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도 그런 사례 중 하나라고 보고요. 세계화가 불평등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세계화나 불평등 문제가 지난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인종 문제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죠. 물론 세계화가 불평등 확대를 가져온 하나의 요인인 것은 분명해요. 연관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배적인 요인이거나 단일한 요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 요인들 중 하나인 거죠. 현재 나타나는 세계화에 대한 반발은 일부는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고 일부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적 반응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지금의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저하됐죠. 만약 ‘유로’라는 시스템의 문제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미국이 경기 침체로부터 회복하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금의 불안정한 세계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세계화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선진국 노동계층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여기에 세계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이를 추정하려는 연구들을 보더라도 그 영향력이 충분히 크다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세계화는 노동계층의 열악한 상황을 만든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죠. 예를 들어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들을 비교해 보면 미국의 노동계층이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에요. 세계화는 두 지역에서 똑같이 일어났는데 이처럼 결과가 달라요.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거죠. 일부는 정치적인 요인이고 또 일부는 노조의 협상력이 약화된 결과겠죠. 분명한 것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운이 좋아요. 미국 경제가 정상을 회복해 가는 시기에 취임했기 때문이죠. 이런 경제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어떤 경제정책을 펼치더라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결국 경제를 관리하는 것은 Fed이기 때문에 백악관에서 경제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지침을 내려줄 필요도 없고요. 만약 경제 침체기였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죠. 지금 미국의 경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인 4~5년 전부터 같은 흐름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시행했던 경제정책을 보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그리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세를 단행했어요. 이에 따라 미국의 재정 적자가 심화될 거예요. 지금 당장 위험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추후 필요할 때 미국의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죠.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미국을 무역 전쟁으로 밀어넣고 있고요.”
-무역 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십니까.
“현재 본격적인 무역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최소 50%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 물러설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보기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아요. 실제로 전면적인 무역 전쟁이 벌어진다면 1990~2010년 사이 ‘초세계화’를 주도했던 완전히 개방된 글로벌 수준의 국제 교역은 사라질 겁니다.
높은 관세의 시대에 초세계화는 생존하지 못해요. 글로벌 무역은 60년 이상 후퇴해 1950년대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어요. 이는 글로벌 경제에 극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 무역 전쟁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마 몇 달 내로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미국이 먼저 무역 관세를 인상했어요. 여기에 다른 국가들이 보복관세를 매겼고요. 미국이 여기에 다시 보복관세로 맞서면 다른 국가들도 또다시 보복관세로 맞대응할 거예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상을 실천한다면 전면적인 대규모 무역 전쟁이 촉발됐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이 세계경제에는 해가 될 수 있지만 미국 경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걱정해요. 지금처럼 미국 경제가 정상을 회복하는 상황에서 이 정도 규모의 무역 적자는 미국에 피해를 주지 않아요.
지금보다 고용지표가 훨씬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무역 적자가 문제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미국은 거의 완전고용 상태예요. 무역 전쟁은 미국을 포함한 모든 글로벌 경제 주체들을 ‘와해’하는 결과를 낳을 거예요.
미국 경제는 글로벌 개방경제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요. 여기에 교란이 생기면 미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잘못된 장소에 자리한 잘못된 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글로벌 개방경제를 기반으로 설계된 현재의 ‘가치 사슬’을 와해하고 이를 새롭게 재조정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값비싼 대가가 수반될 거예요.”
-미국 경제는 현재 무역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가요.
“미국 시장이 붕괴되지는 않을 겁니다. 뉴욕 맨해튼에 노숙자가 넘치는 일을 보게 되지도 않을 것이고요. 제 추정에 따르면 미국은 무역 전쟁으로 인해 GDP의 2~3% 정도 손실을 볼 거예요. 재앙이라고는 할 수 없죠. 단지 손실이 발생할 뿐이죠.
무역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평균 3% 정도 가난해진다면, 이는 미국 경제에 굉장히 큰 불균형을 가져오게 될 겁니다. 일부는 더 부유해지고 일부는 수입이 30% 정도 감소하는, 더 가난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죠.”
-무역 전쟁으로 세계 교역이 감소하면 한국은 큰 충격이 불가피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무역 전쟁이 발발하면 세계 교역의 60%가 줄어들 겁니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아 큰 타격을 받는 나라 중의 하나죠. 한국은 내수 시장에 의존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아니에요.
한국으로서는 교역량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과 무역협정을 체결해 나가야 해요. 유럽이나 중국과 무역협정을 맺는 게 가능하겠죠. 이런 식으로 무역 전쟁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야 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구라도 경제정책을 유심히 관찰해 본 사람들이라면 경제가 매우 좋은 시절에도 정부가 멍청한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저도 미국 정부에서 1년 동안 일을 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얼마나 많은 의사결정들이 충분한 정보 없이 이뤄지고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자신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경제정책을 얘기합니다. 그렇게 보자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반적인 것보다 조금 더 나쁜 정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정책과 관련해 그 어떤 조언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굉장히 강한 선입견으로 뭉쳐 있는 사람이고 그와 같은 그의 선입견을 재확인해 주는 사람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지금 미국 행정부 내에서 경제정책과 관련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장승규 편집장/ 정리=이정흔 기자/ 사진=김기남, 이승재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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