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보수재건’ 시험대 오른 2·27 한국당 전당대회
‘웰빙’ 체질 벗고 보수 가치 실현할까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자유한국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뽑는 2·27 전당대회는 한국당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표 경선에 대선 주자들까지 뛰어들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다. 물론 당 대표가 되면 다음 대선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할 수 있어 후보 개인으로서는 이번 전당대회를 변곡점으로 삼을 만하다. 차기 대표는 내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될 뿐만 아니라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당내 대권 경쟁에서 날개를 달게 된다.


국민의 관심은 그런 것 못지않게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한국당이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느냐 여부일 것이다. 2016년 총선과 이듬해 대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한 한국당이 보수 정당으로 우뚝 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국민은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 ‘한국당에 표를 줄 만하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당권 주자들이 국민에게 나라를 믿고 맡길 만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집권 가능성도 멀어질 것이다. 새 당 대표의 임기(2년)가 끝나는 2021년 2월 말이면 정치권은 대선 국면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도 한국당의 이번 전당대회는 분기점이다.


황교안·오세훈·김진태 등 세 대표 후보가 합동 연설회와 토론회를 통해 밝힌 당 운영 방안 등을 보면 강조점이 다르다. 황 후보는 ‘통합’에 무게를 두고 있다. 2월 14일 첫 합동 연설회에서 황 후보는 “우리 한국당은 고통스러웠던 가시밭길을 넘어 이 자리까지 왔다. 이제 통합의 울타리를 넓히고 혁신의 속도를 높여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약도 통합에 맞춰져 있다. ‘다시, 함께,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민단체 등과의 정책 네트워크, 대통합 정책 협의체 구성을 통해 통합을 이뤄 나간다는 것이다. 황 후보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누가 당 대표가 돼야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겠느냐’ 하는 관점에서 선택해 달라”고 강조했다.


◆ 황교안·오세훈·김진태, 공약도 3인 3색


오 후보는 ‘중도’, ‘젊은 정당’, ‘박근혜 그늘 벗기’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황 후보와 김 후보를 겨냥해 “보수 색채를 더 강하게 해서는 집토끼를 결집할 수는 있겠지만 수도권 없이는 총선에서 질 수밖에 없다”며 자신이 중도층의 마음을 잡을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또 “황 후보는 공안 검사 출신이다. 스스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최대 업적이라고 자처한다. 김 후보는 강성 보수다. 무당층의 마음을 얻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고 공격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내년 선거에서도 박 전 대통령이 화두가 되면 우리는 다시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다. 두 후보를 보면 불행하게도 어쩔 수 없이 박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고 역설했다. 오 후보가 청년당원 10만 프로젝트 추진을 공약으로 내건 것도 ‘젊은 정당’ 전략의 일환이다.


‘강한 우파 정당 건설’을 목표로 내건 김 후보는 “행동하는 우파인 내가 대표가 되는 것이 확실한 ‘우파 정당’이 되는 것”이라며 “당 대표가 된다면 애국 세력과 우리 당이 힘을 모아 어깨동무를 하고 싸워 나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당의 정체성이 잡탕밥처럼 돼서는 안 된다”며 선명한 정체성과 대여 투쟁력을 내세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 후보가 보수 가치를 정립하고 미래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다시 계파·패거리 정치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연설회와 토론회에선 정책 대결보다 여전히 친박(親朴:친박근혜), 탈박(脫朴), 배박(背朴) 논란이 중심이 됐다. 보수 재건과 가치 재정립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화합의 장이 돼야 할 전당대회가 욕설과 야유가 난무하면서 아수라장이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당내에서조차 “당의 미래 비전과 보수 가치를 제시해야 할 전당대회가 과격분자의 놀이터가 돼 버렸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전당대회가 ‘컨벤션 효과(전당대회나 경선 행사와 같은 정치 이벤트 뒤 정당의 지지율이 이전에 비해 크게 상승하는 현상)’를 얻는 계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율을 까먹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당내에서도 제1야당 전당대회 치고는 기대만큼 국민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과거 ‘웰빙 정당’ 체질에서 못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을 강행하자 벌인 ‘릴레이 단식 농성’이 대표적인 예다. 의원들이 돌아가며 5시간 30분씩 ‘단식’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어떤 절박함이나 비장함도 느껴지지 않는 이벤트였다는 조롱이 쏟아졌다. 최근엔 ‘박근혜 옥중정치’ 논란까지 불거져 자중지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당은 대선·총선·지방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하고도 반성은커녕 패배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당이 선거 패배 후 쇄신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쇄신안·혁신안 등을 여러 차례 냈지만 말로만 그쳤다는 점이다. 반성과 쇄신은커녕 ‘네 탓’, 집안싸움만 되풀이하다 없었던 일이 되곤 했던 게 그간의 과정이다. 더 큰 문제는 ‘정체성의 위기’라는 지적이 많다.


◆ 보수 가치 실현 위한 비전 제시 급선무


정통 보수의 기본 가치는 작은 정부, 낮은 세율, 시장경제, 법치주의, 자기 책임, 사유재산권 존중 등을 꼽을 수 있다. ‘보수 본류’라고 자임해 온 한국당이 이런 보수의 기본 가치들을 내팽개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2012년 대선 때는 야당이 무색할 정도로 ‘좌클릭’해 경제민주화 구호를 외쳤다. 지난해 말엔 아동수당 등 복지 예산 증액에 앞장서 오히려 여권을 표정 관리하게 만들었다. 보수 가치에 충실하지 못하니 정권을 내준 뒤에도 여당과 치열한 이념 경쟁을 벌이며 제대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새 대표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명실상부한 수권 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책무가 있다. ‘웰빙 체질’을 벗고 거대 야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새 대표 본인의 대권 가도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은 물론 한국당이 대안 정당으로 우뚝 서게 되는 기회도 잃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확고히 하는 바탕 아래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비전 제시가 급선무라는 게 당 안팎의 지적이다. 경제와 안보 등 각 분야에서 좌파적 정책들이 줄줄이 추진되고 있지만 한국당은 보수 정당으로서 좌표 설정도 못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당은 2006년 마이클 하워드 영국 보수당 당수가 내놓은 ‘16개 보수주의 강령’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노동당에 연패하는 바람에 보수당의 미래가 불투명하던 하워드는 신문광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국민은 커야 하고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국민은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