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가디언지가 올린 기사 제목이다. 가디언은 이 기사를 통해 페이스북 고위 임원 중 그 누구도 정상적으로 개인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심리적 취약성을 파고들어 이용자를 중독 상태로 이끈다고 분석했다.
페이스북 창립자와 전 임원들의 양심 고백도 이어졌다. 숀 파커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는 지난해 10월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자사 플랫폼에 사람들을 오래 머무르게 하려고 더욱 중독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고 그 결과 소셜 미디어 중독 현상이 한층 더 심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나, 저커버그, 인스타그램을 만든 케빈 시스트롬은 모두 이(중독 현상)를 인식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페이스북 전 부사장도 지난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학술대회에서 “우리가 만든 단기적이고 자극적인 순환 고리는 사회 작동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며 “사회 담론과 협력은 사라지고 잘못된 정보와 거짓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박탈감 대신 현실에 집중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본성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소셜 미디어는 어느새 현대인의 삶을 바꿔 놓았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훔쳐보고 자신의 상태를 공유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향을 받는다. 기업과 기존 미디어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격변하는 흐름에 맞춰 변화했고 ‘파급력 있는 개인’의 탄생도 소셜 미디어와 함께했다.
하지만 최근 소셜 미디어의 문제를 자각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전 축구감독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이 문구를 인용해 소셜 미디어의 역기능이 발발할 때마다 퍼거슨에게 1승을 추가해 준다.
취업 준비생 최정인(26) 씨도 최근 인스타그램 애플리케이션(앱)을 삭제했다. 이유는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여서’다. 그동안 올린 게시글과 팔로워가 아까워 계정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처지와 인스타그램 속 친구들의 일상을 비교하면 우울감에 빠졌다.
아르바이트, 취업 스터디, 어학 관리까지 본인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스타그램 속 친구들의 일상은 늘 새롭고 설렘 가득해 보였다. 최 씨는 상대적 박탈감에 앱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소셜 미디어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과도한 몰입이나 타인과의 비교에 따른 SNS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6월 13~16일 SNS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SNS 사용자 10명 중 4명(40.9%)이 ‘별다른 실속이 없는데 SNS 관리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 같다’는 생각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했다.
10명 중 4명은 다른 일에 방해 받거나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있다(40.6%)고 밝히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탈퇴 방법과 탈퇴 후기를 작성한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디톡스(스마트폰·컴퓨터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단식 상태)’, ‘소셜 블랙아웃(소셜 미디어를 완전히 차단한 상태)’ 등 소셜 미디어 세계를 떠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사용자 이탈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앱 조사 기관 와이즈앱은 지난 4월 국내 이용자의 페이스북 이용 시간이 1년 새 2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구글 플레이 내 ‘소셜’ 카테고리에 등록된 대부분의 소셜 미디어의 총사용 시간도 같은 기간 155억 분에서 130억 분으로 16% 감소했다. ◆‘소셜 블랙아웃’ 늘어
휴가 기간 동안 ‘소셜 블랙아웃’을 실행한 직장인 정유미(26) 씨는 ‘인스타그램 중독자’였다. 그는 1시간에도 몇 번씩 접속해 새로 업데이트된 피드를 살펴본다. 게시글을 올린 날에는 ‘좋아요’와 댓글 수에 따라 그날 기분이 좌우된다.
수백 명의 인플루언서를 팔로워하면서 그들이 가는 곳과 입는 옷을 모두 저장해 놓는다. 그런 그가 4박 5일 떠나는 휴가 기간 만큼은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하기로 했다. 정 씨는 “그동안 일상을 즐기기보다 SNS에 사진 올리는 게 인생의 목적이었던 것처럼 보여주기 식 삶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며 “이번 휴가를 통해 SNS 사용 시간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온전히 휴식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맺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가짜 뉴스와 홍보성 게시글에 대한 피로도 소셜 블랙아웃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트렌드모니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의 가장 큰 단점으로 개인의 사생활 침해가(65.3%, 중복 응답) 꼽혔다. 그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어렵고(36.7%) 잘못된 정보로 사회적 갈등이 확대될 우려가 있으며(29.1%) 인간관계 단절 가능성(23.5%)을 지적하는 응답도 나왔다. ◆넘치는 정보로 인한 피로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하는 이진성(가명·43) 씨는 페이스북 친구가 5000명이다. 페이스북 친구 한도를 꽉 채웠기 때문에 새로 만난 사람이 페이스북 친구라도 하자고 하면 지금 있는 친구 중 한 명은 지워야 한다.
언뜻 보면 인맥 관리의 달인 같지만 이 씨는 얼마 전 회의감을 느껴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했다. 페이스북에 업계의 트렌드를 발 빠르게 공유하고 이슈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온 그가 돌연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씨는 “소셜 미디어가 새로운 인맥을 쌓고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도구는 맞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능력 개발보다 페이스북 게시글에 더 신경 쓰는 나를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페친들의 ‘좋아요’나 댓글 하나에 일희일비하거나 더 있어 보일 법한 생각을 짜내기 위한 노력을 멈춰도 돼 자유로워진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에서 방대한 사회적 관계를 쌓을 경우 피로해지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론이 있다. 바로 ‘던바의 수’다.
옥스퍼드대 인지·진화인류학 연구소 소장을 지낸 로빈 던바 교수는 한 사람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수가 ‘150명’이 한도라고 주장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실제로 소속감을 느끼며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크기는 150명으로 동일하다. 지나치게 방대한 사회적 관계와 소셜 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서재현(28) 씨도 최근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폭파’했다. 모순적이게도 서 씨의 업무는 고객사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관리다.
서 씨는 “아는 사람들끼리 일상을 공유하는 사적 공간처럼 시작한 소셜 미디어가 이제는 홍보 게시물과 거짓 정보가 판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제품 광고가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뜰 때면 편리하다기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기분을 느낀다.
서 씨처럼 기존 친구들과의 일상 공유보다 과다한 정보와 홍보성 게시글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용자들이 늘고 있다. 이는 페이스북도 인지하고 있는 사용자 이탈의 원인이다.
페이스북은 이탈하는 사용자를 막기 위해 기존 페이스북의 역할이었던 친구와 가족 간 ‘네트
워킹’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내놓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연초 2018년 뉴스피드 개편에 관한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뉴스피드 상단에 게재되는 순위를 업데이트해 자신이 관심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저커버그 CEO가 늘 강조해 온 “우리는 플랫폼이지 미디어 회사가 아니다”라는 철학을 이어 가기 위한 노력이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은 브랜드 사용자들의 참여도가 더 줄어든다는 위험을 감수했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 개편으로 브랜드 페이지의 도달 범위, 동영상 감상 시간 및 추천 트래픽이 감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업이 소비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미끼형 광고도 모두 검열 대상에 속하게 됐다.
실제 이용자들이 광고나 과도한 정보에서 얻는 피로를 낮추기 위해서다.
◆SNS 중독 사회적 문제로 제기
소셜 미디어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새로운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있는 소셜 미디어가 쉽게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트렌드 모니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SNS를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사용자는 29.7%로 적은 수준이었다. SNS가 실속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인맥 관리나 정보 활용 등 여러 장점을 가진 SNS의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SNS 활용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오히려 SNS를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20대 34.8%, 30대 30%, 40대 27.6%, 50대 26.4%)는 의견이 더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0대들의 페이스북 이탈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시장조사 업체인 이마케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12~17세 연령층 중 페이스북 이용자는 9.9% 감소했다. 이마케터는 올해 페이스북 이용자가 11세 이하 연령층에서는 9.3%, 12~17세 연령층에서는 5.6%, 18~24세 연령층에서는 5.8%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소셜 미디어 중독이 술이나 마약 중독과 유사한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연구 결과(영국의 노팅엄트렌트대)가 발표되는 등 SNS 중독 현상은 사회적으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론이 고조되자 페이스북이 이달 초 ‘과다 사용 방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보내는 시간을 이용자들이 스스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모바일 앱에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앱에서 보낸 시간을 하루 또는 주간 단위로 이용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이용자 스스로 과다 사용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과다 사용 방지를 위해 ‘사전 사용 시간 설정’ 기능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하루 1시간 사용으로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면 푸시 알림을 통해 경고한다는 것이다.
또 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바일에서 푸시 알림을 일정 시간 무음으로 설정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한다. 데이비드 긴즈버그 페이스북 리서치담당 이사는 “이 기능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도구와 통찰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들의 장기간 사용을 유도해 온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이 느끼는 피로와 염증을 받아들여 자정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은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일상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6호(2018.08.20 ~ 2018.08.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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