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북태평양 바다에 한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거대한 섬이 있다. 사람은 살 수 없지만 UN에는 이 섬을 공식 국가로 인정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진다.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1호 시민을 자처한 이 섬의 이름은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다.
2018년 3월 발표된 GPGP 공식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섬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개수는 약 1조8000억 개, 무게는 8만 톤이나 된다.
플라스틱이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해양 생물을 위협한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프란스 팀머만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일회용 플라스틱은 생산하는 데 5초, 쓰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린다”며 “인류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50년 후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년 비닐쓰레기에 목이 낀 채 살아가는 바다거북, 배를 가르자 쓰레기더미가 나온 고래 등 사람이 버린 쓰리기로 인해 죽은 해양 생물들의 사진이 공개된다.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먹이사슬에 영향을 끼쳐 궁극적으로 인류 건강과 식량 문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생산된 플라스틱 중 재활용되는 것은 3~5% 정도다. 나머지 95%는 매립되거나 바다로 흘러간다.
아일랜드국립대 연구팀에 따르면 대서양 수심 300~600m 심해어 7종 가운데 70%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플라스틱으로 고통 받는 해양 생물들의 참혹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경각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지만 대대적인 플라스틱 금지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올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주축이 돼 플라스틱 퇴출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플라스틱이 환경오염을 넘어 인류의 생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피부에 직접 와 닿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퇴출 방아쇠 당긴 중국
전 세계 정부의 플라스틱 퇴출 움직임에 방아쇠를 당긴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부터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물을 수입해 왔지만 2017년 전격적으로 수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거부로 쓰레기가 갈 곳을 잃자 전 세계 정부가 플라스틱 ‘규제’를 넘어 ‘금지’라는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사이먼 엘린 영국재활용협회 회장은 BBC에 “오랫동안 플라스틱 쓰레기의 25% 이상을 중국으로 보내 왔기에 단기적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2042년까지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환경보호 전략을 발표했다.
5월에는 EU가 해양 쓰레기를 줄일 방안으로 2021년까지 플라스틱 면봉이나 빨대, 풍선 막대, 식기 등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금지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회원국 정부의 동의를 받으면 2025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병의 90%도 수거해야 한다. 이어 6월에는 칠레가 국가 차원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전격 금지했다.
미국 시애틀은 미국 도시 최초로 지난 7월부터 술집과 식당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식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대략 5000개 음식점에서 빨대와 일회용 식기를 제공하지 않거나 종이로 만든 대체품을 사용하게 됐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스타벅스도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로 하면서 호응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KOTRA에 따르면 중국은 2016년에만 무려 730만 톤에 달하는 폐플라스틱을 수입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재활용 폐기물 대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내놓았다.
제품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단계별 개선으로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139만2000톤) 줄이고 현재 34%인 재활용률을 7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제조·생산 단계에서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단계적으로 퇴출한다. 대표적으로 음료수 용기로 쓰이는 유색 페트병을 2020년까지 무색으로 투명하게 바꾼다. 병에 붙은 라벨은 재활용하기 쉽게 잘 떨어지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제품은 언론에 공개한다.
또한 폐기물 쓰레기의 주원인 중 하나인 ‘과대 포장’ 예방 가이드라인을 10월까지 마련하고 내년에는 법적 제한 기준을 설정할 방침이다. 전자제품 과대 포장 기준은 9월 마련된다. 대형마트 등에서 이중 포장과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막고 제과점 등에서도 종이봉투 사용을 유도할 계획이다.
◆“매장에서 드시면 머그컵 괜찮을까요?”
당장 8월부터 적용되는 규제도 있다. 8월부터 카페 매장에서 음료를 마시는 손님에게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제공하면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는 8월 2일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2015년 커피 전문점에서 사용된 일회용 컵 사용량은 61억 개였다. 1년 동안 1인당 카페에서 평균 120개의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일회용 컵 사용량을 2022년 40억 개로 줄이고 8%에 불과한 재활용률은 5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카페업계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스타벅스는 연내에 종이 빨대를 전 매장에 도입하고 비닐 포장재를 단계적으로 퇴출시킬 예정이다. 또 올해 안에 스타벅스 회원의 개인 컵 활용 시 혜택 확대를 위한 에코 보너스 스타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회용 컵 사용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지속 추진 중이다.
엔제리너스커피는 국내 최초로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도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드링킹 리드’ 뚜껑을 도입한다. ‘드링킹 리드’는 뚜껑에 뚫은 구멍이 기존의 빨대 역할을 해 차가운 음료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구조로 제작됐다.
재활용이 어렵고 분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됐고 8월 13일부터 순차적으로 전국 매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시민들의 참여도 크게 늘어났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올 들어 ‘개인 다회용 컵’을 사용해 300원 할인 혜택을 받은 고객이 7월 말까지 300만 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2월엔 각 30만 건 안팎이었지만 7월엔 2배 가 넘는 70만 건에 달하는 등 갈수록 개인 컵 사용 고객이 급증하는 추세다.
엔제리너스에서도 개인 컵 사용자가 크게 늘었다. 7월 1일부터 8월 6일 사이 개인 컵을 사용해 할인 혜택을 받은 횟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6배 가까이 증가했다. 개인 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텀블러 등 관련 상품 매출도 같은 기간 전년 대비 20% 늘었다.
엔제리너스는 올 5월부터 다회용 컵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할인 혜택을 기존 300원에서 400원으로 올렸다.
이처럼 플라스틱 퇴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플라스틱을 대체하려는 흐름이 유통업계 전반에 확대되고 있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는 올해 4월 환경부와 ‘비닐·플라스틱 감축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각 업체들은 식료품 주변에 놓인 대형 비닐 롤백을 줄이고 소형 롤백을 늘리는 식으로 비닐 사용을 줄여 나가기로 했다.
이마트는 전국 157개 매장에서 속비닐(얇은 일회용 비닐)을 줄이고 롤백 설치 장소를 25개에서 10개 안팎으로 줄였다. 그 결과 지난 6월 전체 매장의 속비닐 사용량이 월 60톤에서 36톤으로 40% 감소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전 점포에 ‘대여용 장바구니’를 도입했다.
편의점업계도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 중이다. CU는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도시락 용기를 도입했다. CU가 도입한 친환경 도시락 용기는 코코넛 껍데기를 활용한 바이오매스(생물계 유기 자원) 소재를 적용했다.
이 용기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약 40% 감축할 수 있고 플라스틱보다 쉽게 자연적으로 분해된다. 또 내년 상반기에 별도 플라스틱 덮개를 없앤 ‘실링(sealing)’ 포장 기법 도시락도 새롭게 선보인다. 이 포장 방식을 도입하면 연간 소비되는 플라스틱 덮개 중 약 30%를 절감할 수 있다.
GS25는 도시락 용기를 친환경 원료인 바이오 폴리프로필렌(PP) 소재로 바꾼다. 바이오 PP는 기존 도시락 용기에 사용하는 PP에 무기물인 탤크(이산화규소)를 혼합한 친환경 원료다. GS25는 8월 출시되는 신상품에 친환경 용기를 적용하기로 했다. 세븐일레븐은 일회용 플라스틱 얼음컵에 적힌 브랜드 로고와 바코드 등을 없애 재활용하기 쉽도록 했다.
◆대기업은 적극적 대응, 소상공인은 걱정
글로벌 기업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케아는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과 식당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홈퍼니싱 제품 중 빨대·접시·컵과 냉동 보관용 봉투 등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생산도 전면 중단한다.
또 2030년까지 제품 설계 시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만 사용하고 제품 생산에서 배송까지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제품당 평균 70% 감축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스포츠 용품 브랜드 아디다스는 향후 6년 내에 신발과 의류 용품에 재활용 폴리에스터만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6년 재활용 물병을 이용한 러닝화를 처음으로 대량생산했던 아디다스는 올해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활용한 신발 500만 개 판매를 목표로 하고 내년에는 1100만 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난 6월에는 해양 쓰레기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새활용해 제작한 ‘울트라부스트 팔리’ 러닝화를 출시하기도 했다.
아디다스 외에도 최근 영국과 유럽 등에서 확산하는 플라스틱 사용 규제 움직임에 발맞춰 대응하는 스포츠 및 의류업계도 늘고 있다. 현재 파타고니아·H&M 등이 일부 제품에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사용하고 있다.
호텔업계 역시 빠르게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5개의 하얏트호텔은 9월부터 호텔 내 플라스틱 빨대와 음료 막대 폐기 계획을 실행한다.
세계적 호텔 체인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은 2019년 7월까지 전 세계 30개 브랜드의 6500개가 넘는 모든 호텔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커피 스틱을 퇴출한다.
이처럼 대형 업체들이 별 문제없이 플라스틱 퇴출에 대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소규모 업체와 자영업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우선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를 대체하면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 머그잔을 사용하면 설거지량이 급증하기 때문에 추가 인력 고용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되면서 비용 부담이 큰 상황에 플라스틱 퇴출에 따른 과태료 부담까지 지게 된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 컵 사용이 지금은 하나의 문화로 고착화됐기 때문에 현실 가능한 대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다회용 컵 사용과 자기 컵 사용에 따른 혜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와 함께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통해 소비자의 인식을 크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5호(2018.08.13 ~ 2018.08.19)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