기순이익으로 반영했다. 그 결과 삼성바이오는 2015년 1조9000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문제를 삼고 나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먼저, 2015년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처리한 회계기준 변경이 적절했는지 여부다. 2015년은 삼성바이오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기 직전 해다. 금감원은 당시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의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 행사가 실제 있지도 않았는데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고 보고 있다.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분 가치 평가액이 적정한지도 핵심 쟁점이다. 안진회계법인은 현금흐름할인법(DCF)을 활용해 2015년 8월 기준 삼성바이오가 보유한 바이오에피스 지분(91.2%)의 가치를 4조8027억원으로 산정했다.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을 당시 지분 가치를 3300억원으로 공시한 바 있다. 그 차이가 무려 10배 정도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에피스의 지분 가치를 부풀려 장부상 흑자를 만들어 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증선위가 2015년 이전 장부의 검토를 발표하면서 또 다른 결론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바이오와 금감원의 공방에서는 2015년도 회계 처리만을 문제 삼았다. 이와 비교해 2012년 바이오에피스의 설립 당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을 고려하면 아예 처음부터 바이오에피스를 삼성바이오의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사’로 인식했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삼성바이오가 회계장부를 잘못 처리한 것은 맞지만, 이는 금감원이 주장하는 고의 분식회계와는 달라진다. 단순히 몰라서 회계 처리를 잘못한 ‘과실’ 혹은 ‘중과실’에 해당할 수 있다.
◆회계·바이오업계, 최종 결과에 ‘촉각’
이에 대해 회계사들은 하나같이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회계 처리만 놓고 보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삼성바이오의 ‘고의성’이나 ‘지분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사는 “IFRS는 기본적으로 ‘원칙 중심’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증명할 ‘객관적인 근거’를 누가 더 많이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IFRS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만든 글로벌 회계기준으로 현재 전 세계 144개국에서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는 2011년 도입됐다. IFRS의 가장 큰 특징은 ‘원칙 중심(principle based)’의 회계기준이라는 점이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회계 처리 방법을 일일이 제시하기보다 회계 처리의 큰 원칙만 제시해 기업의 자율성을 높였다. 기존에 국내에 적용되던 규칙 중심 회계기준인 일반 기업 회계기준(K-GAAP)에 따르면 종속회사와 관계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지배 기업의 지분율이었다. 지배 기업의 지분이 50%를 넘어서면 종속회사(자회사), 50%에 못 미치면 관계사로 분류되는 식이다. 하지만 IFRS에 따르면 ‘지배력’에 따라 종속회사와 관계사를 판단한다. 그러다 보니 이 ‘지배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금융 당국과 기업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황문호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현재 삼성바이오는 2015년 당시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사로 바꿀 근거가 무엇이냐에 따라 ‘사실판단의 차이’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와 같은 IFRS의 특성 때문에 삼성바이오와 금감원 양측이 어떤 근거를 제시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논란이 장기화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회계사는 바이오에피스의 지분 가치 평가액의 적정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삼성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는 바이오에피스의 장부가액(액면가)과 공정가액(시장가치)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종속회사를 관계사로 변경하더라도 장부가액과 공정가액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 기업의 특성상 현재 가치(액면가)와 비교해 미래 가치(시장가)의 차이가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이 회계사는 “하지만 시장가치에 대한 평가는 어쩔 수 없이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며 “2015년 당시 바이오에피스가 5조원에 가까운 지분 가치를 평가 받는 게 합당한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방이 길어지면서 바이오업계는 삼성바이오 논란의 결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른 바이오 기업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불거질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IFRS의 자율성이 오히려 바이오 기업들에는 ‘분식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와 관련한 논란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연말 2018년 테마 감리 중 하나로 ‘제약·바이오’를 언급한 바 있다. 연구 단계와 개발 단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들이 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함으로써 회계 처리의 오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원칙 중심의 IFRS는 기존과 비교해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바이오와 직접 연관한 회계기준이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하루빨리 바이오 기업의 회계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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