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22조 프로젝트 우선협상자 지위 상실…건설 자금 조달 방식 놓고 이견
영국 무어사이드 악재...원전업계는 ‘망연자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정부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야심차게 추진한 22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 수주 성공이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무어사이드 원전 우선협상자였던 한전이 지난 7월 갑작스럽게 그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던 영국 원전 수출이 불투명하게 되면서 업계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만약 협상이 최종 불발되면 원전업계의 일감 부족이 현실화하면서 원전 산업 생태계가 향후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탈원전에 대한 논란 역시 이를 계기로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탈원전 정책 여파’ 논란


한전은 2013년부터 영국 원전 사업 수주에 뛰어들었다. 다방면으로 자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광동핵전공사(CGN)를 따돌리고 우선협상자 지위를 따냈다.

이때만 해도 정부와 한전은 상반기 중에 사업권 인수를 마무리 짓겠다고 자신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 이은 또 한 번의 원전 수출의 성공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협상이 진행되자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돌아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7월 31일 한전의 영국 원전 우선협상자 해지 소식을 알린 것이다. 산업부 측은 “한국전력은 일본 도시바로부터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사업자인 ‘뉴젠(NuGen)’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에서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했다고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무어사이드 원전 개발사업권을 가진 뉴젠 지분 전체를 보유하고 있다. 아직 협상이 최종 결렬된 것은 아니지만 자칫하다가는 오랜 기간 공들여 온 원전 수출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감도는 상황이다.

사실 한전의 이번 우선협상자 해지는 국내 탈원전 정책 영향보다 사업의 수익적 측면에서 양측 간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발생했다.

한국의 첫 원전 수출 사례인 바라카 원전은 아랍에미리트 정부에서 자금을 마련하고 국내 기업이 건설·운영을 맡도록 협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무어사이드 원전은 상황이 아예 다르게 전개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영국 측은 한전이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 원전 건설을 마칠 것을 요구했고 직접 원전 운영을 통한 수익을 통해 원전 건설에 들어간 투자비를 회수하도록 요구했다. 산업부와 한전은 영국 정부와 계속 협의를 진행해 왔지만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고 결국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사우디 수주도 장담 못해

아직 수주가 최종적으로 불발이 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원전업계는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 신고리 5·6호기가 완공되면 더 이상 추가 원전 계획이 없다.

따라서 원전 부품·기자재 업체들은 영국 원전 수주에 그 어느 때보다 큰 희망을 걸고 있었다. 영국 원전 수주가 불투명해지자 자연히 관련 중소기업들은 살길이 막막해질 것이라는 걱정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국내에선 탈원전 정책으로 입지가 줄어든 가운데 영국 원전 수주마저 실패한다면 아예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영국 원전 수주에 실패하더라도 내년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 건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수주 여부가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러시아·중국 등 경쟁국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사업 수주를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적극적인 수주 활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국들과 치열하고 험난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만약 한전이 원전 해외 수주에 잇달아 실패하면 정부는 다시 한 번 탈원전 정책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전 생태계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선 사실상 해외 수주밖에 답이 없다”며 “해외 수주가 불발돼 관련 중소기업들이 무너지면 국내 원전업계 전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김학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원자력 '믹스'한 합리적 전기 공급 방안 찾아야”
영국 무어사이드 악재...원전업계는 ‘망연자실’
김학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역시 탈원전에 따른 국내 원전 경쟁력의 상실을 우려해 계속 ‘탈원전 반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원자력학회는 원자력 유관 산·학·연이 참여하는 전문 단체로 회원 수만 4900명에 이른다.

김 회장은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면 특히 뛰어난 인재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원전업계에 발을 내디디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곳곳에서 그런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만약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등이 전기를 끊임없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면 원전은 사실 설 땅이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며 “신재생과 원자력들을 적절히 섞어 가장 합리적인 전기 공급 방안을 펼치는 정책이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계속 탈원전이 이어진다면 해외 원전 수출 역시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할 때만 해도 한국 원전은 싸고 건설 공기도 잘 맞춰 협상할 때 ‘세계 최고’라는 자랑거리를 들이밀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신규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하니 이런 얘깃거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런 부분을 정책 당국자들이 헤아려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아직 그런 고민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만약 계속 탈원전 정책이 이어 갈 수밖에 없다면 해외 수주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비즈니스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원전 수주는 정부와 정부 사이의 비즈니스다.

정부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과거 한국만 봐도 예전에 미국·프랑스·캐나다에서 원전을 수입할 때도 최종적으로는 각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와서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 성사시켰다”며 “지금도 세계 각국 정상이 원전 수주를 위해 직접 움직이는 만큼 정부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