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빅2, 포트폴리오 차이에 경영 성과 갈려…‘구조조정’ 결과도 영향
현대상선 ‘울고’ 팬오션 ‘웃고’… 엇갈린 해운사 실적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국내 해운업을 대표하는 현대상선과 팬오션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팬오션은 올 3분기까지 19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 간 반면 현대상선은 13분기 연속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벌크’와 ‘컨테이너’라는 업종 차이도 있지만 구조조정에서도 희비가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 ‘울고’ 팬오션 ‘웃고’… 엇갈린 해운사 실적
◆19분기 연속 흑자로 순항하는 팬오션


팬오션은 지난 3분기에 매출액 7715억원, 영업이익 57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32.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0.2% 늘었다. 3분기 연결 기준 누적 매출액은 2조158억원, 영업이익은 1516억원을 달성했다.


팬오션 측은 3분기 실적에 대해 발틱운임지수(BDI)가 오르면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유가 상승과 미·중 무역 갈등 등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 상승 폭이 다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3분기 매출액 1조4258억원, 영업손실 123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0% 늘었지만 여전히 영업손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기순손실도 1667억원이다.


물동량은 증가했다. 3분기 현대상선은 전년 동기 대비 12.8% 증가한 11만1981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처리했다. 부진한 실적에는 유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료유의 단가가 전 분기 대비 10.4%, 전년 동기 대비 43.1% 상승해 원가 부담이 커졌다.


컨테이너 부문의 유류비 부담이 전년 동기 대비 약 731억원 증가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운영 선대 확대와 터미널 등 우량 자산 확보를 통한 비용 구조 개선, 물류비용 절감을 통해 글로벌 선사 수준의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직격탄을 맞은 해운업계는 법정 관리와 인수·합병(M&A)을 통해 대규모 재편됐다. 국내 선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STX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팬오션은 2013년 6월 법정 관리에 들어간 후 2015년 하림그룹에 인수된 뒤 법정 관리를 조기 졸업했다. 지난해 한진해운의 도산 후 현대상선은 정부로부터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지원금을 받고 있다.


비슷한 위기를 겪었지만 양 선사의 실적은 극명히 엇갈린다. 가장 큰 이유는 각각 ‘벌크’와 ‘컨테이너’라는 포트폴리오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화주와의 계약에 따라 운항하는 벌크와 달리 컨테이너선은 화물의 소석률(선복량 대비 화물이 얼마나 적재됐는지의 비율)이 낮더라도 정해진 날짜에 선박을 운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컨테이너는 동맹 체제가 깨진 후 극심한 경쟁 체제하에서 선복이 과잉된 상태”라며 “여기에 컨테이너는 장치산업으로 투자가 선제돼야 하며 육상 물류 시스템 등 경영전략에 따라 우열이 갈린다”고 말했다.


물론 벌크의 현재 시황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벌크선 업황의 ‘바로미터’인 BDI는 7월 1744로 고점을 찍은 뒤 글로벌 경제 둔화의 영향을 받아 차츰 하락해 11월 21일 1008까지 떨어졌다. 현대상선의 발목을 잡은 유가 상승세는 팬오션에도 부담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오션이 19분기 연속 호실적을 기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팬오션은 2013년 법정 관리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며 비용 구조 개선과 노선의 효율화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팬오션은 회생 절차를 거치며 부채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또 팬오션은 실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철강·발전 기업들과 26척의 장기 운송 계약을 체결했다.


반면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정기선 시장에서는 경쟁이 심화돼 운임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기 선사도 벌크 선대를 운영하며 적자를 보전해야 하는데 현대상선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벌크전용선사업부 등을 매각한 것이 어려움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현대상선 ‘울고’ 팬오션 ‘웃고’… 엇갈린 해운사 실적
◆고강도 구조조정 압박 거세지는 현대상선


현대상선을 둘러싼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은 2016년 한진해운 파산 후 남은 국내의 유일한 원양 국적 선사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현대상선에 2조원을 지원했고 지난 4월 발표한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1조원 규모의 지원을 추가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의 흑자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지난해 기자 간담회에서 “2018년 3분기가 되면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상황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지난 11월 27일 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이 현대상선과 경쟁력 제고 방안 이행에 관한 업무협약(MOU) 체결, 경영관리단 파견을 통해 현대상선의 고강도 경영 혁신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도 “현대상선 구조조정을 하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문제는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라며 “타이트하게 양해각서를 작성하고 실적이 나쁘면 직원도 해고하는 고강도 경영 혁신을 주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현대상선은 지난 9월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의 발주를 마무리했다. 2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4000TEU급 8척이다. 하지만 올 3분기 이어진 실적 부진과 맞물려 현대상선의 영업력이 탄탄하지 못해 초대형 선박을 확충하더라도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은 11월 29일 이러한 주장을 반박했다. 현대상선 측은 “초대형 친환경 컨테이너선이 투입되면 고정비 원가가 낮아지고 연비가 배증돼 스크러버(탈황 설비) 장착으로 유류비 절감은 물론 국제해사기구(IMO)의 2020년 황산화물 규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업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에 대해서는 “화주들의 신뢰는 과거 2년간 크게 회복됐다”며 선복 활용률(왕복 평균)이 2016년 75%에서 올 상반기 78%, 하반기 80%를 웃돌고 있고 물동량 또한 지난해 400만TEU를 처리해 전년 동기 대비 30% 성장했고 올해는 450만TEU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송하는 화물의 물동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다소 긍정적이다. 지금은 선박 연료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기존의 장기 용선에 따른 고가의 용선료 지급으로 지출이 많아 적자가 났지만 물동량만 꾸준하다면 운임이 오를 시 실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지난 10월 영구채 발행을 통해 1조원의 자본을 확충해 부채비율을 비롯한 재무비율과 현금 흐름이 대폭 개선됐다”며 “2020년 하반기부터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탄탄한 벌크 선사와 현대상선의 컨테이너 부문을 같이 묶어 벌크에서 벌어오는 흑자로 컨테이너의 적자를 보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현대상선도 국내는 물론 해외 화주들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나 영업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