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산업은행, 2022년 16.9% 차지…실무진보다 월급 많아 세대 갈등 우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금융 공공기관 등의 인사 적체가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95개 공공기관에서 제출받은 임금피크제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 공공기관은 3년 뒤인 2022년 임금피크를 적용받는 직원이 전체의 3~17%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한국예탁결제원·IBK기업은행 등의 임금피크제 적용 비율이 10% 이상에 달하는 등 금융 공공기관의 ‘인력 동맥경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고령자 정년 연장에 따라 임금 감액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금융 공공기관, 임금피크 직원 ‘급증’…명퇴제도 ‘유명무실’
◆“민간 기업보다 관대하게 설계”

임금피크제는 만 55~56세가 되면 만 60세인 정년까지 해마다 연봉이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제도다. 2016년 노동자 정년이 만 60세로 연장되면서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그 인건비로 청년 채용을 늘리라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대상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승진 적체와 일반 직원의 업무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이 되면 산업은행 직원 3287명 중 556명(16.9%)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된다. 산업은행 직원 6명 중 1명이 만 55세 이상인 셈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산업은행 직원의 평균연령은 40.5세다. 지난해 215명(6.7%)이던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은 2020년 427명(13.3%), 2021년 511명(15.7%)으로 꾸준히 증가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만 55세가 되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된다. 임금피크 첫해 직전 임금의 90%를 지급하고 이후 임금 지급 비율을 75%, 50%, 40%, 35% 순으로 낮춰 가고 있다. 다만 임금피크제 기간 5년 기준 평균임금 지급률은 290%로, 시중은행 4곳(KB국민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KEB하나은행)의 평균임금 지급률(250%)에 비해 높은 편이다.

다른 금융 공공기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보증기금은 2022년 직원 1415명 가운데 198명(14.0%)이, 신용보증기금은 2558명 중 338명(13.2%)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다.

기술보증기금 직원의 평균연령은 44.3세다. 이 중 지난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은 인원은 123명(9.5%)이었지만 2020년 156명(11.5%) 등으로 그 숫자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기술보증기금의 5년간 평균임금 지급률은 270%다.

신용보증기금의 평균연령은 42.5세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은 지난해 254명(10.7%)에서 2020년 322명(12.9%)으로 늘게 된다. 5년간 평균임금 지급률은 250% 수준이다.

임금피크제의 확산으로 세대 간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해도 이들의 월급이 대리나 과장 등 실무급보다 높기 때문이다. 인사 적체로 신입 사원을 뽑는 데 제한이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실제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공공기관의 추가 채용 실적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관련 별도 신규 채용 규모는 2016년 19명에서 2017년 7명, 지난해 3명으로 줄었다.

기술보증기금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2016년과 2017년 각각 6명·7명을 신규 채용했지만 지난해에는 관련 일자리를 단 한 자리도 늘리지 못했다. 신용보증기금도 2017년 이와 관련해 7명을 새로 뽑았지만 지난해에는 이와 관련해 신규 채용이 없었다.

추 의원은 “임금피크제가 기관에 따라 관대하게 설계되는 등 그 기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적용 대상자들이 특별한 임무나 과업을 수행하지 않음에도 본래 연봉의 80~90% 수준의 임금을 수령해 젊은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공공기관 등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만큼 임금피크제 운영 현황 등을 대대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들은 인사 적체 등에 대한 해법으로 민간 기업처럼 희망퇴직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은 2014년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명예퇴직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명예퇴직을 원하면 정년까지 받을 수 있는 임금(연봉의 280~290%)의 절반 이하만 퇴직금으로 지급한다. 잔여 연봉 대비 지급률이 낮아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는 게 이득이다. 2014년 제도 시행 이후 공공기관의 명예퇴직 사례를 좀처럼 찾기 힘든 이유다.
금융 공공기관, 임금피크 직원 ‘급증’…명퇴제도 ‘유명무실’
반면 올 초 희망퇴직을 실시한 KB국민은행은 희망 직원에게 지난해보다 3개월 치를 늘린 최대 39개월 치 급여를 특별 퇴직금으로 주기로 했다.

추 의원은 “과거 외환위기 때 도입한 공공기관의 명예퇴직제인 ‘준정년퇴직제’를 현실에 맞게 수정·보완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임금피크제로 청년 일자리 창출의 활로를 막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 기관도 ‘동맥경화

한국예탁결제원 등 증권 유관 기관의 인사 적체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1988년 말 국내 주식시장의 유례 없는 호황으로 기관들이 앞다퉈 인력을 보강한 데 따른 결과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해 23명(4.0%)이 임금피크제(만 57세부터) 적용을 받은 데 이어 2020년에는 60명(10.3%), 2022년 75명(12.9%)으로 그 숫자가 증가한다.

다른 유관 기관도 마찬가지다. 금융 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콤은 지난해 말 전체 인원의 약 2% 정도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데 이어 올해는 그 규모가 2배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증권금융도 임금피크제 적용 인력이 지난해 11명에서 올해 17명(5%)으로 늘어난다. 한국거래소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증권 유관 기관 중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비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방만 경영 논란에 휩싸였다가 최근 가까스로 공공기관 지정을 피한 금융감독원의 인력 경화 현상도 빨라지고 있다.

추 의원실에 따르면 금감원은 2022년 전체 직원 1961명 중 8.4%인 164명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될 전망이다.

황건호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증권 유관 기관의 회원사인 민간 금융사들은 다양한 임금체계 개편 작업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 등을 바탕으로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기관들은 강성 노조를 등에 업고 타성에 젖어 관련 개혁 작업을 게을리 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희망퇴직 방안과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2호(2019.02.18 ~ 2019.02.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