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Ⅱ : 전문가 4인이 말하는 위기 해법…M&A와 현지화 전략으로 승부해야]
“K뷰티, 더 이상 독창적인 아이디어 상품 없어”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K뷰티 신화’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때 3조원을 넘어섰던 화장품 로드숍 시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고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도 예전 같지 않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위기 2년 동안 중국 토종 브랜드가 급격하게 성장했고 럭셔리 시장은 글로벌 브랜드에 내주고 있다.

그 사이 탄탄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J(Japan)뷰티’도 약진했다. 달라진 소비 트렌드와 유통 구조를 선점하지 못한 국내 화장품 기업의 위기 원인과 해법은 무엇일까.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 노은정 숙명여대 산학협력 교수,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주임 연구원,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에게 K뷰티의 생존 전략을 물었다.


◆1세대 로드숍 몰락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노은정 숙명여대 교수(이하 노은정) “소비자들이 브랜드숍에 와야 될 만한 동기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유통 구조의 변화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어요.

또 브랜드 정체성과 가치를 스스로 지키지 못했죠. 브랜드숍끼리 할인을 경쟁적으로 남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365일 세일하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어줬어요. 할인할 때만 편집적으로 구매하는 철새 고객을 양산하는 결과를 자처했다고 봅니다.”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이하 양지혜) “트렌드의 변화가 너무 빨랐습니다. 소비자들의 구매 채널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옮겨 가면서 가맹 점주들이 다른 매장이 아니라 자사 온라인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죠. 상권 트렌드도 변했습니다.

브랜드숍 점포들은 보통 중심 상권이나 대로변에 있지만 최근에는 아예 복합 쇼핑몰이나 골목상권이 뜨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두 상권의 가치가 떨어졌어요. 사실 브랜드숍은 2~3년 전부터 이미 포화 상태였습니다.

그때 체질 개선을 준비했어야 해요. 차라리 중국인이 오지 않았더라면 브랜드숍이 소비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였을 수도 있어요. 사드로 인해 거품이 무너지면서 중국인 소비자에게 가려졌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거죠.”


◆로드숍뿐만 아니라 아모레퍼시픽의 실적도 좋지 않습니다. 원인이 무엇인가요.


▶노은정 “아모레퍼시픽은 매스티지 브랜드(명품과 달리 중산층 소비자들도 구입할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한 고가 브랜드)라는 모호한 위치에 있습니다. 중국 시장 안에서도 중저가 시장은 로컬 브랜드가 성장하고 있고 럭셔리 시장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아모레 같은 매스티지 브랜드가 있어야 할 입지가 줄어들었어요. 라네즈·헤라·이니스프리 등 아모레퍼시픽 내에 있는 다양한 브랜드도 각각의 타깃 시장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고 개성·차별점·가치를 소비자들에게 명확하게 인식시키지 못했어요.”


▶김주덕 성신여대 교수(이하 김주덕)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중에서는 설화수를 너무 믿었어요. 회사 전체로 봤을 때 에어쿠션 이후 이렇다 할 아이디어 상품도 부족했습니다.”


▶양지혜 “럭셔리 시장이 가장 중요한 중국에서 설화수와 헤라가 성장을 견인했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유통 채널의 변화도 아모레퍼시픽 실적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유통 채널을 선도해 온 기업입니다. 2000년대 방문판매로 성장했고 2010년부터 아리따움이라는 복합 매장을 통해 성장했고 이후에는 이니스프리와 에뛰드 등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숍을 위주로 성장해 왔죠. 그런데 최근에는 제삼자가 운영하는 복합 온라인몰이나 롯데나 신라 등 면세점이 직접 채널을 운영하면서 아모레퍼시픽의 유통 장악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특히 이니스프리나 에뛰드하우스 등 브랜드숍은 인건비 부담과 임차료 등 전반적인 가맹 산업이 겪는 문제를 겪고 있고요. 또 그걸 뒤에서 받쳐 주던 중국인이 빠지면서 실적이 악화된 거죠.”


◆반면 LG생활건강은 실적이 좋았는데요.


▶노은정 “LG생활건강은 럭셔리 브랜드 ‘후’가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잘해 왔습니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한방 화장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인삼·홍삼 등 원료에 대한 개발과 마케팅이 명확했어요. 성분뿐만 아니라 고가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일관적으로 전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양지혜 “아모레퍼시픽과 달리 LG생활건강은 유통 채널이 없던 브랜드입니다. 오히려 채널 장악력이 약했던 LG가 중저가 브랜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럭셔리 시장에 집중한 게 컸습니다. 더페이스샵이 이니스프리에 밀렸기 때문에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했고요.

LG는 이미 2013년부터 중저가 시장에서 중국 로컬 브랜드가 많이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내다봤어요. 그래서 후나 숨 등 럭셔리 브랜드에 집중했습니다. 때마침 2017년부터 중국 화장품 시장이 럭셔리로 확 돌아서면서 성장 동력이 됐죠. 또 차앤박 등 요즘 시장 트렌드에 맞는 작은 브랜드를 인수·합병(M&A)하면서 실적을 방어했습니다.”


◆화장품업계가 고전을 겪는 동안 중국 토종 브랜드가 국내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 업체를 통해 자체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데요.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주임 연구원(이하 손성민) “제품력을 인정받는 한국 제품을 좋은 가격에 납품 받을 수 있다면 중국 기업에 그보다 더 좋은 거래가 있을까요. 문제는 결국 중국 화장품 기술이 성장하고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시작하면 지금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가진 일부 시장을 이들에게 내줘야 해요.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습니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아니죠. 이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초 체력을 다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주덕 “사실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한국 연구원들을 많이 빼갔습니다. 이미 한국 대기업들의 기술은 중국 기업도 다 확보하고 있어요. 그 대신 K뷰티가 가지고 있는 입지 덕분에 아직까지는 ‘메이드인 코리아’를 유지하는 것이죠.”



◆한국 화장품업계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노은정 “지금은 일단 양극단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브랜드 개성이 명확한 전문 숍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거나 아예 브랜드 개념을 확대해 라이프스타일 복합 매장으로 키워야 해요. 해외에서는 드럭스토어에서 마사지 케어와 전문적인 피부 측정 등 뷰티라는 관점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어요.


국내에서도 다양한 정보기술(IT) 기기와 접목해 고객 경험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고객 경험을 ‘흉내 내기’하는 정도예요. 막상 매장에 가보면 그런 기계들이 방치돼 있고 고객을 옆에서 안내해 주는 직원도 없습니다. 마켓 4.0의 시대에는 명사의 관점이 아니라 동사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해요. 화장품이 아니라 ‘아름다워지다’라는 동사의 관점에서 고객에게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양지혜 “한국 화장품의 강점인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상품 개발을 계속 이어 가야 합니다. 특히 한국 기업은 화장품에서 가장 큰 시장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기초 제품에 강합니다. 기초 스킨케어는 반복 구매율이 높고 마진이 좋아 앞으로도 럭셔리 시장에서 이런 흐름을 이어 가야 하고요. 다행히 기초 럭셔리 제품군에서 한국은 ‘한방 럭셔리’라는 독보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럭셔리 시장에서 색조가 약해요. 반면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럭셔리 색조 브랜드 ‘나스’나 ‘로라메르시에’ 등을 인수하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현금이 1조3000억원 정도 있지만 M&A에 대한 경험이 없어 아직까지는 공격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LG생활건강은 아직까지 아시아 외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낮기 때문에 M&A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고요. 앞으로는 M&A를 통해 럭셔리 색조 브랜드를 구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주덕 “화장품은 결국 마케팅 싸움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화장품 기술력은 이미 평준화됐고요, 결국 마케팅이 뛰어나고 현지 유통 채널을 빠르게 확대하는 기업이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또 해외 진출을 할 때 단기적 성과만 중시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지속해야 해요.

최근 중국 시장을 보면 대도시 소비자는 생활수준이 높아 글로벌 화장품을 쓰고 여대생들을 중심으로 애국심이 발동해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 시장에서는 중소 도시를 위주로 진출해 시장을 선점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웨이상(모바일 상인)이나 다이궁(보따리상)에 의존하지 말고 핵심 현지 채널을 빨리 확보해야 합니다.”


▶손성민 “대한민국의 이미지, K뷰티의 정체성, 브랜드의 독창성, 제품의 현지화 등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수출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제품의 현지화가 중요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한국적’인 제품과 색깔로 주목받았다면 이제 ‘한국적인 색채를 가진 현지화 제품’의 K뷰티 제품이 출시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중국 시장만 목표로 한 ‘중국적인 한국 제품’ 외에 다른 지역이나 국가를 타깃으로 한 현지화 제품을 찾기 힘든 점도 글로컬 K뷰티로의 성장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한국 화장품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김주덕 “앞으로는 화장품에 바이오 기술과 나노 기술을 접목해야만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화장품은 지금까지 기간산업만큼이나 경제를 뒷받침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화장품 제조업체가 2300개, 제조 판매업자가 1만2000개 정도 됩니다. 앞으로 기술력 없는 제조업체들은 쇠퇴할 겁니다. 그리고 화장품 산업이 재편될 것으로 보입니다.”


▶손성민 “진정한 K뷰티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 없이는 장기적 성장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결국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확보가 관건입니다. 단순한 제조 기술이나 새로운 원료 개발뿐만 아니라 로레알이나 시세이도의 ‘노화’ 연구, 국가별 소비자 연구소 설립, 현지화 브랜드 출시 등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부분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 한국 화장품 산업과 기술력, K뷰티 마케팅의 우수성 등 K뷰티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야 합니다.”


▶양지혜 “주식시장에서 상장회사들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서 화장품 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 산업 자체의 전망은 굉장히 좋습니다. 화장품은 인플레이션에 강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도 성장을 유지했을 정도로 탄탄한 산업입니다. 특히 바이오 기술과 IT를 접목하면서 산업이 한 차원 높아질 수 있고요.


화장품은 그동안 원가 비용이 높지 않은 대신 마케팅 비용이 컸지만 요즘은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로 마케팅이 옮겨 가면서 매스미디어에 큰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산업 자체의 매력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서의 ‘인디스몰브랜드’의 성장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예전에 온라인 전용 브랜드라고 하면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는 패스트 코스메틱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 브랜드가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는 등 글로벌 자본력이 붙으면서 해외 진출도 용이해졌죠.”


▶노은정 “웰니스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업종과 업태를 불문하고 화장품 산업과의 컬래버레이션이나 융·복합이 이뤄지고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동안 K뷰티의 열풍이라는 좋은 환경 속에서 편하게 영업을 해왔다면 지금은 거품이 꺼지면서 민낯으로 자신들의 개성과 정체성을 보여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화장품업계가 침체의 변곡점이 될지 성장의 변곡점이 될지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