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닛산 로그 위탁생산 의존도 높아, 내년 9월 재계약 여부가 관건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또 한 명의 ‘제왕적 최고경영자(CEO)’가 몰락했다. 닛산자동차의 부활을 이끌며 20년 가까이 세계적 스타 경영자로 이름을 날린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미쓰비시얼라이언스 회장이 하루아침에 범죄자 신분이 됐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11월 19일 저녁 곤 회장을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유가증권 보고서 허위 기재)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곤 회장이 2011~2015년 99억9800만 엔(약 1000억원)의 보수를 받았지만 금융감독 당국에는 49억8700만 엔만 받았다고 허위 보고하며 탈세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또한 사적인 목적으로 닛산의 투자 자금을 쓰고 회사의 경비도 부정 사용한 혐의 등도 조사 중이라고 덧붙혔다.
닛산자동차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곤 회장이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여러 중대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며 회장직 박탈을 이사회에 제안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1월 22일 닛산 이사회는 곤 회장의 해임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뒤이어 미쓰비시자동차도 11월 26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곤 회장 해임안을 의결했다. ◆ 스타 경영인에서 범죄자로 추락
곤 회장의 범죄 혐의는 일본 사회와 경제계에 큰 충격을 줬다. 곤 회장은 일본 자동차업계 ‘스타 경영인’으로 불렸다. 망해가던 닛산자동차를 1년 만에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며 ‘V자 회복’의 성공 신화를 썼다.
과감한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으로 ‘코스트 커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여기에 프랑스 미쉐린의 수습사원을 거쳐 르노자동차 부사장에까지 오른 ‘흙수저 경영인’으로 부각되면서 일본 내 젊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경영인’으로 칭송받았다.
곤 회장은 일본에서 승승장구했다. 1999년 닛산 최고운영자(COO)로 취임한 후 1년 만에 사장, 이듬해 CEO에 잇달아 취임했고 다시 2년 뒤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후 르노의 회장 겸 CEO도 함께 맡아 르노·닛산 연합을 성장시켰고 2년 전에는 미쓰비시자동차를 인수, 그룹을 세계 2위 규모의 자동차 회사로 키워 냈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용의자’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일본 경제의 조력자로 믿던 곤 회장이 저지른 비리에 일본열도는 ‘곤에게 배신당했다’며 충격에 휩싸였다.
곤 회장에게 과도한 권한 집중을 허용한 이유에 대해 히로토 사이카와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곤 회장이 2005년 르노와 닛산의 CEO를 겸하게 됐고 그것(곤 회장으로의 권한 집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며 “곤 회장이 닛산 주식의 44%를 보유한 르노의 톱이라는 점 때문에 제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CEO의 부정’을 회사가 즉각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회사가 불투명한 것도 지적의 대상이 됐다. 닛산 측은 회사의 투명성이 낮은 것을 인정하며 지금의 책임자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밝혔다. 닛산 측은 이번 일을 계기로 1인 집중 체제를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문제는 곤 회장 해임에 따른 후폭풍이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 동맹이 흔들릴 가능성도 예상된다. 연합 동맹은 르노가 닛산 지분 43.4%,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닛산은 미쓰비시 지분 34%도 갖고 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 동맹이 곤 회장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묶여 있었던 만큼 그의 부재가 업체들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곤 회장은 이들 3사의 독립적인 경영권을 지키면서도 사업을 연계해 시너지를 강화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또 연합 동맹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끌어 왔다.
이 때문에 르노의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에서도 곤 회장 구속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주주로서 프랑스 정부는 르노 동맹의 안정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피고용자를 전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곤 회장에게 프랑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르노와 닛산이 합병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곤 회장의 반대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기획된 숙청이란 분석도 나온다. 르노의 대주주는 프랑스 정부다. 마크롱 대통령은 곤 회장에게 르노와 닛산의 완전한 경영 통합을 요구했다. 닛산자동차를 프랑스에서 생산해 일자리를 늘리고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일본 경영진이 닛산을 프랑스 기업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강력히 반발했고 곤 회장을 축출하기 위해 그의 비리를 일본 검찰에 제보했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그런 히로토 사장을 카이사르를 배반한 브루투스에 비유하며 일본이 배은망덕하다는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 위기의 르노삼성, 앞날은
곤 회장의 몰락은 프랑스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도 르노삼성이 있는 만큼 심각한 문제다. 곤 회장이 물러라면 르노삼성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곤 회장이 르노삼성에 대해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르노삼성이 닛산 로그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결정한 사람도 곤 회장이었다. 르노삼성의 닛산 로그 수출은 내년 9월까지로 아직 후속 물량 배정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곤 회장이 물러나면 후속 물량 배정에 불리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 측은 그룹 이슈에 따른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르노삼성에 대한 의사 결정은 아시아에 있기 때문에 프랑수아 프로보 아시아 총괄 회장(르노삼성 전 사장)이 결정하는 사안이어서 그룹 이슈에 따른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르노삼성은 올해 최악의 상태다. 내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올해 출시한 소형 해치백 ‘클리오’도 출시 적기를 놓치면서 신차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국내 공장에서 위탁 생산하고 있는 닛산 로그의 생산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르노닛산 동맹이 와해되면 국내에서 닛산차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로그는 르노삼성의 부산공장 연간 생산량(25만여 대)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기여도가 높다.
엔저로 닛산 일본 공장의 생산원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르노삼성에 부담이다. 르노삼성 부산공장과 로그 생산을 경쟁해야 할 일본 공장은 규슈의 닛산 공장이다. 여기에 르노삼성은 국내 완성차 5사 중 유일하게 임금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가운데 강성 노조 출범이라는 악재까지 맞았다.
완성차업계에서는 르노삼성의 지속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닛산 로그의 위탁 생산 재계약에 실패하면 르노삼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며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차량 배정도 받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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