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국회 손혜원 국정조사 이견충돌…파행 이면엔 여야 원내사령탑 궁합 문제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지난해 9월 28일 검찰이 청와대 업무추진비 의혹을 제기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전격 압수 수색했다. 당시 원내 사령탑을 맡고 있던 김성태 의원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회관으로 달려갔다. 검찰의 압수 수색이 진행 중인 심 의원 사무실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김 의원은 현장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원 사무실 압수 수색을 야당 원내대표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육두문자성 험한 말을 쏟아냈다. 10분 넘도록 욕설을 듣고 있던 이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다. 전화를 끊고 난 홍 원내대표는 “나도 몰랐는데 왜 나한테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욕설까지 해가면서 화풀이하는지 모르겠다”며 씩씩거렸다.
이튿날부터 여야 원내대표의 공식 발언이 험악해졌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흘 뒤 JTBC 심야 토론회를 마친 홍 원내대표의 손을 김 의원이 끌었다. 홍 원내대표는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그러지 말고 소주 한잔하고 가자”는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야의 협상 채널이 재가동됐다.
◆ 큰 쟁점 없는데도 2월 국회 파행 왜
국회가 새해 들어 두 달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특히 2월 임시국회가 무산된 것은 19년 만이다. 2000년 국회법 개정을 통해 2·4·6·8월의 임시국회 소집을 명문화한 이후 2월 국회가 열리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국회 파행이 고질병이 돼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한두 달 국회가 열리지 않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이번처럼 큰 쟁점이 없는데도 2월 국회가 파행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여의도 정가에선 국회 파행의 보이지 않는 원인으로 민주당과 한국당 원내 사령탑의 섞일 수 없는 ‘케미(궁합)’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대로 이렇게 궁합이 맞지 않는 여야 원내 사령탑은 드물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주재로 2월 25일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구질구질하다’는 발언에 홍 원내대표가 ‘말조심하라’고 발끈하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두 원내대표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다.
국회 1·2당이 다투고 있는 표면적 이유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 국정조사를 둘러싼 이견이다. 나 원내대표는 목포 투기 의혹과 관련한 손 의원 국정조사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손 의원 건과 함께 이해 상충 문제가 불거진 장제원·이장우·송언석 등 한국당 의원 관련 사안까지 함께 국회에서 조사하자는 의견이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위나 상임위 활동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는 이해 상충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이 사안이 국회를 장기간 파행시킬 정도로 중요한 이슈인지는 여야 의원들 모두 고개를 갸웃거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진 손혜원 이슈를 왜 계속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국회는 야당의 무대인데 상임위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따지는 게 낫지 않느냐는 당내 의견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홍·나 원내대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요즘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한다.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당내 상황과 원내대표들의 스타일을 국회 파행 장기화의 1차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드루킹 특검을 수용했던 홍 원내대표는 김경수 지사 구속 이후 내부에서 비판을 받으면서 운신의 폭이 줄어 한국당의 요구를 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당내 리더십이 확실하지 않아 소신껏 일 하기가 녹록하지 않은 데다 당내 의견도 엇갈려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 원내대표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도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김 원내대표는 “김 의원은 추진력이 강한 편이었다”며 “당내에서 일부 비판이 있더라도 본인의 결정이 있으면 밀고 나가는 스타일 반면 나 원내대표는 당내 의견 수렴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교착상태인 국회를 풀어야 하는 1차 책임은 집권 여당에 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국회 파행을 풀어야 하는 최종 책임은 여당이 져야 한다”며 “나 원내대표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으면 다른 것을 양보해서라도 국회의 교착상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여야 원내대표, 달라도 너무 달라
여야 원내 사령탑의 교섭이 막히면 비공식 채널이 가동되는 게 통상적이다. 소위 테이블 밑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원내대표들이 최종 결정을 하는 게 여의도 정치의 정통적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재 홍·나 원내대표 간에는 이런 채널이 가동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은 각각 3·4선의 중진 의원이다. 10년 이상 국회 밥을 먹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식사는 물론이고 차 한잔 함께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정치 경력과 삶의 궤적이 확연히 다르다. 홍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장을 비롯해 환경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 분야 등의 상임위 활동을 했다. 반면 나 원내대표는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냈고 법사위·문화위·기획재정위 등에서 활동했다. 같은 상임위 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인생 역정도 확연히 구분된다. 홍 원내대표는 대우자동차 노조 간부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실 비서관을 거쳐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친노무현계이면서 현재는 민주당 내 친문재인계 핵심 인사로 꼽힌다.
판사 출신인 나 원내대표는 이회창 대표 시절 대변인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고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한 4선 의원이다. 2018년 1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당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의 지지를 업고 큰 표 차로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정치권 관계자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며 “여야 협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데는 이런 부분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외적으로 대형 이벤트가 마무리되면서 3월 국회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과 한국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마무리됐다.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평가하고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정상화는 불가피하다. 또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선 한국당은 정부 여당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이 선거법을 고리 삼아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과 손잡고 한국당 포위 전략을 펴고 있는 구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속내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상법·선거법 개정안 등 정부 입법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국회 정상화가 시급하다. ‘우린 급할 게 없다’는 태도로 제1야당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인다면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국회 관계자는 “여야 모두 국회 파행 장기화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고 대내외 변수들도 해소된 만큼 3월 국회는 돌파구를 찾지 않겠느냐”면서도 “홍·나 원내대표의 스타일이 워낙 달라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파열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4호(2019.03.04 ~ 2019.03.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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