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청와대 참모진 출범…강기정 정무수석과 함께 ‘실용주의’ 무게 둘 듯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노 의원 만나고 갑시다.”
2016년 4월, 직접 운전하면서 경남 양산 자택으로 향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차를 충북 청주로 돌렸다. 당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그해 1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대표직을 물려준 문 대통령은 잠시 정치를 떠나기 위해 시골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차에는 양산에서 지낼 소소한 가재도구가 실려 있었다. 청주에는 20대 총선 불출마로 실의에 빠진 노영민 비서실장이 칩거 중이었다. 임기 중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낙향하던 문 대통령과 총선을 불과 2개월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노 실장은 당시 ‘동병상련’이었다. 문 대통령은 식사를 함께 하면서 노 실장을 위로했다. 당시 자리에 함께한 김정숙 여사는 “우리 남편이 고속도로를 타면 직진만 하는 운전 실력이라 좀처럼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나가지 않는데…”라며 노 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남다른 애정을 전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2기 청와대 참모진 개편의 윤곽이 잡히면서 신임 참모진의 면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비서진의 사령탑을 맡은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이 주도할 2기 청와대의 역할이 주목된다.
◆국회와의 관계도 1기와 바뀔 듯
노 실장과 강 수석을 중심으로 한 2기 청와대는 한마디로 문재인 대통령의 친정 체제 구축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1기 임종석 비서실장 체제가 ‘젊은 이미지의 역동성’에 중심을 뒀다면 2기는 중량감을 더한 실용주의 인사들이 전진 배치된 게 도드라진 특징이다.
문 대통령이 정치 입문 때부터 호흡을 맞춰 온 실세 비서실장의 등장이 청와대뿐만 아니라 대 국회 관계에서도 1기와 다른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이다. 청와대와의 소통에 갈증을 느껴온 여당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론 ‘정면 도전’이라고 이번 인사를 비판한 야당도 3선 의원 출신인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의 등장에 나름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노 실장 주도의 청와대가 내부 기율을 다잡으면서 여야와의 접촉면을 넓혀 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옆을 지킨 3선 국회의원 출신(청주 흥덕)이다.
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크게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인연을 맺은 친문 그룹과 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든 이후 새로 구축한 원조 친문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양정철·전해철·이호철 등 소위 ‘3철’과 김경수 경남지사,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전자에 속한 친문 그룹에 해당한다.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구축한 순수 친문 그룹의 좌장이다.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등 2012년 대통령 선거 경선 때부터 함께했던 여권 내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을 맡았던 강기정 정무수석도 마찬가지다.
노 실장은 원조 친문 그룹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인사로 꼽힌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내 경선에서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등과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는 비서실장을 맡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2017년 대선 때는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본부장을 맡아 캠프를 아울렀다. 2012년과 2017년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주요 보직을 맡은 인사는 참모 그룹에선 노 실장이 유일하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신뢰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노 실장과 가까운 민주당 내 충청권의 한 중진 의원은 “노 실장은 두 번의 대선을 치르는 동안 문 대통령이 가장 믿고 의논하는 인사”라며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청와대 참모진의 수장이 됐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라고 설명했다.
당장 비서실장의 청와대 장악력부터 달라지는 모양새다. 임종석 비서실장 때보다 ‘그립’을 한층 강하게 쥐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란 전망이다.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대통령과의 인간적 관계, 대선 기여도, 국회 경험 등에서 신임 비서실장을 능가하는 인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캠프 구성 단계에서 합류한 임 전 실장은 1기 청와대를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비서관·행정관 등 청와대 전체 참모진에 대한 장악력은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참모진이 86그룹의 대표 주자로 독자 행보를 보여 온 임 전 실장을 전적으로 따르기는 무리였을 것이란 얘기다.
노 실장은 지난 1월 9일 취임 일성으로 ‘성과’·‘소통’과 함께 ‘규율’을 강조하며 본격적으로 청와대 군기잡기에 나섰다. 이날 400여 명의 청와대 비서진을 직접 찾아다니며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인사말을 통해 성과와 소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절제와 규율의 청와대가 돼야 한다”고 별도로 언급한 것은 최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청와대 내 기율을 다잡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제 현안까지 챙기는 실세 비서실장
2기 비서실장의 역할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실장이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 등 대북 문제에 집중했다면 노 실장은 경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챙길 것이란 관측이다. 문 대통령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 실장은 국회에서 산업자원위원회를 오래 했고 위원장을 지내는 등 산업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앞으로 그런 부분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서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전날에는 “비서실장도 경제계 인사들을 적극 만나달라”고 별도로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실장은 1970년대 대학 시절 긴급조치로 구속돼 연세대 경영학과에서 제적됐다. 취업 걱정에 수감 중에 전기기술자 자격증을 딴 것을 계기로 경기도에서 금강전기라는 회사를 꾸려 10년 동안 운영했다. 이런 인연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에는 줄곧 산자위에서 활동하며 산업계와 교류하는 등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게 여권 내 평가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보수 야당에서 청와대 참모진을 비판할 때 ‘월급 한 번 줘본 사람이 없고 온통 운동권만 있다’고 비판할 때마다 할 말이 없었는데 이제 그런 소리는 안 듣게 됐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나란히 3선 의원 출신인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의 등장으로 청와대와 국회의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청와대의 대화 채널이 강화될 것이란 기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병도 전 정무수석은 17대(2004~2008년) 이후 국회에 입성하지 못해 현재 여야 의원들과 교류가 두텁지 못한 게 단점으로 꼽혔다. 3선의 강기정 정무수석은 국회의원 시절 매일 아침 의원회관 목욕탕에서 여야 의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눠 ‘목욕당’ 대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국당 등 야당의 주요 의원들은 18대 국회 이후 대거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에 17대 경험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며 “3선을 지낸 강 수석이 야당의 이야기를 많이 경청하고 이를 청와대에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노 실장과 여당 원내 사령탑인 홍영표 원내대표의 관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두 사람은 1957년생 동갑내기로 친구이고 친문계 핵심 인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노 실장이 후보 비서실장, 홍 원내대표가 선대본부 상황실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노 실장이 주중 대사로 나가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국정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실장과 홍 원내대표 간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청 간 협력 모드가 한층 긴밀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입법과 핵심 정책을 둘러싼 ‘노-홍’ 간 핫라인이 당분간 당청 소통의 핵심 채널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7호(2019.01.14 ~ 2019.01.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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