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순규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폐암 신약물질로 1조4000억 ‘잭팟’
“2021년부터는 매년 기술수출 가능…R&D 기반 글로벌 플레이어 될 것”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한국 제약·바이오업계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도입하거나 바이오벤처에 투자해 기업 간 시너지를 내는 전략이다.

글로벌 제약 기업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외부의 파이프라인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한국 제약 기업도 신약 개발 가능성을 높이면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선택하는 추세다.

최근엔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이 1조4000억원대 ‘잭팟’을 터뜨렸다.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액 1조4600억원에 버금가는 액수다.

유한양행은 11월 초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자회사인 얀센바이오테크와 ‘레이저티닙(프로젝트명 ‘YH25448’)에 대한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레이저티닙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이다.

유한양행은 계약금으로 5000만 달러를 받았다. 레이저티닙이 임상·허가·상업화에 성공했을 때 받게 될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는 12억500만 달러다.

레이저티닙은 유한양행이 2015년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에서 15억원에 사들인 파이프라인이다. 유한양행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오스코텍·바이오니어·제넥신 등에 약 1200억원을 투자하며 파이프라인 확보에 공을 들였다.

최순규(54)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은 “최근 성과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유한양행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바탕으로 창사 100주년인 2026년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력 약한 국내 제약업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승부해야”
약력 : 1964년생. 1986년 서강대 화학과 졸업. 1995년 하버드대 화학 박사. 2002년 미국 PTC 테라퓨틱스 연구소 팀장. 2012년 GC녹십자 목암연구소 연구위원. 2017년 6월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소장(현).

▶역대 최대 규모인 1조4000억원대 기술수출에 성공했습니다.

“기쁘지만 부담이 앞서기도 합니다. 1조4000억원은 계약금 약 560억원(5000만 달러)을 비롯해 마일스톤을 모두 합한 것이기 때문이죠. 향후 개발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이번 경험이 유항양행 연구원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지난 7월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하기도 했죠.

“2014년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서 도입한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파이프라인 ‘YH14618’을 기술이전하는 데 성공했죠. 제가 유한양행에 합류할 당시엔 사실상 중단됐던 과제였습니다. 임상2상에서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16년 개발이 중단됐죠. 하지만 다시 분석해 본 결과 새로운 임상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개발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관련 부분을 재정립하고 파트너를 찾는 등 여러 노력 끝에 기술이전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이를 통해 유한양행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이 자신감이 레이저티닙이라는 성과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지난해 GC녹십자에서 유한양행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GC녹십자는 백신과 혈장 제제 등 바이오 의약품에 강점이 있는 반면 유한양행은 합성신약 등을 중점 육성 중입니다. GC녹십자에서 제가 맡았던 합성신약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소 낮았다면 유한양행은 합성신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제 역할도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죠.”

▶유한양행의 R&D 조직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총 275명이 근무 중입니다. 이 가운데 기흥 중앙연구소 인력은 230명 정도 되고 서울 본사에서 임상 개발 등을 담당하는 연구·개발(R&D) 인력은 40여 명입니다.

기흥 중앙연구소는 R&D 부문과 R&D 비즈니스 개발 부문, 신약 해외 인허가(RA) 부문 등을 한 지붕 아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 데 매우 적합합니다. 유한양행이 추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최적화한 구조라고 할 수 있죠. 특정 과제에 대한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이 그만큼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유한양행은 국내 1위 제약사임에도 파이프라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유한양행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조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죠. 결과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1월 말 기준 항암제 부문 파이프라인 16개, 대사질환 치료제 부문 파이프라인 6개 등 총 26개의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입니다. 이 중 약 절반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도입한 겁니다.

취임 당시 파이프라인이 19개였는데 1년여가 지난 현재 7개가 늘었네요. 국내 바이오벤처나 산학연구소 등에 좋은 기술이 있다고 판단되면 내부 검토를 거쳐 우선 도입한 후 공동 연구 등을 진행한 결과죠.

유한양행 중앙연구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부분은 항암제와 대사질환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큰 희귀 질환이나 퇴행성 뇌질환 쪽을 새롭게 개척하는 기회를 탐색하는 겁니다.”
“자금력 약한 국내 제약업계,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승부해야”
▶향후 기대를 거는 파이프라인이 있습니까.

“과거 제넥신으로부터 퓨전 단백질을 만드는 플랫폼 기술을 들여왔습니다. 이 기술을 활용한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YH25724’가 임상1상 직전 단계입니다. 비임상 독성시험을 12월 착수할 예정이고요. 내년 하반기에 미국 임상1상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계획대로라면 이 과제는 유한양행이 미국에서 임상1상을 진행하는 최초 사례가 될 겁니다.”

▶최근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 신약의 판매 허가 신청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SK바이오팜은 그룹 차원의 장기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딸리는 국내 제약 기업이 독자적으로 임상3상 과정까지 도전하는 것은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엄청난 비용 때문이죠. 글로벌 파트너와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봅니다.

설사 FDA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아 글로벌 시장 출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마케팅이라는 중요한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따라서 당분간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는 게 기존 국내 제약 기업으로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GC녹십자와 희귀 질환 치료제 공동 R&D에 나선 이유는 무엇입니까.

“양 사가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협력하기로 했죠. GC녹십자가 초기 연구를 진행한 후 관련 특허를 지닌 후보물질이 있는데요. 유한양행이 기술을 도입한 후 공동 연구 중인 상태입니다.

리소좀 축적 질환 치료제로 칭하는데 선천성·희귀유전성 질환인 고셔병 환자가 적용 가능한 1차 환자군입니다. 좀 더 확장하면 파브리병에도 적용할 수 있죠. 인체에서는 특정 단백질이 만들어졌다가 다 사용되고 남은 단백질이 분해 과정을 거쳐 다시 순환합니다.

그런데 단백질 분해 효소가 몸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마치 하수구가 막히는 것처럼 인체에 단백질이 쌓이게 됩니다. 이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면 파킨슨병 등 퇴행성 질환으로 발전하죠. 단백질이 체내에 쌓이는 것을 막는 약물을 개발하는 게 궁극적 목표입니다.

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임상 통계자료를 축적한 상태고요. 화합물 구조를 바꿔 뇌에 작용할 수 있는 약물을 만든 후 동물실험과 독성시험, 임상 시험을 거쳐 최종 의약품으로 만들어 내는 과제를 진행 중입니다.”

▶신약 개발 관련 개선이 필요한 규제가 있습니까.

“임상2상 시험 이후 조건부 승인을 통해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을 넓힐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록 최종 승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데이터 등 설득력 있는 결과가 뒷받침된다면 조건부 승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항암제, 희귀 질환 의약품, 알츠하이머 치료제 등 일부에만 적용 중인 조건부 허가제의 범위를 보다 넓혀 임상3상 자료 등을 추후 제출하는 조건으로 시장 진입 시기를 2~3년 정도 앞당겨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유한양행은 2015년 이정희 대표가 오픈 이노베이션 원년을 선포한 이후 외부 파이프라인을 도입함과 동시에 내부 역량을 키워 자체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앞으로는 미국 법인인 유한USA가 이른바 ‘업그레이드 오픈 이노베이션’을 바탕으로 유한양행의 글로벌 입지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국내에서는 중앙연구소가 유한양행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고요.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초기 과제들이 2~3년 후에는 임상에 돌입할 수 있는 만큼 3~4년 뒤에는 매년 1개 이상의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궁극적으로 창사 100주년인 2026년 유한양행이 국내 최고 R&D 기반의 제약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은 물론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