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펜스·피터 나바로 등 강경파 득세, “중국과 단절이 미국에 더 이익” 주장도
[한경비즈니스= 주용석 한국경제 워싱턴 특파원]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신냉전’ 수준으로 전환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정책 방향이 단순히 ‘무역적자를 얼마나 줄일 것이냐’가 아니라 ‘미국의 패권을 위해 중국을 눌러야 한다’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이다. 미 언론에서도 “대중(對中) 강경파가 득세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무역 전쟁 ‘핸들’ 잡은 3인방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 ‘신냉전 지휘관’으로 주목받는 인물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초기만 해도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행정부 2인자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비쳐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 10월 4일 보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강연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미·중 무역 갈등은 물론 중국의 미국 첨단 기술 탈취, 인권탄압, 미국 중간선거 개입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공격적으로 비판했다. 더글러스 딜런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사실상 중국과 신냉전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펜스 부통령은 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세력인 ‘티파티’ 소속이다. 6·25전쟁 참전용사 에드워드 펜스의 아들이다. 부통령이 되기 전에는 인디애나 주 연방 하원의원(임기 2년)에 6번 당선됐고 2013년 인디애나 주지사가 됐다.
나바로 국장은 일찌감치 중국에 대해 ‘슈퍼 매파(초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합류하기 전 30여 년간 중국의 환율 조작과 첨단 기술 탈취, 불공정 무역 관행을 다루며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중국과의 임박한 전쟁’, ‘웅크린 호랑이’ 등 반(反)중국 저서만 3권을 펴냈다.
중국에 대한 그의 발언도 강경하다. 그는 지난 10월 7일 폭스TV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의 희생으로 경제를 키우는 기생충”이라고 말했다. 10월 23일 CNN 인터뷰에선 “중국이 경제 강탈로 전 세계 기업들이 기술과 지식재산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수만 명의 중국인들이)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미국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캠퍼스에서 경영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자유무역과는 거리가 멀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에서 보호무역 공약을 설계했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엔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에 임명됐다.
한때 ‘자유무역파’인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에 밀려 힘을 잃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나바로 국장의 손을 들어줬고 게리 콘은 백악관을 나와야 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공화당 지도부는 나바로 국장을 미국과 세계경제에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아주 좋아한다”며 “나바로 국장은 그 누구보다 무역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을 잘 반영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1980년대 글로벌 경제와 안보에서 미국이 누렸던 독보적 지위를 되찾겠다”고 벼르는 인물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나바로 국장과 함께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중국 경제와 유대를 끊는 것이 오히려 미국 경제에 유익하다고 본다”고 소개했다.
중국과의 관세전쟁을 기술 투자 제한 등으로 확대하는데도 총대를 멨다. 지난 6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미국의 핵심인 기술 산업에서 수많은 지식재산권과 기술을 훔쳐왔다”며 “(관세 부과에 이어) 다음 단계는 중국의 미국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트럼프맨’이 되기 전 뉴욕의 로펌 스캐든에서 중국 기업을 상대로 반덤핑 소송을 주로 맡았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그의 측근들에 대해 “자유무역주의 원칙과 세계무역기구(WTO)가 무너지더라도 미국의 지배를 회복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보도했다.
◆온건파들도 ‘중국 때리기’ 가세
대중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고문도 대표적인 ‘반중국’ 이론가로 꼽힌다. 비록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한때 중국 국적의 모든 학생에게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나바로 국장과 라이트하이저 대표 등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나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 ‘온건파’의 입지가 줄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미·중 무역 전쟁 초기만 해도 타협점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은 이들조차 ‘중국 때리기’에 가세하고 있다. 므누신 장관이 지난 10월 21일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의 변경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중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 환율을 조작해 왔다고 의심해 왔다. 하지만 현행 법 기준으로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뒤 지정 기준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압박한 것이다.
로스 장관이 이끄는 미 상무부도 지난 10월 29일 중국 D램 제조사인 푸젠진화와 미국 기업의 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반도체는 중국의 제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의 핵심이란 점에서 이번 제재는 ‘중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외정책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지난 6월 해군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중국을 겨냥했다. 그는 “명나라가 그들(중국)의 모델인 것 같다”며 “다른 나라들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돼 베이징에 머리를 조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동안 중국과 대결을 읊조려 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인생에서 가장 일관된 발언이 바로 ‘중국이 미국의 경제를 위협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
“역대 정부의 중국 정책 실패, 트럼프가 그 뒤처리하는 것”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관세전쟁’을 넘어 정치·경제·군사 등 전방위에 걸친 ‘패권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오랫동안 미·중 간 충돌 위험을 경고해 온 그레이엄 앨리슨(78)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지난 10월 28일 e메일 인터뷰에서 “두 나라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행동한다면 (강대국 간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란 말을 만들어 낸 세계적 국제정치학자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급부상하는 아테네와 이를 견제하려는 스파르타 간 갈등의 결과로 설명하면서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의 피하기 힘든 전쟁 위험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불렀다.
-미·중 무역 전쟁이 계속 악화되고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다고 봅니까.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겁니다. 미·중 관세전쟁은 두 나라 모두에 심각한 해를 끼치겠지만 가장 심각한 위협은 경제적 피해가 아닙니다. 만약 투키디데스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다면 ‘중국과 미국이 역사상 최대 충돌을 향해 몽유병 환자처럼 걷고 있다’고 말할 겁니다.”
-두 나라가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건가요.
“지난 500년간 신흥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의 지위를 위협한 사례가 16번 있었는데 이 중 12번이 전쟁으로 귀결됐습니다. 즉 (미·중 간 전쟁) 위험이 실제로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16번의 사례 중 4번 전쟁을 피했다는 것은 역사의 철칙에 의해 운명이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의 요점도 운명론이나 비관론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미·중 간에 놓인 극도의 위험을 우리가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중이 치명적인 충돌을 피하려면 뭘 해야 할까요.
“두 나라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행동한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려면 (소련과의 직접적인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고안된) ‘냉전 전략’과 같은 전략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앨리슨 교수는 지난해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War)’에서 직접적인 군대의 개입이 ‘국가적 자살 행위’가 될 위험을 피하기 위해 ‘냉전’이 발명됐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어떻습니까.
“최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중국 비판) 연설 등에서 윤곽이 드러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접근법은 분명 중요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너무 단편적입니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대소련) 전략을 구체화한 조지 케넌(당시 소련 주재 미 대사)의 장문의 전보문이나 (당시 국무부 관료였던) 폴 니츠의 NSC-68 같은 핵심적인 전략 문서가 (트럼프 행정부에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뭐가 부족합니까.
“전략은 목적(ends)·방법(ways)·수단(means)이 일관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방법에 비해 목적과 수단이 미흡합니다. 중국과 전면적인 대결이 가능할까요. 구매력지수(PPP)로 평가하면 중국은 이미 미국보다 경제 규모가 큽니다. 중국은 모든 아시아 주요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입니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입니다. 미국이 이런 중국을 길들일 수 있을까요. 미국이 리드한다면 누가 따를까요. 호주와 일본 같은 미국 동맹국들은 미국 측 카운터파트에 이런 말을 합니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와 미국과의 안보 관계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도록 만들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중국이 민주적인 시장 경제국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요.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중국을 편입시키면 중국이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 법의 지배를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이해 당사자가 될 것이란 점에 베팅했습니다. 하지만 내기에서 졌죠. 그 결과를 트럼프 행정부가 처리해야 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것은 어떻게 봅니까.
“온실가스 감축과 무역 촉진을 위해 이전 행정부가 했던 주도적 역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후퇴한 것이나 미국과 동맹국의 단합된 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질서에 대한 더 큰 도전은 ‘트럼프’라기보다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재기 그리고 미국의 상대적인 힘의 쇠퇴입니다.”
hohoboy@hankyung.com
[커버스토리= “무역 갈등은 시작일 뿐” 트럼프의 ‘준비된 패권전쟁’ 기사인덱스]
-“제조업 포기는 패배주의”… 2016년 ‘나바로 보고서’ 다시 보니
-“중국은 기생충”…신냉전 이끄는 트럼프의 反중국 이론가들
-우편 전쟁에서 스파이칩 전쟁까지…미국의 준비된 ‘정밀 타격’
-전성기 일본도 ‘금융 전쟁’에 무릎… 미·중 패권전쟁 시나리오는?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