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1991년은 풀무원에 의미가 남다르다. 글로벌 시장 활로 개척이라는 목표 아래 해외시장에 진출한 첫해이기 때문이다. 장소는 바로 미국이었다. 당시 풀무원은 미국법인 ‘풀무원USA’를 설립하고 공장을 지어 현지에서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
이때만 해도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두부를 먹지 않았고 심지어는 접해 본 경험조차 없었다. 미국은 두부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엔 황무지였다. 풀무원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현지인들에게 두부를 팔기보다 한국 교민과 중국·일본 등 두부를 먹는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상점에서만 두부 사업을 전개하며 작은 규모의 사업을 이어 갔다. 따로 매출을 집계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약 30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마침내 미국 시장에서 풀무원의 오랜 뚝심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풀무원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두부 사업으로 매출 8800만 달러(약 988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 상승한 수치로, 매출 1000억원 시대를 목전에 두게 됐다.
◆올해 두부 매출 1000억원 시대 연다
특히 미국 전체 두부 시장점유율은 무려 73.8%(2018년 12월 3일 닐슨데이터 기준)를 기록하며 확고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풀무원에 따르면 몇몇 일본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두부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풀무원을 위협하기엔 역부족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사실상 미국의 두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풀무원이 두부의 황모지였던 미국에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철저한 시장 분석과 과감한 인수·합병(M&A)이 더해진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사실 풀무원은 오랜 기간 미국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정체 상태를 이어 왔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만 사업을 하다 보니 시장 규모 자체가 작고 제한적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인 입맛에 맞는 두부를 개발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2002년 로스앤젤레스에 풀무원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인들의 입맛을 연구한 끝에 미국인들이 두부를 찾지 않는 원인으로 ‘말캉말캉’한 식감과 콩 냄새를 싫어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두부보다 약 훨씬 단단한 치즈 느낌의 두부, 콩 냄새에 민감한 서양인들을 위해 개발한 두부, 미국인들이 자주 먹는 햄버거 고기 패티 형태의 두부 등을 개발해 냈다.
이렇게 탄생한 두부를 마트에서 시식 행사 등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맛보게 하며 두부에 대한 인식도 점차 개선해 나갔다.
M&A 전략 역시 돋보였다. 두부 시장이 점차 형성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2004년 콩 가공 업체 와일드우드 내추럴푸드, 2009년 식품 업체 몬터레이 고메이 푸드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특히 2016년에는 과감한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채식 바람 열풍이 점차 불면서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풀무원은 향후에도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주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고 현지 두부 시장 역시 급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에서도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해
그렇게 풀무원은 당시 5000만 달러를 투입해 미국 두부 시장 1위 업체인 홍콩 기업 비타소이의 미국 두부 브랜드 ‘나소야’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풀무원의 결정을 놓고 무리한 인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시 나소야는 매년 적자가 커지는 상황이었다. 실속 없는 기업을 샀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소야를 인수했던 것은 미국 현지 영업망 때문이었다. 풀무원 관계자는 “나소야는 미국 전체에 2만여 개의 영업 유통망을 갖고 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해 사들였다”고 말했다.
이후 풀무원은 나소야라는 이름으로 자체 개발한 두부를 미국에서 판매했다. 그리고 그해부터 성공적인 행보를 펼쳤다. 물론 운도 따라줬다. 풀무원의 예상도 맞아떨어져 미국의 두부 시장 규모도 9%대 성장률을 보이며 팽창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6년부터 풀무원의 두부 매출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고 지난해 마침내 1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두부 매출이 1000억원을 넘어설 것이 사실상 유력하다.
풀무원 관계자는 “올해도 미국 두부 시장 전망이 밝다”며 “올해 풀무원USA의 두부 매출이 12%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두부 판매만으로 미국 시장에서 비로소 매출 1000억원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전을 통해 풀무원은 미국에서도 주목받는 기업이 됐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리서치앤드마켓은 지난해 ‘세계 두부 시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두부 시장이 2023년까지 연평균 4.05% 지속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두부 시장을 주도할 핵심 기업들 중 하나로 풀무원을 꼽기도 했다.
미국 시장의 여세를 몰아 올해는 중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도 갖고 있다. 풀무원은 2010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구센터를 설립하며 중국인의 특성에 맞는 두부 개발에 주력해 왔다.
올해는 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 시장에서 각광받는 알리바바 계열 O2O 업체인 허마(HEMA)에 두부를 공급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허마는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고객의 집과 3km 이내에 있는 매장을 연결해 30분 안에 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배송 서비스다.
풀무원 관계자는 “해당 서비스는 중국 전역에서 제공되는데 여기에 입점하고 나서부터 두부 매출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풀무원에 따르면 중국의 두부 업체들은 약 1000개가 존재한다. 다만 멸균 처리 능력 등 제조 기술이 부족해 보통 유통기한이 5일 이내다. 따라서 중국 전역에 판매가 불가능하고 업체가 자리한 지역에 한해서만 영업을 하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풀무원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멸균 기술과 보관 방법 등을 바탕으로 유통기한이 30일 되는 두부를 현지에서 생산해 내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길다는 것은 중국 전역에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허마를 통해 올해 중국 전역에 두부를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 중국 시장에서 급격한 성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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