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여론조사에서 보수권 대선 후보 중 1위…안정감은 강점·지지 기반은 약점
몸 풀기 나선 황교안, 새로운 ‘보수 아이콘’ 될까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차기 대통령 선거가 3년 반 넘게 남았는데도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잠재 후보들이 서서히 몸 풀기에 나선 양상이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끝나고 차기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구성하는 내년 2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당내 대선 경쟁이 본격 달아오를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차기 당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계파별로 의원들의 물밑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 소속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반도 넘기지 않은 상황이어서 차기 주자들이 움직이기엔 시기가 이르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상황은 다르다.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 패배, 지난 6월 지방선거 참패로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설령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낮아지더라도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밑바닥에서 정체 상황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당을 힘 있게 끌고 갈 구심점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임시 지도부인 김병준 비대위 체제로는 당을 결집하기엔 한계가 있다.


◆점차 적극적으로 변하는 발언들

이 가운데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황 전 총리는 지난 9월 수필집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서 물러난 뒤 1년 4개월 동안의 침묵을 깨고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는 지난 대선 땐 대권 후보로, 지방선거에선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나서지 않았다. 언론과의 접촉도 피했다.

하지만 최근엔 달라지고 있다. 기자들의 접촉과 질문을 피하지 않고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청년을 챙겨야 할 때”라고 했다.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은 것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특유의 ‘NCND(확인도 부인도 않는 것)’ 태도를 보였지만 정치권에선 황 전 총리가 정치 행보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가 “(총리) 재임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뜻했지만 이루지 못한, 비전을 가졌지만 이루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한 것부터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 저도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미 정치권에 반 발쯤은 들여놓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간이 갈수록 정치권을 향한 발언이 좀 더 적극적으로 돼가고 있다. 10월 초 언론 인터뷰에선 “나라가 어려우니까 회복을 시키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으고 키워야 한다”며 “중도와 보수의 역량 있는 분들이 힘을 합쳐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지도부 내에서 바른미래당과 당외 인사들을 포괄하는 ‘통합 전대론’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 동조 의견을 밝힌 것이다. 평소 과묵하고 신중한 황 전 총리가 정치 현안에 대해 이런 정도로 의사를 표명한 것을 보면 이미 결심이 선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온다.

물론 아직 자유한국당 내 사정이 황 전 총리에게 판을 깔아줄 정도는 되지 못한다. 그가 적어도 겉으로는 NCND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지난 9월 20일 유기준 윤상현 윤상직 등 자유한국당 의원 6명이 전당대회 출마를 권유하자 황 전 총리는 “결심이 서면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전당대회에 도전하겠지만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는 “아직 어떤 조직을 만들고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근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그에게 유리하기 돌아가고 있다. 알엔써치가 지난 9월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황 전 총리는 12.9%의 지지율로 범보수 후보군 가운데 수위를 차지했다(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0%포인트). 리얼미터의 지난 9월 27~28일 조사에서도 그는 13.9%로 역시 범보수 1위였다(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2.5%포인트). 보수층 지지율에선 압도적이다.



◆‘확고한 권력 의지’가 숙제

그가 보수층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우선 보수층이 바라는 전통적인 조건을 갖췄다. 검사 시절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써 ‘미스터 국보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김현희 KAL기 폭파, 임수경 밀입북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을 수사했다. 법무부 장관 때인 2013년 9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RO(지하혁명조직)사건’으로 구속되자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고 관철시켰다.

아직 보수를 대변할 뚜렷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 것도 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 등 행정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비교적 안정적인 이미지를 남겼고 총리·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를 통해 도덕성을 검증받은 것 등도 강점이다.

관건은 그의 권력 의지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온갖 진흙탕을 만나면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 점에서 황 전 총리와 경기고 동기동창인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생전 회고가 주목된다. 황 전 총리는 고교 시절 학도호국단 연대장(학생대표)을 지냈다. 노 전 의원은 “황 전 총리는 고교 시절 신중한 성격에 리더십이 있었고 목소리가 우렁차 연대장 역할에 어울렸다”며 “정치권에 진출하면 잘 적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권에 뛰어들면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는 점은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탄핵 공동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탄핵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국정 2인자로서 도의적인 책임까지 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에 확고한 기반이 없다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아무리 지명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당권과 대권을 거머쥐려면 정치적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좌절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고건 전 총리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최근 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황 전 총리 대망론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친박계 김진태 의원은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의 2선 후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친박의 지원은 양면성이 있다.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안고 가야 한다는 면에선 부담이다. 정치적 반대파의 거센 공세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황 전 총리가 대선 주자로 입지를 확보하려면 친박을 넘어 지지세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황 전 총리의 정치 데뷔 시점은 내년 전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황 전 총리의 전대 출마 가능성을 40% 정도로 봤다. 친박계 다른 의원은 “황 전 총리의 출마를 원하는 기류가 확산된다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며 “황 전 총리도 판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당권을 넘어 대권 경쟁에서 보수 아이콘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그의 정치력에 달렸다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