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놓고 힘겨루기 들어간 여의도…취지 맞지만 의원 늘면 ‘규제’만 양산될 수도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설 연휴 이후 정치권의 가장 큰 쟁점은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될 것 같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내년 총선 1년 전인 4월 15일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 또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 13개월 전인 3월 15일까지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이다. 의원 정수와 선거구제·비례대표 문제를 놓고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외형상으로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한편이 되고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이 또 다른 한편이 돼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300명을 유지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하는 반면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은 330명으로 증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의원 정수를 묶자는 데는 뜻이 같지만 구체적인 선거구제 개편 방식과 비례대표 수 등을 놓고서는 의견을 달리해 협상에 들어가면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다. 정치권은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거구제가 개편돼야 한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동상이몽이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은 1월 23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원 정수 330석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체 선거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비례대표제’ 확대하는 것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선 때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의석수를 할당하고 할당된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나머지 의석수만큼 비례대표 의원으로 채우는 제도다. 가령 정당 득표율이 A당이 50%, B당이 30%, C당이 15%, D당이 5%라면 현재 의석수(300석)를 기준으로 하면 각각 150석, 90석, 45석, 15석을 할당한다. D당이 지역구에서 5석밖에 얻지 못했다면 비례대표에서 10석을 배정해 15석을 채우는 방식이다. A당이 지역구에서 140석을 얻었다면 비례대표로는 10석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소수 정당에 유리한 제도다.
‘사표(死票)’를 막아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보다 국민 의사를 더 정확하게 의석수에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에서 더 많이 당선되면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야 3당은 현재 47석인 비례대표 의석수와 함께 전체 의석수를 늘려 해결하자는 것이다. 현행 의석수를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만 늘리면 지역구 의원들이 반발하기 때문에 의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야 3당의 주장이다. 야 3당은 또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은 2 대 1 또는 3 대 1 범위에서 협의하자는 의견이다. 330석을 기준으로 220 대 110에서 협의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구제 방안은 현행 국회의원 정원 300명을 유지한 채 지역구(200명)와 비례대표(100명) 의원 비율을 2 대 1로 하는 것이 골자다. 이 안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수는 253석에서 200석으로 53석이 줄어들어 당내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도 제안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5~6개 정도의 권역으로 나눈 뒤 인구 비례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지역+비례)를 먼저 배정한 뒤 그 의석을 정당 투표 득표율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권역별 지역구 당선자 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정당 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하게 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포함된 내용이다.
석패율제는 지역구에서 당선자와 작은 표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경북 지역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표차로 낙선한 후보자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것이다.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있다.
자유한국당은 300석을 유지하는 가운데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선호한다. 이 방식은 인구가 많은 수도권은 중대형선거제를, 인구가 적은 농어촌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수도권에서 불리한 자유한국당에는 유리한 선거구제다. 하지만 도농복합형 선거구제에 대해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실제 도입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총리 추천제가 받아들여지면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을 놓고 논의해 볼 수 있다는 방침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세 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의원 정수는 그대로 둔 채 지역구 의석을 253석에서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47석에서 100석으로 늘리는 것이다. 둘째, ‘도농복합형+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의석수를 300석으로 유지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각각 225석과 75석으로 조정하는 방안이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은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그 이하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셋째, ‘소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의원 정수를 330석으로 증원해 지역구 220석, 비례대표 110석으로 조정하는 방안이다.
‘자기 사람’ 꽂기 통로 됐던 비례대표제
현재 국회에는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다양한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제시된 선거구제 개편 방식은 다양하지만 의원 증원을 통해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데는 의견이 같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투명하게 공천돼 왔고 제 역할을 해왔느냐다. 비례대표를 도입한 취지는 직능별 전문가들을 영입해 지역구 의원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자기 사람’ 꽂아 넣기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개혁·전문성은커녕 함량 미달 인사들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비례대표가 지역구 의원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비례대표 공천 때마다 뒷거래의 온상이 돼 온 것도 사실이다. 과거 비례대표 자리를 얻기 위해 수십 억원의 공천 헌금이 오간 얼룩진 역사도 있다.
의원 증원도 논란거리다. 각 여론조사마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늘리는데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많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쪽은 한국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16만7000명)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만9000명)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을 내세운다. 국회의원을 늘리더라도 의원 세비 등을 줄여 전체 국회 경비를 동결하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원 수를 늘린다고 더 효율적인 국회가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한국 국회의 경쟁력은 OECD 국가 가운데 26위로 꼴찌 수준이다(서울대 조사). 한국 국회가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기관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래서 “국회의원 수를 대폭 늘리면 함량 미달의 금배지만 양산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의원 정수 늘리기 시도는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피해를 막으려는 꼼수이자 철밥통 지키기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세비만 나눠 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금도 의원들이 쏟아내는 온갖 규제·포퓰리즘성 법안으로 인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의원 수를 더 늘리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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