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19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4400억원 사재 출연, 신문명·통일 한국 등 화두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시대를 함께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여시재는 2015년 첫발을 내디딘 새로운 모델의 ‘한국형 싱크탱크’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4400억원을 출연해 설립했지만 기존의 기업 연구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한샘과 관련한 연구를 일절 하지 않고 운영 또한 철저히 독립적이다. 출연자인 조 회장조차 2016년 공식 출범 직전 이사진에서 물러났을 정도로 설립 초창기부터 ‘독립성’을 중시해 왔다.
‘대한민국의 미래’ 찾는 여시재…정책 대안 중심 ‘솔루션 싱크탱크’ 지향

◆ 이념·정파 초월한 ‘솔루션 탱크’ 표방



여시재는 출범 당시부터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와 자주 비교되곤 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의 대내외 정책 전반을 연구하는 종합 연구소다. 뉴딜 정책과 유엔의 탄생, 마셜 플랜, G20까지 미국 역사에서 물길을 바꿔 온 굵직굵직한 정책 아이디어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여시재는 브루킹스연구소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브루킹스연구소가 각각의 연구 분야와 과제들을 모아 소화하는 ‘인하우스 조직’이라면 여시재는 국내외 전문가·싱크탱크와 연대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네트워크형 연구 기관’을 지향하고 있다. 지식을 가두는 ‘탱크’보다 지식이 네트워크를 타고 흘러 다니는 물길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시재는 영국의 채텀하우스(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 모델에 더 가깝다. 채텀하우스는 외교·안보 분야의 세계 최정상급 싱크탱크로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식과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를 위한 주요 키워드는 다름 아닌 ‘초당파적·초국가적’ 연구다. 여시재는 단순히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연구 결과물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솔루션 탱크’를 표방한다. 기존 싱크탱크들이 연구 발표 위주의 소극적 활동을 중심으로 했다면 여시재는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정책 솔루션을 제안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역사적 전환기에 혁신에 성공해 세계를 선도한 독일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은 고(故)빌리 브란트 총리, 고 시몬 페레스 대통령처럼 무엇보다 정치적 사회적 대타협을 이끈 리더십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시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는 여야를 넘나드는 전직 정치인과 관료·기업인·법조인 등이 망라돼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이사장을 맡고 있고 정창영 연세대 전 총장, 홍석현 중앙일보 전 회장,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전 장관, 안대희 대법원 전 대법관, 박병엽 팬택씨엔아이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내 저명인사들을 포진시켜 싱크탱크의 신뢰성을 높이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시재는 2019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경제의 전문가와 전직 기업 최고경영자(CEO), 최고위 관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한반도의 미래 산업 대토론회를 8차례에 걸쳐 개최할 예정이다.


◆ 아시아 중심 신문명 ‘미래 도시 프로젝트’ 역점


여시재가 지향하는 바는 뚜렷하다. 기존의 기업이나 산업 관련 연구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린다. 미래의 세계 질서를 전망하고 그 안에서 대한민국이 주인공이 되기 위한 방안을 찾아가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여시재가 던진 화두는 크게 네 가지다. ‘신문명’ ,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 한국의 비전’, ‘도시의 시대’다.


이 네 가지 화두 중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최근 여시재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미래 도시 프로젝트’다.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새로운 문명은 도시를 통해 탄생했다. 농경 문명을 주도한 로마와 산업 문명을 주도한 뉴욕처럼 디지털에 의한 신문명 또한 새로운 도시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여시재는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신문명 도시를 만들어 가기 위해 2018년부터 미래 도시 포럼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신문명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할 세계적인 대학과 기업들을 모아 파이어니어(선도) 그룹을 구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3월 보아오 포럼, 11월 베이징 포럼을 거쳐 신문명 도시의 청사진을 만들어 2020년 베이징 포럼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최근에는 남북 화해 무드가 진전되면서 남북 경협 시대를 준비하는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여시재는 ‘통일 한국의 비전’을 위해 남북 자원 협력과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스마트 시티 건설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 왔다. 남북 경협 이후 기업들의 활동하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기후변화, 미세먼지, 원자력, 자본의 이동과 국제금융 등의 문제는 한 국가의 차원을 넘어 국제 협력을 통해야만 풀 수 있는 의제들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여시재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반기문세계시민센터, 중국 칭화대의 글로벌지속가능발전연구원, 일본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만든 자연에너지재단 등 다양한 글로벌 싱크탱크들과의 협력과 협업을 강화해 가고 있다. 2019년에는 한국의 포스텍, 싱가포르 난양공대, 홍콩과기대 등 아시아 유수의 과학기술 대학들과 공동으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시아 도시 기술 경진 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 인터뷰 이광재 여시재 원장 “세계 문명 ‘대전환기’, 새로운 비전 필요”


북한의 비핵화 협상 결과는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기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또 다른 변수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혁명이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미래로 인도하고 있다.

2019년 대한민국은 역사적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미래를 주도해 나가야 할까. 이광재 여시재 원장으로부터 이에 대한 답을 들었다. 이 원장은 2015년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 청사진을 준비하는 여시재 창립에 참여해 왔고 강원도지사를 지내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에도 역할을 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찾는 여시재…정책 대안 중심 ‘솔루션 싱크탱크’ 지향

-2017년 이후 여시재를 이끌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여시재의 가장 큰 목표는 ‘세계적인 문명 전환의 시대에 한반도 나아가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당면하고 있는 환경 파괴,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문제는 산업 문명이 야기한 모순에서 비롯된다. 다가오는 디지털 혁신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여시재는 이와 같은 역사적 전환기에 세계적인 지식을 모으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문명 전환을 주도하는 싱크탱크가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상시적인 온라인 콘퍼런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지식 축적 시스템을 벗어나 인공지능(AI)을 통한 지식 검색·편집·유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은 대한민국이 ‘100년 만에 맞이하는 운명적인 한 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2019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다. 100년 전 한반도는 산업 문명을 주도하려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간의 각축장이었다. 삼일절 만세운동은 민족자결권을 표현한 위대한 저항이었지만 우리의 운명을 바꿀 세계사적 인식도, 주체 역량도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2019년은 다시 한 번 한반도를 중심으로 글로벌 패권을 위한 강대국 간의 경쟁이 극에 달할 것이다. 북·미, 남북 관계 개선과 함께 전 세계에 새로운 화해와 공존의 솔루션 그리고 인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반도가 세계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여시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여시재는 출범 첫해부터 한·중·미·일·러 등 5개국을 망라한 동북아 포럼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미래에 대한 컨센서스를 부단히 만들어 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신성장 글로벌 프로젝트인 ‘나비프로젝트’는 북극항로가 열리는 새로운 시대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정치·경제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미·중 갈등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채텀하우스 등과 함께 글로벌 에세이 경진 대회를 시작할 예정이다.”


-남북 경협과 관련해서도 여시재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율주행차의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는 1순위 국가로 북한을 꼽았다. 낮은 도시화, 낮은 이해 충돌 가능성,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집행력 등은 북한이 스마트 도시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오히려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여시재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비전을 찾고 동시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청사진을 통해 북한이 북핵 문제를 청산하고 스스로 발전과 공존의 길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미래에 가장 큰 위험 요소를 꼽는다면.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미·중 무역 분쟁 등 대내외적으로 위험 요소가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요인은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몰인식이다. 미국이 시작한 무역 전쟁은 중국의 변화, 기술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와 위기에 대한 전사회적인 공감이 없다면 한국은 비가역적인 도태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갈등과 규제 등 기존의 이해와 발전 논리에 근거한 전사회적 폐쇄성과 몰역사적 인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극복돼야 할 문제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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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총괄 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