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해진 SW 개발 방법론으로 등장… 실리콘밸리와 IT 산업 휩쓸고 한국 상륙 [한경비즈니스=홍영기 라이엇게임즈 Development Manager] 최근 애자일(agile)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애자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이 듣는 ‘스크럼(scrum)’이나 ‘간반(kanban)’ 또는 ‘지속적인 통합’, ‘짝 프로그래밍’, ‘리팩토링’ 등과 같은 방법론이나 ‘실천법(practice)’과 같은 단어들은 마치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도구들을 활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애자일 실천법들을 활용할 때 적용하는 대상의 조직과 사람에 대한 맥락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테일러링(tailoring)하지 않으면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이는 애자일에 대한 가치적·철학적 이해가 바탕이 돼야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애자일이 어떤 역사를 거치며 태동했고 발전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자일 선언문에 담긴 의미를 잘 이해하면 조직에 적용할 때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우선 현재 다양한 분야에 적용을 시도하는 애자일이지만 애자일의 시작 기반이 소프트웨어(SW) 개발에서 시작된 만큼 초기 SW 개발 역사를 짚어보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1950년 이전의 초기 SW 개발은 특정 영역의 문제(예를 들어 포탄의 탄도 계산 같은)를 빠르게 풀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기계에 종속돼 있었지만 이후 범용적으로 활용되도록 설계된 하드웨어 위에 SW를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더 크고 복잡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SW의 크기가 커지고 여러 개발자들이 함께 일하게 되면서 SW를 공학적으로 연구하게 됐고 1965년 이후 ‘SW의 위기(예산·기한 초과, 낮은 품질, 요구 사항 불만족, 어려운 유지·보수, 프로젝트 실패 등)’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도구·방법론·프로세스·전문성·학습 등)를 했지만 부분적인 문제 해결 접근으로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1975년 프레드 브룩스는 자신의 IBM OS·360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맨먼스 미신(Mythical Man-Month)’에서 SW 개발은 단순한 인력 투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고 1986년 ‘은빛 총알은 없다(No Silver Bullet)’라는 논문을 통해 개별적인 문제 해결 접근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대안으로 유기적이고 점진적·반복적인 개발 방법을 제안했다.
소프트웨어 경량 방법론에서 출발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기존의 복잡하고 무거운 개발 방법론에서 벗어나 좀 더 가볍고 유연한 접근 방법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SW 개발 방법론들(RAD, UP, DSDM, 스크럼, 크리스털 클리어, XP, FDD 등)이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10년간 여러 SW 개발 구루들의 다양한 시도에 힘입어 2001년 17명의 개발자들이 미국 유타 주의 한 스키 리조트에 모여 논의 끝에 ‘애자일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후 많은 개발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은 애자일은 점차 더욱 많은 프로젝트에 적용됐고 더 다양한 애자일 기반의 방법론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며 현재는 방법론 관점에서 크게는 스크럼·간반 등이 시장의 선택을 받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시기와 맞물려 기존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였던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SW 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고 기민하게 비즈니스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기업이 프로젝트와 프로덕트를 관리하기 위해 애자일을 도입하는 것이 필연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게 됐다.
또한 VUCA(변동성·불확실성·복잡성·모호성)로 대표되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계획·통제 기반의 관리 방법으로는 시장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조직의 역량이 중요하게 됐고 경영과 비즈니스 관점에서 더욱 유용성을 인정받아 엔터프라이즈 레벨에서의 적용 방법론(Large Scale Scrum, Scaled Agile Framework 등)이 고안됐다. 현재는 IT 영역을 벗어나 전통 산업의 영역(정부·군·금융·의료·통신·교육·에너지 등)에서도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2000년 초반 일부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XP(eXtreme Programing)를 공부하고 적용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굉장히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 실무에서 적용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게 여겨졌다. 필자도 이 시기에 사내 스터디에서 XP를 발표했을 때 동료들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웃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개발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부를 지속하거나 실무 적용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고 자생적으로 관련 콘퍼런스가 생길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시장의 선택과 진화
많은 선도적인 사례들이 있었겠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2010년 C사에서 전사적으로 애자일을 도입한 사례를 높이 사고 싶다. 이전에는 일부 프로젝트 또는 팀·개인 단위에서 고민하고 적용한 사례를 접했지만 이 시기 C사는 워터폴 방식으로는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외부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교육 기간 동안 전사적으로 업무를 중단하고 교육을 받고 업무 프로세스를 대대적으로 변경하고 이를 지원할 스크럼 마스터를 채용, 변화를 드라이브했다.
또 다른 사례는 한국 최고의 기업인 S사 내부에서 애자일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A팀의 사례이다. C사가 외부의 도움을 받아 변화를 드라이브했다면 S사의 A팀은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서 자생적으로 변화를 주도하며 점차적으로 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줬고 현재 S사의 가장 대표적인 팀으로 성장해 한국 애자일의 모범적인 사례로 성장했다.
2018년 한국 내에 애자일이라는 키워드가 화두가 된 것에는 IT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권에서 ING를 필두로 적극적으로 애자일 도입을 시도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2015년 네덜란드 ING에서 전사적인 애자일 변화를 선언한 후 성공적인 결과를 내자 한국 금융권 회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 카카오뱅크를 필두로 한 인터넷 은행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자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애자일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이미 도입해 적용하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여러 산업 분야와 기업에서 애자일을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보니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해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가 따라가지 못해 비판 받고 있는 지점도 있다. 애자일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문화적인 변화(리더십을 포함한)가 함께 진행돼야 하는데 실천법을 적용하는 것에만 매달리거나 애자일 선언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독단에 빠지거나 관리자의 편의를 위한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등의 문제를 경험하면서 애자일 무용론을 펼치거나 한국의 사정과 맞지 않는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또한 현재 시장에는 많은 컨설팅 회사들과 툴 벤더(tool-vendor)들이 저만의 방법론을 들이밀며 또 다른 ‘은빛 총알(silver bullet)’로 내세우는 것은 우려스럽다.
2018년 ‘버전원(VersionOne)’ 리포트에 따르면 조직에 애자일을 도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 톱5를 정리해 보면 우선순위 변화 관리(71%), 프로젝트 가시성 확보(66%), 비즈니스와 IT의 협업 증대(65%), 제품 출시 속도 개선(62%), 팀 생산성 향상(61% 등)을 꼽았고 성공적으로 애자일을 도입하는데 중요한 요소로는 조직 문화 개선(53%), 경영진의 지원(42%), 애자일 방법론 적용 경험과 기술(41%) 등을 들었다.
초기 애자일 선언문이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전파된 이유는 결과적으로 고객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줬기 때문인데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적극적으로 고객과 협업할 수 있도록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는 각 구성원 개인(경영진·구성원)에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책임감과 자율성을 요구한다. 용어 정리
테일러링(tailoring)
몸에 맞는 옷을 맞추기 위해 재단을 하듯이 표준적인 방법론이나 프로세스를 그대로 조직에 가져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조정해 적용하는 것.
은빛 탄환은 없다(No Silver Bullet)
유럽의 민간설화에서 죽지 않는 늑대인간을 잡기 위해 은으로 만든 탄환을 사용하는 것처럼 모든 상황을 한 방에 해결하는 것을 이르는 비유.
라지 스케일 스크럼(large scale scrum)
바스 보데(Bas Vodde)가 만든 전사적 스크럼 프레임워크.
스케일드 애자일 프레임워크(scaled agile framework)
딘 레핑웰(Dean Leffingwell)이 만든 전사적 애자일 적용 프레임워크.
XP(eXtreme Programing)
1999년 켄트 벡(Kent Beck)이 제안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으로, 12개의 구체적인 실천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가치와 원칙을 제안하고 있다.
워터폴 방식
마치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단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 보통 계획·개발·테스트·배포와 같은 일방향의 단계를 거치며 초기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8호(2019.01.21 ~ 2019.01.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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