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플래시 크래시’ 현실화 우려 확산…혼란에 빠진 세계의 중앙은행들
미 국채금리 급등…세계 금융시장 ‘대변화’ 오나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국채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3.2%대까지 올라 2011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2015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이후 우려해 왔던 국채 가격의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 순간 폭락)’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달러인덱스지수, 88에서 95로 급등


‘옐런 수수께끼(금융 완화 기조 속에 시장금리가 급등하는 현상)’라고 부를 만큼 국채 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다른 금융시장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점이다. 선진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인덱스지수는 지난 4월 88에서 95로 급등했다. 주가도 급락하고 있다.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금융 완화’보다 ‘재정정책’이 선호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간 지속돼 온 금융 완화 기조가 마무리되면 채권에 낀 거품이 한순간에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시대에 추진될 경제정책, 즉 ‘트럼프노믹스’도 국채 금리를 급등시키는 요인으로 가세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인 ‘미국의 재건’을 위해서는 도로·철도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과제가 가장 적합하다. 월가에는 1930년대식 ‘트럼프판 뉴딜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지속되면서 중국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여겨졌던 미국 국채를 내다 파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국가별 보유 국채 현황을 보면 중국의 보유분은 지난 5월부터 감소되기 시작했다. 7월에는 77억 달러에 달해 한 달 매각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한 나라가 미·중 간 마찰 등과 같은 비상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든 정책 수단이 소진됐을 때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last resort) 역할이다.


미·중 간 마찰이 무역 전쟁을 넘어 미국 국채 매각 대결로 악화된다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반비례 관계에 있는 국채 금리가 급등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당사국인 중국은 국채 가격 급락으로 자본 손실을, 상대국인 미국은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채 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본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융 완화의 필요성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각국의 중앙은행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금리 체계(interest system)’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책금리(기준금리)를 인상해야 또 다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채 매각 전쟁은 결국 ‘네거티브 게임’


각국 중앙은행 총재는 ‘그린스펀 수수께끼(정책금리를 인상했는데 시장금리가 내리는 현상)’보다 ‘옐런 수수께끼’를 더 우려한다. 여건이 성숙되지 않는데도 정책금리를 올리는 것은 성급한 출구전략과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도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대공황을 낳게 한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경험한 적이 있다.


투자자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금 융 위기 이후 거의 모든 투자자는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국채를 사들인 결과 과다 보유 상태다. 특히 한국 투자자는 북한 문제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정국 혼란이 겹치면서 보유 국채를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가별로는 중간선거 이후 지난 10년 동안 늘어난 달러 부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는 신흥국도 문제다. 지난 3월 Fed가 금리를 올린 이후 금리 차와 환차익을 겨냥해 움직이는 캐리 자금이 이탈되는 상황에서 미국 국채 금리와 달러 가치가 더 올라가면 달러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신흥국은 올해 안에 2000억 달러, 내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4000억 달러 이상 달러 부채 만기가 돌아온다. 지난 3월과 6월 회의에서 두 차례 금리를 올린 Fed는 9월과 12월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 외화 사정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9월 말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활용하는 외환상환계수로 신흥국 금융 위기 가능성을 점검해 보면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터키·파키스탄·이란·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높게 나온다. 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필리핀·스리랑카·방글라데시 등은 그다음 위험국이다.


금융 위기 발생 고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중남미 국가는 외채 위기로 학습 효과가 있는데다 미국과의 관계(베네수엘라 제외)도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이란과 터키 등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거나 협조하지 않는 국가와 중국에 편향적이거나 일대일로(신실크로드 전략) 계획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등 이슬람 국가는 IMF의 구제금융 수혈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IMF의 최대 의결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국의 금융 위기가 지속되면 한국도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논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인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시각의 가장 큰 이유는 ‘외자 이탈 방지’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가 0.75%포인트 역전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올해 안에 최대 1%포인트까지 벌어져 대규모 외자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국 경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1년 이상 추진해 왔지만 오히려 무너진 중산층까지 합류돼 더 두터워진 하위 계층일수록 가계 부채 부담이 크다. 이 상황에서 금리마저 올리면 외환위기 때보다 거리로 내몰리는 신용 불량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미국 국채 매각 전쟁은 당사자인 중국과 미국, 신흥국과 각국 중앙은행 그리고 투자자 등 참가자 모두가 손해를 보는 네거티브 게임이다. ‘세계경제 주도권 다툼’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게임을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