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Ⅰ ‘땀과 시간의 결정체’ 서울의 전통 장인들①]
-서울 미래 유산 선정된 ‘불광대장간’ 박경원 대표가 말하는 ‘일의 의미’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순수한 노동이 쌓이고 쌓여 ‘최고 경지’에 올랐다. 한 분야나 기술에 전념하며 그 일에 정통한 사람. 우리는 그를 장인(匠人)이라고 부른다. 하루아침에 장인이 되지는 못한다. 매일 갈고닦고 만들어 낸다.

오랜 세월 부단한 성실함으로 하루하루에 충실해 온 서울의 장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말했다. “먹고살려고 시작했지.”
“60년 이어온 불과의 동행…대장간 인기상품은 캠핑용 손도끼”
‘깡!깡!깡!’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골목에서 경쾌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불광대장간 가마에도 불이 지펴졌다. 섭씨 영상 2000도까지 올라가는 가마에서 쇳덩이를 꺼내 메질하는 두 대장장이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불광대장간의 박경원(80) 대표와 그의 아들 상범(48) 부자(父子)는 서울 한복판에서 불을 피우고 쇠를 두드린다. 첨단화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대장간을 찾는 이들이 있고 대장장이의 힘과 기술은 녹슬지 않았다.

55년 세월을 지켜 온 가마와 모루(받침으로 쓰는 쇳덩이)도 그대로다. 제품이 탄생하는 모든 단련 작업은 손으로 이뤄진다. 대장간에서 기계라고는 가마 열을 식혀줄 선풍기가 전부다.
“60년 이어온 불과의 동행…대장간 인기상품은 캠핑용 손도끼”

◆석공·인부들 사이에서 입소문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들이 원하는 도구도 조금씩 변했어요. 요즘은 캠핑용 손도끼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요. 외국산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은 비싸지만 구하기도 힘들고 금방 망가지거든요.”


한 고객의 부탁으로 서비스 차원에서 만든 캠핑용 손도끼가 어느덧 캠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효자 제품으로 거듭났다.


요즘 누가 대장간을 찾을까 싶지만 취재 중에도 사람들의 발길과 전화 주문이 이어졌다. 부엌칼을 사가는 사람, 호미와 낫을 사가는 사람, 시골에서 전화로 손도끼와 곡괭이를 주문하는 사람 등 백가지가 넘는 물건만큼 손님들의 요구도 가지각색이다.


“제일 꾸준히 찾는 단골손님은 석공하시는 분들과 건설 인부들이죠. 석공 연장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이 1년에 100개라고 한다면 우리가 70개를 만들어요. 전국을 누비며 일하는 분들이어서 전국 곳곳에 있는 건설 인부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어요. 해남·제주·안동·의정부·익산 등 직접 써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죠.”


물건마다 새겨져 있는 ‘불광’ 마크는 불광대장간의 자부심이자 명예다. 선물 받은 사람들도 불광 마크만 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올 정도다.
“60년 이어온 불과의 동행…대장간 인기상품은 캠핑용 손도끼”

◆한 우물만 파라


불광대장간의 역사는 6·25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대 대장장이인 박경원 대표는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이었던 강원 철원을 떠나 경기 용인으로 피란을 왔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박 대표는 학교 가는 길에 있던 대장간에서 하루 국수 한 그릇을 얻어먹는 조건으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휴전 후 철원에서 농사를 짓다가 열일곱 살 때 서울로 올라와 전문적으로 기술을 익혔다.

더 쉬운 일도 있었겠지만 박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이었다. 아침 조회 때마다 하시던 “한 우물만 파라”던 말이 유독 귀에 들어와 어릴 적 어깨너머로 배웠던 대장장이 일을 택했다.


“옛날에는 대장간이 없으면 다른 산업이 돌아갈 수 없었죠. 농사를 지을 때나 집 짓고 수리할 때도 대장간에서 만드는 연장이 필요잖아요. 서울에 와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곳은 을지로7가였는데 그 일대가 다 대장간이었어요. 그때는 거기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 없었죠. 우리끼리 을지로7가 대장간이 세상에서 제일 클지도 모른다고 농담했을 정도예요(웃음).”


박 대표가 기술을 배우고 불광동에 자리 잡은 것은 1963년이었다. 1991년부터 아들 상범 씨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2013년에는 불광대장간이 역사성과 희소성을 평가받아 서울시 미래 유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상범 씨의 아들 역시 3대째 가업을 이어 받을 생각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땀 흘려 일하는 보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손님들이 좋아하고 또 찾아줄 때죠. 우리가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쓰는 사람이 몰라주면 우리 존재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누군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의미가 있죠.”


쇳덩이가 뜨거운 화마에 여덟 번 들어가고 수백 번을 단조하고 연마해야 겨우 하나의 도끼가 완성된다. 누군가는 극한 직업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사양산업이라 말하는 게 대장간이다.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변할 시간 동안 대장간 앞을 지켜 온 장인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일의 의미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자식들 밥 먹이고 학교도 보내고 그러다 보니 일이 고마워지고. 그게 진짜 순수한 의미 아니겠어요?”


kye0218@hankyung.com


[스페셜리포트 Ⅰ ‘땀과 시간의 결정체’ 서울의 전통 장인들]

-“60년 이어온 불과의 동행…대장간 인기상품은 캠핑용 손도끼”

-"'자부심과 고귀함', 3대째 양복에 목숨 거는 이유예요"

-"이 구두는 49년간 쌓아온 제 자존심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1호(2018.09.17 ~ 2018.09.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