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1188호 (2018년 09월 05일)

‘홍대 시대’ 연 애경그룹, 올해 ‘매출 6조’ 뚫는다

기사입력 2018.09.03 오후 06:08

-새 성장 동력 제주항공 매출 전년비 26%↑…화장품 사업도 순항 중

애경그룹 6개사가 홍대입구역 근처 통합사옥인

애경그룹 6개사가 홍대입구역 근처 통합사옥인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애경그룹이 ‘홍대 시대’를 열었다. 애경그룹은 지난 8월 본사를 홍대(서울특별시 마포구) 인근으로 이전하고 지주회사인 AK홀딩스와 애경산업 등 화학을 제외한 자회사를 한 지붕 아래로 불러들였다. 본사 이전은 구로에 둥지를 튼 지 40여 년 만이다. 

제주항공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은 애경은 공항철도가 있는 홍대입구역 신사옥 건물에 호텔·복합쇼핑몰을 오픈해 항공·호텔·쇼핑을 한데 묶었다. 애경그룹의 사무 공간뿐만 아니라 AK플라자에서 운영하는 쇼핑몰 ‘AK&홍대’가 1층에서 5층까지 자리잡고 있다. 

제주항공에서 운영하는 호텔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서울 홍대’도 문을 열었다.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이 공항철도로 바로 연결되는 만큼 자유 여행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제주항공을 타고 온 관광객이 공항철도를 타고 홍대입구역에 내려 바로 호텔까지 들어가고 AK플라자에서 쇼핑을 한 후 홍대 인근 관광까지 즐길 수 있는 구조다.

홍대·연남동 상권이 1020세대와 외국인 관광객 밀집 지역인 만큼 젊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쇼핑·생활&뷰티 등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도 기대된다. 업계가 애경의 본사 이전을 새로운 도약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애경도 대혁신을 예고했다. 애경은 신사옥 시대를 기점으로 올해를 그룹의 ‘퀀텀 점프’의 해로 삼았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올해 영업이익 20% 성장을 목표로 46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세웠다. 2016년 투자금액(1306억원)보다 253.8%, 지난해(2958억원)보다 56.2% 증가한 규모다. 공격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애경그룹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3% 성장한 약 1900억원, 매출액은 8% 증가한 약 3조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20% 성장 목표는 현재까지 무난하게 달성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룹의 핵심인 애경산업과 제주항공은 영업이익과 매출액 모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가도 상승세다. 그룹 내 상장사인 AK홀딩스·애경유화·제주항공·애경산업의 시가총액 합계가 4조원을 넘어 새로운 도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홍대 시대’ 연 애경그룹, 올해 ‘매출 6조’ 뚫는다


◆한국 최초로 화장비누 시대 열어  
애경은 지주사인 AK홀딩스를 정점으로 생활·항공·화학·유통·부동산 개발 등의 분야에서 46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이다. 애경의 탄생은 비누에서 시작됐다. 그룹의 시초가 제주 출신 창업자 고(故) 채몽인 사장이 설립한 비누 공장 애경유지공업이다. 

채 사장은 1945년 광복되던 해 대륭양행을 설립하고 1954년 무렵 대륭산업을 한국의 10대 무역 업체로 성장시켰다. 이때 채 사장 눈에 유지공업이 들어왔다. 전쟁이 끝난 후 유지공업이 낙후돼 대부분 가정에서 양잿물이나 겨비누로 세탁하는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 때문에 채 사장은 1953년 유지공업 진출을 결정하고 비누 제조업체인 애경사를 유지 공장 예정지로 인수했다. 당시 인천역 뒤쪽에 있던 애경사는 원래 일본인이 설립한 업체였다. 채 사장은 유지공업 진출을 위한 첫걸음으로 애경사를 인수한 다음 회사 설립을 위해 본격적으로 인적 구성에 나섰다. 

애경유지는 창업 첫해인 1954년 세탁비누 23만5996개를 생산해 13만7061개를 판매했다. 휴전 후 국민의 보건위생과 직결되는 필수품인 비누는 정부에서 장려하는 사업이기도 했다.

애경유지는 세탁비누에 이어 ‘미향비누’를 개발하며 1956년 한국 최초로 국산 화장비누 시대를 열었다. ‘미향비누’는 1958년 들어 월 100만 개가 판매되는 신화를 남겼다. 당시 인구나 경제 규모로 볼 때 단일 제품을 한 달에 100만 개 판매한다는 것은 한국 기업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국내 최초 주방 세제 ‘트리오

국내 최초 주방 세제 ‘트리오



◆양잿물 대신 트리오 개발  
애경유지는 출범 직후 단순히 비누 제조업에 머무르지 않고 알키드레진·폴리라이트·가소제·무수프탈산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해 낸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화학공업계에서는 애경유지를 ‘한국 화학공업의 효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당시 가소제가 국산화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애경유지는 가소제·알키드레진·폴라이트를 모두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석유화학공업과 관련된 원료의 수입을 대체해 국가 경제에도 기여한 셈이다. 

한국 합성세제의 역사도 애경과 함께 탄생했다. 합성세제는 비누 이외의 합성에 의해 만든 세제를 뜻한다. 비누의 주원료가 천연 동식물 유지인 것과 달리 석유 자원에서 얻은 원료를 주요 세정 성분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선 1966년 애경유지와 락희화학이 국내 최초의 합성세제를 생산, 시판했다.   
애경유지는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 생활 향상, 세탁기 보급 확대에 힘입어 합성세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세탁비누로 빨래하던 습관을 고치기 힘들었던 주부들에게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애경유지는 합성세제 판매가 초반 부진에 빠져들자 주방 세제로 눈을 돌렸다. 이때 탄생한 제품이 바로 한국 최초의 주방 세제 ‘트리오’다. 

트리오는 출하 이후 짧은 시간 내에 시장점유율 70~90%를 달성했다. 1960년대 주부들은 설거지할 때 양잿물과 쌀뜨물, 심지어 모래·흙까지 동원해야 했다. 채 사장이 주방 세제에 뛰어든 이유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66년 12월 국내 최초의 주방 세제 트리오가 출시됐다. 채소·과일·그릇 등 세 가지를 모두 씻을 수 있다고 해서 이름이 ‘트리오’였다. 처음엔 채소와 과일에 묻은 기생충을 없애준다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한국기생충박멸협회에서 제품 사용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더 입소문이 났다. 1980년대 말 트리오 광고 모델로 발탁된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인체에 무해한 세제라면 머리를 감아도 되겠네”라며 트리오로 머리를 감은 일화는 트리오의 안정성을 입증하면서 트리오 인기에 날개를 달아 줬다. 

채 사장의 곁에는 늘 부인 장영신 현 회장이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 화학을 전공한 부인 장 회장은 남편이 시장조사 때 들고 온 카탈로그와 팸플릿, 제품 설명들을 번역했고 자료 조사를 도왔다. 창업자인 채 사장이 1970년 갑작스럽게 타계하자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부인 장영신 현 회장이 1972년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장 회장은 남편이 시작한 비누 사업은 그대로 하되 미래 애경의 지표를 ‘화학공업’으로 설정했다. 처음으로 실력을 발휘한 것은 1972년 말 1차 오일쇼크 때였다. 장 회장은 불황 타개책의 일환으로 과감한 시설 투자와 조직 활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세탁기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여서 비누 대신 합성세제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고 취임하자마자 대덕에 8264㎡(2500평) 규모의 대규모 합성세제 공장을 지었다. 장 회장의 선견지명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1975년 공장이 준공될 무렵 합성세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플라스틱 용기류를 생산하는 성우산업을 출범시켰고 폴리에스터 수지를 제조하는 애경화학, 합성세제 원료를 생산하는 애경쉘, 도료 메이커인 애경공업, 애경유지의 사업을 그대로 이은 애경산업 등을 차례로 설립해 규모를 키웠다.

특히 비누·세제류 최초로 홍콩 수출을 성사시킴으로써 능력을 인정받았다. 비누 세제와 석유화학을 두 기둥으로 한 애경의 성장사는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현재 애경그룹의 중요한 축이 되는 애경산업의 탄생 역시 장 회장이 이끌었다. 장 회장은 1984년 영국 브랜드 유니레버와 합작해 애경산업(주)을 설립했다.

장 회장은 애경에 유리한 합작 조건을 제시하며 경영을 주도했다. 당시 장 회장은 당당한 태도로 외국 업체 임원들 사이에서 ‘터프 우먼’으로 불렸다. 장 회장은 화장품 사업에서 관심이 저조했던 ‘클렌징’ 시장에 주목했다.

그리고 백화점·호텔·전문 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던 유통 채널을 약국과 슈퍼마켓으로 확대했다. 1994년에는 청양공장에 별도의 애경산업 화장품연구소를 출범시켜 연구·개발(R&D)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장 회장이 기틀을 닦은 화장품 사업은 지금도 애경그룹 전체 실적을 이끌고 있는 ‘효자 사업’이다. 장 회장의 탁월한 경영 수완으로 애경그룹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도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장 회장의 사업 다각화는 유통으로 이어졌다. 장 회장은 1993년 애경유지 공장이 있던 영등포 부지에 애경백화점 구로점(현 AK플라자 구로본점)을 열었다. 애경백화점은 비누·세제 이미지가 강하던 애경을 한 단계 성장시킨 계기가 됐다.  

애경그룹의 기틀을 닦은 장 회장은 애경 창사 50주년을 맞은 200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현재 장 회장의 3남 1녀가 모두 애경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사업 다각화 주도한 2세들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채형석 총괄부회장은 장 회장의 장남이다. 2006년 총괄부회장에 오른 뒤 사실상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다. 채 총괄부회장은 생활용품업 중심이던 애경그룹의 포트폴리오를 유통과 항공 등으로 다각화하며 그룹의 사업 반경을 넓힌 인물이다.

그룹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하고 본인이 총대를 메고 키워낸 제주항공을 비롯해 주요 계열사 성과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장남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 부회장은 열 살 남짓한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인 장 회장에게 큰 버팀목이 됐다. 존경하는 인물로는 늘 어머니를 꼽는 효자이기도 하다.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애경은 지난해 10년간 유지해 왔던 사업 부문 체제를 폐기하고 지주사 중심의 수직 계열화 체제를 구축했다. 

부문 체제 폐기로 그룹의 핵심인 생활항공부문(애경산업ㆍ제주항공)을 총괄했던 안용찬(59) 부회장은 제주항공 경영만 책임지게 됐다. 장영신 회장의 사위인 안 부회장은 제주항공 탄생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그룹 유통 사업을 총괄하던 장 회장의 차남 채동석 부회장은 자리를 옮겨 애경산업 경영을 맡게 됐다.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채 총괄 부회장이 처남과 동생을 투톱체제로 내세우며 가족경영을 더 체계화했다. 

채형석 총괄부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 지분 16.14%를 보유한 대주주다. AK홀딩스가 제주항공(57.1%)·애경산업(39.3%) 등 주요 계열사 대주주인 만큼 채 총괄부회장이 지주사를 통해 전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다. 

애경산업 경영을 맡은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왼쪽)과 제주항공 경영을 맡은 안용찬 제주항공 대표이사.

애경산업 경영을 맡은 채동석 애경그룹 부회장(왼쪽)과 제주항공 경영을 맡은 안용찬 제주항공 대표이사.



◆제주항공·애경산업이 성장 이끌어  
2세대들이 그룹 경영을 지휘하면서 애경그룹은 새로운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제주항공이다.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항공 사업은 이제 애경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넘어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국내에서 운항을 시작한 초창기 시절만 해도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항공사가 살아남기 위한 핵심 조건은 안전과 서비스인데, 많은 이용객들이 생소한 이름으로 등장한 LCC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처음 취항한 제주항공이 5년 넘게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자 애경그룹 내부에서는 “괜히 항공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회사 경영을 책임지던 채형석 총괄부회장은 제주항공을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제주항공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주축 사업 중 하나인 면세점 사업을 정리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애경은 AK면세점 지분 81%를 롯데그룹에 28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애경으로선 서울 강남권 노른자위 땅인 삼성동 코엑스 면세점을 포기하는 ‘빅딜’이었다.

당시 애경의 선택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시선이 압도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2010년 이후부터 국내 LCC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형 항공사들의 자리마저 넘볼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이 같은 저비용 항공업의 성장에 힘입어 업계 맏형 격인 제주항공의 시가총액은 아시아나항공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제주항공은 올해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5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제주항공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5918억원으로 전년(4682억 원) 대비 26.4%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33.9% 증가한 581억원으로 수익성 개선에도 성공했다. 

제주항공의 성공 비결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한 것이다. 애경그룹은 당시 면세점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항공기를 추가로 투입했다. LCC임에도 대형 항공사 못지않도록 예약 발권 시스템과 예매 홈페이지 등 정보기술(IT)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인사 정책도 제주항공 위주로 진행됐다.

애경그룹은 애경소재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주상길 사장을 초대 제주항공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해 애경그룹 유전자를 심었다. 이후에는 대한항공 비행훈련원장 등을 거친 후 제주항공 설립 초기 자문을 맡았던 고영섭 사장을 CEO로 발탁해 저가 항공의 고질병으로 지목됐던 운항 안정성을 확립하는 데 집중했다.

제3기 수장은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 출신의 김종철 사장에게 맡겨 기업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후 채 총괄부회장의 처남이자 제주항공 탄생의 일등 공신인 안용찬 제주항공 대표이사가 경영을 맡으며 혼전을 거듭하는 국내 저가 항공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홍대 시대’ 연 애경그룹, 올해 ‘매출 6조’ 뚫는다


제주항공·애경유화와 함께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는 또 다른 자회사는 애경산업이다. 애경산업은 올 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며 애경유화·AK홀딩스·제주항공에 이어 애경그룹의 넷째 상장사가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치약·샴푸로 유명하던 애경산업의 새로운 꿈은 바로 ‘화장품 기업’으로의 변신이었다. 생활용품 시장의 성장성은 더디지만 화장품 시장은 아직 매력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상반기 화장품 매출이 처음으로 생활용품 매출을 앞지르며 애경산업은 오랜 꿈을 이뤘다. 상반기 전체로는 매출 3434억원, 영업이익 432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4%, 61% 늘었다.

특히 ‘AGE 20’s(에이지투웨니스)’와 ‘루나(LUNA)’ 등 화장품 매출은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보다 63% 증가하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2%까지 확대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애경산업의 매출 비율은 화장품이 42.7%, 생활용품이 57.3%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역시 전체 영업이익의 96%가 화장품에서 창출될 만큼 화장품이 효자 역할을 했다.

수년간 이렇다 할 로드숍 브랜드 없이 고전해 오던 애경산업은 2012년부터 ‘견미리 팩트’로 홈쇼핑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올 하반기에는 새 브랜드 출시와 중국과 일본 공략을 통해 화장품 사업을 더 확대할 예정이다.

[돋보기 : ‘국내 1호 여성 대기업 CEO’로 꼽히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홍대 시대’ 연 애경그룹, 올해 ‘매출 6조’ 뚫는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1호 여성 최고경영자(CEO)’이자 ‘여장부’로 통한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재계에서는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 기업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네 자녀와 회사를 짊어진 장 회장의 어깨는 더없이 무거웠다. 지금이야 여성 기업인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이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조차 흔하지 않던 시대다.

나이든 임원들은 젊은 여성 CEO 아래에서 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시 동안 사장을 맡고 있던 장 회장의 오빠마저 회사 주요 임원들을 데리고 회사를 떠났다. 

장 회장은 자서전에서 “당시 나는 왕따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사장이었지만 한동안 직원들이 결재조차 받으러 오지 않았고 이사회에서 임원들이 나누는 얘기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회사를 대표해 경제인 모임에 나갔다가 자신만 홀로 여자라는 자격지심에 기둥 뒤에 숨어 서 있다가 오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계열사를 10개 이상 설립하며 사업을 확대하고 업계 최초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등 애경의 경영 체제를 확립해 나갔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필라델피아 체스트넛힐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장 회장은 유학 시절 ‘악바리’로 통했다. 장 회장이 집필한 자서전에는 장 회장의 미국 유학 시절 일화가 잘 나타나 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처음 1년간 옷 입은 그대로 책을 베고 책상에 누워 잤다. 깊은 잠에 빠지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유학 시절 경험한 국제 감각은 애경의 첫 수출길을 열고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다. 

엘리트 여성이었던 장 회장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채몽인 사장과 결혼해 주부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막내아들(채승석 애경개발 사장)을 낳은 지 사흘 만인 1970년,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으며 경영인의 삶에 뛰어들게 됐다. 타계한 남편의 1주기를 계기로 장 회장은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았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8호(2018.09.03 ~ 2018.09.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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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9-04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