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랩’ 투자 나선 국내 대기업들…‘모빌리티 혁명에서 소외’ 위기감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동남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Grab)’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기업들이 줄을 잇는다.
국내 기업만 해도 삼성·현대차·SK·네이버·미래에셋 등이 지분 투자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했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도요타가 그랩에 1조원 넘게 베팅했고 소프트뱅크·디디추싱 등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 2013년 우버 논란 이후 제자리
이유는 멀까. 미래에 대한 투자다. 승차 공유는 앞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이뤄질 인공지능(AI)·자율주행 등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을 기술과 연결지어 줄 중요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 사업이 자동차 산업에서 핵심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자동차 관련 시장 매출액 규모의 98%가 차량 판매(73%), 정비·유지보수(25%) 등이다. 자율주행·전기차와 승차 공유는 각각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2030년에는 승차 공유업이 모빌리티와 협업하며 전체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차량 판매(40%)를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랩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승차 공유 스타트업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우버 승차 공유 서비스를 벤치마킹한 기업이다. 우버에 비해 특별한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애플리케이션(앱) 기능이나 지도의 정확도도 우버와 비슷하거나 뒤처진다. 다만 가격이 우버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하나 있다. 그랩은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동남아 시장을 석권했다. 우버를 밀어내고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달성한데 이어 최근에는 우버 동남아사업부도 인수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우버를 밀어낼 승차 공유 기업도, 그랩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찾을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규제’다. 동남아보다 통신망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고 앱이나 맵을 만들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도 보유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한국은 1990년대 택시나 렌터카 사업에 적용하던 규제를 승차 공유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윤이 발생하는 운송을 하기 위해선 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업자 등록을 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반 개인 차량이 이윤을 목적으로 운행하면 불법이다. 이 때문에 2013년 국내에 설립된 우버코리아가 법적 논란에 휩싸이며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1년도 못가 영업정지를 당했고 졸지에 범죄를 저지른 기업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는 우버를 본뜬 사업 서비스 모델이 없다. 어떻게든 법적 규제를 비켜 가기 위해 만들어진 반쪽짜리 승차 공유 서비스만 출시되고 있다. 그마저도 이 업체들이 서비스를 시작하면 항상 적법성 논란이 뒤따른다.
규제의 주된 명분은 이용자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택시를 포함한 전통 산업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승차 공유 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풀러스’나 ‘럭시’처럼 일부 승차 공유 업체들이 수십억원 정도의 투자를 유치한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벤처 투자 시장의 블랙홀과 같았던 소셜 커머스나 배달 서비스 등에 비하면 임팩트가 약하다. 투자가 미미하다 보니 유니콘(조 단위 기업 가치를 나타내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할 조짐을 나타내는 승차 공유 기업도 없다.
물론 운송과 관련해 승차 공유 서비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렌터카 개념처럼 차량을 공유하는 서비스 기업도 있다. 쏘카나 그린카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사정은 승차 공유업보다는 한결 좋다.
아직 규제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운행 안 하는 차량을 나눠 쓰는 사회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됐고 기업들의 투자도 일정 수준 이상 이뤄지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같은 운송 공유 서비스인데 승차와 차량의 공유 서비스가 차이가 나는 것은 기존 시장 점유자들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의 기존 사업자들은 대부분이 렌터카 회사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차량 몇 대를 운영하는 소규모 업체가 주를 이룬 산업이었지만 2010년도 들어서면서부터 KT·롯데·CJ대한통운·AJ 등이 장악했다.
이렇다 보니 쏘카나 그린카가 시장에 진입했을 때 반감이나 견제도 상대적으로 덜했다. 오히려 롯데렌터카는 그린카를 인수하기까지 했다.
반면 승차 공유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바로 운송 서비스업의 개인 사업자인 택시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종사자가 16만4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승차 공유 서비스가 시작되면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해 반발하고 있다.
◆ 승차 공유 시장, 2040년 3조 달러 규모로
승차 공유 서비스의 장점은 낮은 가격과 가용성·편의성 등이다. 택시보다 저렴하고 택시 면허가 없는 운전자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배차 차량이 늘어나 승객 대기시간이 줄어든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반길 수밖에 없는 사업 구조다.
하지만 국내의 승차 공유 서비스는 규제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글로벌 승차 공유 시장은 특정 국가와 기업들이 빠르게 선점하고 있다.
승차 공유의 시초인 우버는 이미 북미와 유럽을 선점했고 그랩은 동남아시아, 디디추싱은 중국, 얀덱스는 러시아, 카림은 중동을 장악했다.
특히 중국의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이미 업계 1위 우버(620억 달러)를 위협하고 있다. 천문학적 인구에 힘입어 이용자 수도 4억5000만 명을 넘어섰다. 기업 가치만 560억 달러(약 63조1600억원)로 평가받는다.
세계적으로 승차 공유 시장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승차 공유 관련 사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2025년 2000억 달러(약 22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2040년에는 3조 달러(약 336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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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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