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승차 공유' 해법 찾기]
-국내 승차 공유 시장의 경우 규제 많고 반발 거세

-삼성·현대차·SK 등 해외서 공격적 투자 이어가
국내 대기업들이 동남아 승차 공유 업체 ‘그랩’을 움켜쥔 이유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전 세계 곳곳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가 각광받으며 쑥쑥 커 나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는 예외다. 각종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시장 성장을 기대하기는커녕 택시업계의 반발 등으로 사회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관련 사업을 시작했던 스타트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기에 투자했던 기업들 역시 최근에는 해외 업체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현대차, 택시업계 반발에 국내투자 포기


그동안 많은 국내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승차 공유 서비스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국내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의 행보를 펼쳐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규제라는 장벽과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의 반발에 가로막혀 대부분이 성과를 내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 경우도 빈번했다. 현대차를 예로 들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럭시’의 지분 일부를 50억원에 사들였다. 현대차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 럭시와 함께 다양한 공동 연구를 통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확대할 구상을 세웠었다. 실제로 몇몇 성과물도 나왔다.

현대차의 차량을 리스로 구입한 뒤 출퇴근할 때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을 차량 리스 요금 상환에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또 운전자의 출퇴근 이동 패턴과 탑승객의 수요를 분석해 효율적인 배차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와 럭시의 ‘밀월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현대차의 행보에 택시업계에서 ‘밥줄을 빼앗는다’는 비판을 제기했고 결국 현대차는 올해 2월 럭시의 지분을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에 매각했다.

택시업계 역시 현대차의 판매량을 좌우하는 주요 고객인 만큼 택시업계의 반발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SK그룹도 그간 국내 업체 중 ‘쏘카’와 ‘풀러스’등에 대규모 투자(지분율 각각 28%, 20%)를 진행했지만 해당 업체는 역시 각종 규제와 택시업계의 견제에 부닥치며 여전히 적자를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에 승차 공유 시장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향후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이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여서 반드시 기반을 다져 놓아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상원 흥국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버나 그랩 등이 제공하는 승차 공유 서비스는 차량들의 활용도를 소폭 높이는 수준”이라며 “무인화가 가능한 자율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운행하지 않는 자동차를 이론적으로 24시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승차 공유 서비스가 미래 사회의 핵심 서비스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내시장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고 해서 지체하다가는 나중에 시장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어려울지도 모를 노릇이다.


◆해외업체로 기업들 투자 무게추 이동


이에 따라 최근에도 국내 기업들의 해외 승차 공유 사업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 추세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국내보다 해외 업체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동남아 시장을 기반으로 무섭게 성장 중인 ‘그랩’이 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잇달아 그랩에 ‘러브콜’을 보낸 상태다.

우선 현대차는 럭시에서 손을 떼기 직전인 지난 1월 그랩에 269억원을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 사실상 멈춘 승차 공유 서비스 시장 확대라는 목표를 해외에서 달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그랩 투자를 통해 동남아 지역 차량 호출 서비스에 현대차 공급을 늘리고 차량·이용자·주행 여건 등 각종 정보를 취합, 보다 개선된 서비스와 사양을 개발하는 데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어 2월에는 삼성전자가 그랩과 전략적 제휴(MOU)를 체결하며 차량 공유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점검 중이다. MOU를 맺음으로써 그랩이 주요 공항·호텔·쇼핑몰 등에 설치하는 키오스크와 부스에 자사의 제품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SK 역시 지난 3월 그랩이 진행한 약 2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참여해 810억원을 투자했다. 현재 국내에서 투자 중인 쏘카와 그랩의 협력 등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동남아 승차 공유 업체 ‘그랩’을 움켜쥔 이유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그랩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8월에는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가 그랩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랩은 현재 기업 가치가 약 6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 승차 공유 시장의 성장성을 감안하면 그랩의 기업 가치는 아직 저평가됐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그랩을 제외하더라도 올해 국내 기업의 투자를 받은 해외 관련 업체들은 여럿 있다. 미래에셋은 그랩에 앞서 중국 승차 공유 서비스 1위 업체인 디디추싱에 2800억원을 투자했다.

또 현대차는 지난 7월 호주 차량 공유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 현지에서 가입자 수 6만여 명을 확보한 스타트업 ‘카넥스트도어’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카넥스트도어는 2013년 호주에서 차량 공유 사업을 시작, 개인이 개인에게 시간 단위로 차를 대여해 주는 개인간 거래(P2P)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 업체다.

차를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설정해 놓으면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 차가 필요한 다른 고객에게 연결해 주는 형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현대차는 카넥스트도어와 차량·스마트폰을 연결하는 앱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문을 여닫는 것은 물론 차량 시동도 걸 수 있는 기능을 앱에 탑재해 소유자와 대여자 간 차 키 전달이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승차 공유와 차량 공유 서비스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며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된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서 다양한 시도와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내 대기업들의 시선이 지나치게 해외로 기울면서 국내 승차 공유 시장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는 스타트업들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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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