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고용 상황부터 어려워진 결혼까지…부모 봉양 책임도 따라
‘진퇴양난’ 위기에 빠진 일본 ‘아라포 세대’
[한경비즈니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 첫 단추가 중요하다. 인생 경로도 마찬가지다. 첫발을 잘 떼야 회귀·수정 없이 나간다.


첫 직장도 그렇다. 사회 진출 후 첫 월급을 받을 때의 계약 조건과 근무 환경이 평생을 좌우한다. 본인 의지와 무관한 변수지만 취업 당시 경제 상황과 이후의 인생 경로는 꽤 정합적이다.


최초의 취업 시점이 실업 대란이냐 고용 호황이냐에 엇갈려 생애 전체의 임금 규모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고용 형태별 임금 격차가 큰 시장에선 그래서 졸업 이후 1~3년을 더 대기하려는 취업준비생이 흘러넘칠 수밖에 없다.


결국 불황 취업은 인생 전체에 불리하다. 불공정하다. 거시경제의 호·불황을 선택할 수 없어 오롯이 운에 따른 인생 격차다. 그래도 젊을 때는 낫다. 40세 이후 중년으로 진입하면 초반 격차가 더 현격해진다. 빈곤하고 고립된 일본 중년은 현재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다.


◆일본 아라포의 미혼 인구가 많은 이유


일본의 35~44세, 즉 ‘아라포(around 40)’ 노동인구는 1500만 명에 달한다. 사회를 떠받치는 중추 인구다. 이들의 중년 시점까지 인생 경로는 가시밭길 천지다. 취업 빙하기에 대학 졸업과 맞물려 원하던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이 많다.


20대 후반엔 일해도 가난한(워킹 푸어) 당사자가 됐다. 30대는 2008년 금융 위기 속에 시작됐다. 파견 해고는 일상사였다. 가까스로 40대 문턱에 닿은 2018년 언저리엔 그나마 경기 훈풍 덕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한 번 비켜선 운은 호황 온기마저 그들을 비켜섰다. 졸업 이후 첫 취업의 미스매칭 때문에 이후 이직·전직이 많은 데다 취업 이후에도 연수 기회가 적어 숙련 노하우를 덜 익혔다. 특히 승진 허들이 높다. 대량 채용된 버블 시기 취업 선배가 앞길을 막는다. 이때 생계를 거들던 부모 세대는 은퇴에 돌입한다. 가족 동반의 몰락 위기는 높아진다.


가족 구성, 즉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비혼이 많다는 점도 중년들을 서럽게 한다. 결혼·출산·양육의 생애 이벤트에서 밀리듯 벗어난 독신 중년의 위기가 고조된다. 뒤늦게 결혼 중개업소 등 인연 모색에 나서지만 이미 나이가 어느 정도 차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희망하는 상대의 다양한 결혼 조건 눈높이를 낮춰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듯 사회 진출부터 가시밭길을 걸었던 현재의 아라포 미혼 중년의 공통 이슈다. 사회 진출 당시의 고용 형태가 중년 시점까지 뒷덜미를 잡는 형국이다. 노조 단체인 렌고 조사를 보면 취업 당시 정규직은 기혼 비율(70.8%)이 높지만 비정규직은 역으로 73.1%가 배우자를 찾지 못했다(2017년).


중년의 고독 위기는 사내 결혼이 많은 일본 특유의 상황과도 맞물린다. 꽤 줄었다지만 일본의 결혼 문화 중 하나는 사내 결혼이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은 일찍 회사를 그만둬 미혼의 남성 정규직과 사귈 확률이 낮아졌다. 연애 격차가 결혼 확률을 떨어뜨리는 셈이다.


문제는 중년화에 접어들수록 임신 확률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출산 시한을 염두에 두면 중년 여성의 조바심이 한층 커진다. 원하던 일도 제대로 고르지 못했는데 배우자마저 선택 여지가 급감, 아라포 여성의 결혼은 사실상 포기 단계로 접어든다.


동일 연령대 남성 그룹의 결혼관도 시대 변화에 맞춰 달라진다. 당장 과거와 달리 미래의 배우자감에 바라는 게 많아졌다. 일례로 경제력을 따지기 시작한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설문 조사를 보면 여성 경제력을 의식한다는 남성 비율이 1992년 26%에서 2015년 42%로 뛰었다. 배경은 역시 불황과 남성 자신의 낮아진 경제력 때문이다.


생애 임금이 최고조를 향해 달려야 할 40대인데 취업 빙하기에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중년 남성은 여기서 탈락한다. 버블 경제 때라면 40대 초반의 실질임금이 월 50만 엔대가 넘었지만 취업 빙하기 취업자는 40만 엔대로 추락한다.


40대 전반 시점의 실질임금(대졸 이상)을 보면 버블 세대(2007년)는 52만9000엔인데 비해 취업 빙하기 세대(2016년)는 44만4000엔(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이다. 정규직이 적으니 임금수준도 낮아진 결과다.


따라서 40세 전후 세대의 미혼율은 전체 세대보다 월등히 높다. 2000~2015년 미혼율 증가세는 35~39세(9.4%), 40~44세(11%)인데 비해 앞뒤 30~34세(6.1%)와 45~49세(10.4%)는 낮다. 40세 전후 남녀 공통으로 실질임금이 낮은 게 원인으로 꼽힌다.


고용 착취적인 블랙 기업의 정규직이 많아 이직·전직이 반복된 때문도 있다. 메뚜기처럼 불안한 일자리가 일상이니 적어도 결혼 상대자로 경제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미혼의 상태가 지속된다. 미래의 경로가 불안정한 것이 결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중년 전문 카운슬러부터 대안 가족까지


인구구조를 보면 40세 전후는 허리 계층이다. 60~70세의 부모 세대와 10~20세의 자녀 세대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그런데 부모 세대와 그 자녀인 40세 전후는 인구 규모에 큰 차이가 없지만 유독 자녀 세대는 숫자가 급감한다. 결혼이 적고 출산마저 줄어드니 한 세대 만에 10~20세 인구 규모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상황은 심각하다. 세대 구조적인 사회 부양의 붕괴 때문이다. 연금이든 세금이든 후속 세대의 지지 능력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있다. 미혼 상태의 40세 전후 세대가 ‘부모와의 동거’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아라포는 2000년 155만 명에서 2015년 291만 명으로 늘었다.


70대 부모와 40대 자녀의 동반 몰락 위기감이 높다. 예컨대 ‘7040문제’다. 더 골치 아픈 것은 형제 위험이다. 자립이 힘든 40세 전후의 형제가 있다면 남은 혈육은 고민이 깊어진다. 고령의 부모와 빈곤한 형제가 가뜩이나 불안정한 40세 전후 독신 중년의 어깨를 짓누른다.


형제 부양은 도덕과 양심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 민법에선 형제 부양이 의무다.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신조가 강하다. 빈곤한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부양료 청구도 가능하다.


중년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내버려둘 수 없는 일본 정부도 속은 까맣다. 정부는 173개 지역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을 통한 취업 지원에 눈을 돌린다. 원래는 대상 연령이 40세까지였는데 2018년 4월부터 그중 10개소를 골라 44세까지 확대했다.


은둔 중년 혹은 장기 탐색 사례에도 대응하기 위해 중년 전문 카운슬러를 배치하기도 했다. 직접 지원도 있다. 2017년 4월부터 5회 이상 이직·전직한 35세 이상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기업에 최대 60만 엔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결혼 지원에 나선 지방정부도 있다. 에히메결혼지원센터는 지방정부가 주도해 결혼 희망 남녀를 주선, 최근 6년간 40세 전후 269명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원하는 상대방의 연봉과 근무 회사 등에 특화한 주선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최근 인기인 인공지능(AI)을 통한 방대한 후보 탐색과 추천 시스템으로 채용한 것도 한몫했다. 이후 성혼 확률은 13%에서 29%로 뛰었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가족과 관련된 고정관념을 바꾸자는 제안도 힘을 얻는다. 가족 의탁적인 부조 관계가 동반 몰락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평균 유형만 추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의사(疑似) 가족의 포용 문화다. 타인 가족을 구성해 서로 의지하는 형태도 충분한 가족 효과를 지닌다고 봐서다. 기존 가족 위주의 고정관념 대신 타인·전문가 등이 개입한 문제해결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책 방향도 구빈(救貧)에서 방빈(防貧)으로 전환하는 게 좋다. 40대의 불안 문제를 가족 부담 대신 사회보장을 늘려 원천적으로 막아보자는 의도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