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농촌에서 꽃피는 '혁신 DNA' 한국의 스마트 파머들-스마트 파머④]
-스마트폰으로 소 150마리 밥 주는 범당골 한우랜드 신갑섭 대표

[한경비즈니스=(임실)정채희 기자] 전북 임실군에 특별한 한우 농가가 있다. 배고픈 송아지에게 젖먹이 로봇이 우유를 주고 소들은 자동 급식 기기에 줄지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삼시 세끼, 끼니때마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지만 소들은 배를 곯지 않는다. 약 15만㎡의 대지에서 사육되는 한우 150마리가 첨단 정보기술(IT)로 관리되는 이곳, 한우 스마트 팜 모델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범당골 한우랜드를 찾았다.
“젖먹이 로봇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 가능해졌어요”

◆“삼시 세끼 자동 급여, CCTV로 확인”


축산을 전공하고 축산 전문 기자로 일한 신갑섭(51) 대표는 50년째 이어진 농장의 명예를 잇기 위해 2007년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았다. 신 대표는 축사도 늘리고 현대화 작업을 지속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밀려드는 시대에 단순한 현대화로는 뭔가 부족했다. 때마침 2016년 4월 농촌진흥청이 한국형 축산 스마트 팜 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한우·젖소·양돈·산란계·육계 등 시범 농가 5곳을 모집한다고 공고를 냈다. 이른바 ‘6차산업’으로 농가에 변혁이 오는 시기였다.

“전국 한우 농가 대표로 범당골 한우랜드가 선정됐어요. 농진청과 시범 농가 협약을 맺고 3년 계약했습니다. 농진청은 우리 축사에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 팜 모델을 무료로 구축해 줬습니다. 그 대신 저는 시설을 활용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농진청에 보내는 일을 맡았습니다. 실제 사용하면서 오류나 개선점 등을 말해주면 해당 업체와 농진청이 데이터를 수집해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죠.”

한우 스마트 팜 모델 농가에 선정된 이후 범당골 한우랜드에 최첨단 정보기술(IT) 시설이 설치됐다. △폐쇄회로(CC)TV를 시작으로 △온도·습도 수집 장치(FAN) △사료 잔량 측정 장치 △사료 자동 급이 장치 △송아지 젖먹이 로봇 등이 도입됐다. 이러한 첨단 시설은 신 대표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앱)과 연계돼 손안에서 150두의 한우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스마트 팜 도입 후 자리를 비워도 소들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게 가능해졌어요. 그것도 소의 월령에 따라, 몸무게에 따라, 임신 여부에 따라 사료를 달리 줄 수 있어 소 관리가 더욱 정밀해졌어요.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많은 소들에게 정해진 양을 일일이 준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거든요. 제가 할 일은 그날그날 스마트폰 앱으로 사료를 먹지 않거나 먹지 못하거나 덜 먹은 소들이 있는지만 점검하면 되는 것이죠.”
“젖먹이 로봇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 가능해졌어요”
신 대표의 말대로 범당골 한우랜드의 24시간은 매우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먼저 축사에 설치된 사료 자동 급이 장치와 연결된 앱을 통해 소의 먹이 시간을 설정한다. 그리고 각각의 소에 설정된 아이디카드 번호대로 소의 월령과 임신 여부 등을 확인해 사료의 정량을 입력한다.

실제 그가 입력한 프로그램에 맞춰 밤 12시와 오전 8시, 오후 4시 등 세 차례에 걸쳐 사료 자동 급이 장치 문이 열린다. 소들은 돌아가며 기기 안에 몸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기기가 소의 아이디카드를 인식해 설정된 ‘맞춤 사료’를 쏟아낸다. 보통의 소들이 3~5kg, 임신한 소 또는 도축을 위해 관리되는 소들은 10kg 등 정량은 저마다 다르다.

기기의 문이 열리면 축사 안의 소 50여 마리가 모두 사료 자동 급이 장치를 향해 줄을 서는데 한 번 먹이를 먹은 소에게는 중복 급식이 제어되기 때문에 모두에게 고르게 나눠 줄 수 있다. 이전 같으면 그가 새벽마다 일어나 하루 두세 번, 손수레에 사료 포대 12개(300kg)를 담아 소들에게 일일이 3kg씩 분배해야 했을 일이다.
“젖먹이 로봇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 가능해졌어요”

◆120두에서 150두로, 생산성 증대


소 각각의 급여 현황은 실시간으로 신 대표에게 전달된다. 신 대표는 집 안에서 혹은 외부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어떤 소가 사료를 덜 먹었는지 사료탱크가 비지 않았는지 현황을 점검한다. 예컨대 000943번의 아이디카드를 단 소는 전날 3.04kg을 먹어 정량(3kg)을 채웠고(101%), 오늘은 2.09kg을 먹어 70%만 먹은 것으로 확인되는 식이다.

“소들은 몸에 이상이 있으면 사료를 잘 먹지 않아요. 이전에는 100여 마리의 소 중 누가 사료를 먹었고 먹지 않았는지 일일이 관리하는 게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밀한 관리를 통해 병든 가축을 발견하는 게 빨라졌어요.”

사료를 먹지 못하는 어린 송아지들에게는 ‘젖먹이 로봇’이 쓰인다. 자동 급여 시스템이 분유와 뜨거운 물로 우유를 조제하면 어미 소의 젖을 본뜬 젖먹이 로봇이 송아지에게 급여하는 방식이다. 격리된 공간에서 포유를 하기 때문에 송아지가 각종 세균으로부터 감염될 일도 줄었다.

“모유 상태가 좋지 않으면 송아지가 일찍 죽습니다. 이런 환경에 놓인 송아지들을 조기에 발견해 젖먹이 로봇이 송아지를 키울 수 있도록 합니다. 젖먹이 로봇은 마치 커피머신처럼 분유와 뜨거운 물을 조제해 생후 3개월 미만 송아지들에게 하루 3리터씩 젖을 주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로봇 포유류’라고도 부르고 있죠.”
“젖먹이 로봇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 가능해졌어요”
스마트 팜 도입 전과 도입 후 2년간의 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젖먹이 로봇 도입을 통해 송아지 폐사율은 약 10%에서 5%로 감소했다. 또 암소의 비임신 기간을 나타내는 평균 공태일은 60일 이상에서 45일로 줄었다. 한우의 평균 분만 횟수를 나타내는 평균 산차 수는 2015년 3산이었지만 현재는 4산으로 증가했다.

생산성 제고는 곧 소득 향상으로 돌아왔다. 신 대표의 가축 수는 2016년 120두에서 현재 150두로 증가했다. 사료 급여나 가축 관찰과 같은 단순 업무 시간이 줄면서 어미소와 송아지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젖먹이 로봇 덕분에 저녁이 있는 삶 가능해졌어요”
신 대표는 한우 농가에 스마트 팜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구축비용의 부담이 지금보다 줄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시범 사업 농가로 선정돼 ‘무료’로 시스템을 이용하는 행운을 얻었지만 다른 농가가 해당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의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편의성으로만 따지자면 설치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문제는 비용이에요. 보급률이 올라가려면 구축비용이 보다 저렴해져야 해요. 시범 농가의 데이터를 통해 프로그램이 안정화된다면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고 봐요. 그 후에는 기기의 서비스센터도 도나 시군 단위로 생길 수 있을 거예요.”

올해로 3년 차. 시범 농가로서의 계약은 끝나 가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의무가 있다. 스마트 팜 농가 교육장으로 범당골 한우랜드를 활용할 계획이다.

“아직은 스마트 팜이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한우 농가에 도입률이 저조한 편입니다. 제가 먼저 발을 들였으니 농가 교육으로 사용해 대중화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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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