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폴 크루그먼의 경고 : 한경비즈니스 독점 인터뷰①]
폴 크루그먼 독점 인터뷰① "미국 금리 인상 성급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한국경제매거진과 제주평화연구원의 공동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6월 27일 오전 열린 ‘제13회 제주포럼’에서 글로벌 무역 전쟁을 주제로 특별 강연했고 같은 날 오후 전경련이 주최한 양극화 해법 특별 대담에도 참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신무역론과 지리경제학에 기여한 공로로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국제무역 전문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단 보복관세 부과로 글로벌 무역 전쟁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어 그의 방한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한경비즈니스가 크루그먼 교수를 단독으로 만나 혼돈에 휩싸인 글로벌 경제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함께 한국 경제의 위기 요인과 대처 방안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인터뷰는 호텔신라에서 6월 27일 오후 1시간 동안 진행됐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위기 이전과 비교해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더 ‘비관적’으로 변했다고 느껴집니다. 장기적인 관점도 마찬가지고요. 미국이 완전고용을 회복해 가고 있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회복도 못한 상황이죠.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적합한 경제적 모델이 있는지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위기의 후유증 때문에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기관들에 대해 사람들이 예전만큼 신뢰하지 못하는 거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고요. 글로벌 경제정책을 이끌어 가는 권위자들이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했으니까요. 이에 따라 경제 전문가들, 경제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리더들이 권위를 많이 잃은 것 같습니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구조적 장기 침체에 빠져 있다고 보십니까.
“미국 경제가 회복됐고 유럽 일부 지역도 회복세지만 금리는 과거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만약 경기 후퇴가 또 닥친다면 대처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상태죠. 구조적 장기 침체는 상존하고 있어요.

이를 금융 위기의 후유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1999년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썼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부터 이미 세계경제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갖고 있었어요.”

-구조적 장기 침체의 원인은 무엇이고 언제까지 정체가 지속될까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구변화죠. 선진국도 중국도 생산가능연령인구가 줄어들고 있어요. 이것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기술입니다. 물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멋진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죠.

하지만 이 기술들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드라마틱한 성장 효과나 투자 기회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어요. 다른 요인들도 많겠지만 이 두 가지 요인이 과거에 비해 지금 우리가 ‘경기 침체’에 훨씬 더 취약해진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경제가 예전과 같은 높은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성장의 시대’는 끝난 겁니까.
“거기에 대해선 그 누구도 답을 모르죠. 아마 인구변화에 따른 문제는 오랫동안 지속될 겁니다. 글로벌 경제가 성장하려면 지금 당장 노동력 증대가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 아이를 낳아도 이들이 생산가능인구에 편입되려면 앞으로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술이 문제를 보완해 줄 수 있을까요. 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많은 전문가들이 언제라도 새로운 기술로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이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요. 주장 모두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타당한 이유를 들어 얘기하고 있어요. 결국 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죠.”

-‘4차 산업혁명론’에 동의하지 않는 건가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선 아직 증명된 게 없어요. 10년 전과 비교해 우리가 일하는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없습니다. 사무실의 풍경도 여전히 비슷하고요. 공장에서 로봇을 사용하지만 이는 오래전부터 이뤄진 일이죠.

경제에서 보건 분야가 굉장히 중요한데 간호사 로봇은 아직 볼 수 없어요. 이런 중요한 경제 분야에서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아직 ‘혁명’이라고 부르기는 시기상조죠.”

-미국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의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제 위기 10년 주기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주목하는 위기의 징후가 있나요.
“‘시계처럼 주기적’으로 위기가 발생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어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사이에 10년간의 공백이 있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죠.

현재 신흥 시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아요. 과거 금융 위기를 일으켰던 문제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죠. 대표적으로 신흥국 기업들의 달러 표시 회사채 규모가 작지 않아 타격을 입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규모가 과거 금융 위기를 촉발했던 것만큼 크지 않죠. 터

키와 아르헨티나도 문제가 있지만 1997년, 2008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작아요. 일부 경제학자가 ‘위기 재발’을 이야기하고 어쩌면 그들이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제가 보기에는 2000년대 중반 ‘주택 버블’과 같은 큰 위기를 일으킬 만한 요인은 없어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속도와 시기가 적절한가요.
“저라면 인상하지 않을 겁니다. Fed가 금리를 너무 일찍 올렸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국이 완전고용을 회복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노동시장의 수급이 굉장히 타이트한 상황이고요. Fed가 경제 상황을 옳게 진단한 것일 수 있죠.

그렇다고 해도 그에 대한 비용이나 조치가 잘못됐거나 비대칭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만약 Fed가 경제를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진단한 것이라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예상과 달리 경제 활황이 나타나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져도 인플레이션이 조금 높아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Fed가 경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예상과 달리 앞으로 경기가 둔화된다면 이번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떨어질 텐데,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Fed는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장기적으로 침체가 나타나면 그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니까요. 아까 말한 구조적인 장기 침체와 연관되는 부분이죠.”

대담=장승규 편집장/ 정리=이정흔 기자/ 사진=김기남, 이승재 기자

vivajh@hankyung.com

[커버스토리='폴 크루그먼의 경고' 인덱스]
-독점 인터뷰① "미국 금리 인상 성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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