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생태계 함께 연 삼성과 애플…경쟁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쟁은 괴로운 일이다. 늘 더 잘하려 노력해야 하고 언제 어디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서 애써 만든 사업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 궁지에 몰린 경쟁자가 덤핑으로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경쟁이 없는 세상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다. 경쟁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즐거운 일이다.
경쟁자는 나의 존재를 만들어 주는 고마운 이고 같이 판을 키워 더 많은 기회를 만드는 협력자이기도 하다. 눈앞의 경쟁에만 몰두해서 이겼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얻을 것 없는 경쟁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더 넓은 시야로 사업의 생태계를 읽고 경쟁과 협력의 전략으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자는 동업자이기도 하다
애플은 삼성전자에 어떤 존재일까. 세계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두 회사가 같이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어 온 면이 있다. 삼성맨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애플이 먼저 아이폰을 내놓고 세상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비슷한 개념의 제품을 안정적이고 튼튼하게 만드는’ 삼성의 사업 공간이 열린 것이 사실이다.
세계의 산업과 금융의 중심에서 그 힘을 지렛대로 삼은 스티브 잡스처럼 삼성 경영진이 스마트폰을 통신 기기를 넘어 미디어와 문화의 일부로 띄울 수 있었을까.
애플에도 삼성은 고마운 존재다. 애플은 매킨토시 컴퓨터 시절부터 일정한 성격과 범위의 충성도 높은 집단에 초점을 두는 전략을 추구했다. 아이폰도 미디어와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지불 능력이 있는 시장을 목표로 잡았고 독자적 운영체제(OS)와 콘텐츠 전달 구조를 설정했다.
어차피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한적 점유율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스마트폰 자체의 저변을 넓히고 통신 서비스 회사나 유통기구 등이 스마트폰 중심의 체제로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삼성이라는 ‘액정화면이나 통신장비 등 사업적 이해관계도 맞물리는’ 경쟁자가 있어 도움이 되는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가구거리를 예로 들자면 가구 매장은 모여 있어야 장사가 된다. 고객을 뺏기는 효과보다 더 많은 고객이 찾아오는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제법 지출이 크고 한번 사면 오래 써야 하는 가구를 한 군데 매장만 가 보고 결정할 수 없거니와 매장이 모여 있어야 운송 업체나 부속품 업체도 근처에 모이게 된다.
백화점이 비슷한 매장을 한 층에 모아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도 다를 바 없다.
싸움은 이겨야 한다. 경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 넓게 보면 경쟁은 전략의 작은 부분이고 경쟁자는 나와 같이 판을 키우는 동업자다. 미워하고 망하기만 기원하는 것은 전략의 지혜가 아니라는 얘기다. 상가번영회가 왜 있으며 사업자들의 협회는 왜 있겠는가.
◆경쟁은 스타와 스토리를 만든다
경쟁은 스타와 스토리를 만들어 판을 키우기도 한다. 경쟁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슈가 생기고 예측하기 어려운 승부는 긴장감을 더욱 높인다. 경쟁과 스토리를 선호하는 미디어의 속성에도 부합한다. 광고나 마케팅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대중의 참여가 이어지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라이벌이 있어야 흥행이 된다는 것은 미디어 세계의 상식이다. 1970년대 남진과 나훈아가 그 예이고, YS와 DJ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사립대들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 구도를 부러워할 정도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은 무명의 출연자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스타로 만들고 대중을 끌어들인다. 때가 덜 묻은 소년·소녀들의 애타는 모습은 그대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미 만들어진 스타는 대중에게 멀리서 볼 수밖에 없는 별과 같은 존재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존 경쟁에는 대중의 참여가 가능하다. 두근거리는 경쟁의 과정에서 ‘내가 만든 스타’가 탄생하게 된다.
미스코리아 대회나 정당의 후보경선도 사실은 비슷한 면이 있다. 경쟁의 과정에서 감동적인 스토리가 나오면 스타성은 더 높아진다. 탈락한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다. 감동과 재미를 주면 떨어져도 스타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이기고도 욕만 먹는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로지 우승을 위해 억지로 한국시리즈 상대를 만들었다가 욕만 먹고 막상 시리즈는 져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된 구단의 사례도 있다.
대중은 완벽한 슈퍼 히어로를 동경하면서도 어려운 과정을 거친 사람의 성공 스토리를 함께 만들고 싶어 한다. 모범생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와 어두운 그늘을 가진 아이언맨이 같이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경쟁을 이해하고 즐겨야만 부족함을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감동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경쟁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애덤 브란덴버거 하버드대 교수는 ‘협동적 게임이론’의 틀로 경쟁자와 협력 업체 등 다양한 관련자가 맞물려 가치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코피티션(coopetition)’의 개념인데, 경영자의 가장 큰 과제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쟁과 협력의 구조를 만들거나 고르는 일이다.
자연생태계의 형성과 진화에 비유해 볼 수도 있다. 자동차 산업의 예를 보자. BMW와 현대자동차, 제너럴모터스(GM)가 시장점유율을 놓고 벌이는 개체(individual) 수준의 경쟁이 있다면 기존 완성차 업계가 전기자동차나 자율주행자동차의 등장에 대응하는 종(specie) 단위의 경쟁도 있다.
나아가 소비자·부품업체·미디어·금융시장과 맞물려 다양한 운송수단과 도시 시설물의 일부로서 함께 생존하고 변화해 가는 생태계 전반의 진화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절대우위’· ‘난공불락’은 자멸의 길
현명한 경영자는 눈앞의 경쟁자를 이기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경쟁과 협력의 생태계를 읽어서 나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낸다.
프로야구를 예로 들어 보자. 프로야구는 구단 사이의 승패를 넘어 재미있고 감동적인 경기를 해야만 스포츠 시장에서 팬과 시청자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구단 수입이 나아지면 구장 운영력이 개선되고 홍보 효과가 높아지며 장기적으로 선수 수급도 좋아진다.
시청자가 많아지면 광고 수입이 늘고 방송사도 TV 카메라를 수십 대로 늘려 더 실감 나고 다양한 화면을 보여준다. 그러면 야구팬도 더 늘어난다. 팬과 시청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축구·농구, 나아가 드라마와의 경쟁에서도 이기게 된다. 학교 야구와 동호인 야구의 기반이 커지면서 야구용품 사업도 잘된다.
오로지 우승하기 위해 상대팀의 강타자가 나오면 거르고 경기 시간을 질질 끌다 보면 팬과 시청자를 잃게 된다. 비싼 외국인 선수를 끌어모아서 압도적으로 우승을 하면 어떨까. 역시 빤한 승부에 팬과 시청자가 떠난다. 특색 없는 맥 빠진 경기로 실망만 줘도 마찬가지다. 현명한 구단주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내용 있는 경기를 하도록 코치진과 선수단을 구성하고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적절한 자율 규제를 이끌어 낸다.
재미와 감동, 내 고향에 기반을 둔 나의 팀, 나의 스타가 팬덤으로 이어지면 나름의 공간이 생긴다. 여기에 ‘세계의 스타와 겨뤄도 당당한’ WBC 야구와 같은 성과가 더해지고, 류현진과 추신수 같은 선수의 활약이 있다면 ‘우리 야구도 훌륭하다’는 자긍심이 작동한다. 당장 눈앞의 승부에 집착해 선수를 혹사시키고 해외 진출도 틀어막는 구단과 이러한 한심한 구단 운영을 강요하는 구단주는 경쟁과 협력의 다양한 게임을 통해 판을 키우는 전략의 지혜가 없는 이들이다.
싸움은 이겨야 하지만 필요 없는 싸움이나 이겨도 얻을 것 없는 싸움은 피해야 한다.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노역으로 땅 파는 데 1등 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성을 만들어 전쟁을 이겨 낸 나라는 없다. 성 안에 숨는 순간 군대는 움츠러든다. 난공불락의 성을 쌓겠다고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사이 다른 쪽의 약점은 더 커지고 상대는 이 틈을 다양한 우회전술로 파고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마지노선’이 대표적 사례다.
현실의 경쟁은 서로 수가 맞물리는 복합전략 게임이므로 ‘필승의 전략’은 없다. 상대에 따라 전략·전술이 달라야 하고 필요한 능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특정 사업 분야에서의 경쟁우위는 더 넓은 범위에서 전개되는 사업생태계에 무력해질 수 있다.
다양한 사업자와 사용자가 맞물린 사업적 관계에서 사업의 주도권은 이러한 관계를 이어주는, 특히 사용자 접점을 확보한 참가자에게 돌아간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컴퓨터 프로세서를 만들어도 그 가치가 사용자에게 인식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경쟁자는 우월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소모적 가격 경쟁을 벌여 애써 만든 신제품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아예 회사를 통째로 사서 없애 버릴 수도 있다. 눈앞의 경쟁을 넘어 더 큰 판을 읽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전략의 지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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