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조부 신예범, 백부 신용국, 부친 신용호 창업자 독립운동에 헌신
-신 회장은 ‘민족기업 60년 보험명가’ 키우며 독립운동 정신 계승
‘3·1운동 100주년’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가계에 시선 집중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가계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조부 신예범, 백부 신용국, 선친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해 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조부 신예범 선생은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두고 공부에 전념해 왔으나 과거가 폐지된 후 세상이 바뀐 것을 자각하고 개화사상을 받아들여 신학문을 익혔다. 일제가 강제로 나라를 빼앗은 후 야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 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동하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요시찰 인물로 분류돼 일본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산 신용호 선생과 이육사의 만남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전남 영암 농민항일운동 관련자 6명에 대해 독립유공자로 추서했다.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을 농민항일운동으로 재조명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 가운데 대산의 큰 형인 신용국 선생은 일본 소작인 응징과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이런 공훈을 인정 받아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스무 살 때 3·1운동에 뛰어든 이후 호남 지방의 항일운동을 이끌다 여러 차례 감옥에 갔고 출옥 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객지로 떠돌았다.
‘3·1운동 100주년’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가계에 시선 집중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집에서 독학으로 초·중·고 과정을 마친 대산 신용호 선생은 천일독서(千日讀書)를 통해 100권의 책을 정독하고 시장 부두 관공서를 둘러보는 현장 학습으로 세상을 깨우친 것으로 유명하다.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 대산은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나 도움을 주었지만 특히 이육사를 만나면서 국가와 민족에 눈을 떴다. 이육사는 당시 대산이 반드시 큰 사업가가 돼 독립운동 자금을 내놓겠다고 하자 “모쪼록 대사업가가 돼 헐벗은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 자본가가 되길 바라네”라며 격려했다.


대산은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때 얻은 수익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했다. ‘아Q정전’의 작가 루쉰의 영향을 받은 이육사는 경술국치 이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상세히 거론하며 대산에게 사업의 중요성과 사업가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전해진다.
‘3·1운동 100주년’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가계에 시선 집중
대산이 교보생명의 창립 이념을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으로 결정한 배경에는 ‘교육이 민족의 미래다’라는 본인의 철학과 소신은 물론 이육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오랜 기간 숙고한 결과물이라 판단되는 근거다.


그의 창립 철학은 교육보험·교보문고·교보교육재단·대산문화재단을 통해 국민교육 진흥의 구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빅3의 대형 생명보험 회사를 키우며 쌓아 놓은 금융자산은 가계의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금의 기초가 되고 국내 산업 발전의 자양분으로 흘러들어가는 선순환의 촉매제가 돼 왔다.


◆신창재 회장, 민족 기업 60년 보험 명가 계승


신창재 회장은 1996년 서울대 의대 교수에서 교보생명으로 자리를 옮겼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부친의 설득이 주효했다. 새롭게 일생을 바칠 무대가 학교와 병원에서 경영 현장으로 바뀌었다.


그는 2000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대대적인 변화 혁신으로 국내 생보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관행과 과거의 악습으로부터 대대적인 혁신을 선도했지만 선대가 일궈 놓은 창업 정신의 계승에 더 적극적이었다. 국민교육 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의 현대적 재해석과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3·1운동 100주년’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가계에 시선 집중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체험 중심, 인성 개발, 지혜 함양의 방법을 통해 참사람 육성을 표방한 ‘체·인·지 리더십 프로그램’은 국민교육 진흥의 미래의 방향성을 읽게 한다. 연간 500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 책방’ 교보문고는 한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이 꼭 거쳐 가는 대표적 명소이자 문화 공간이 됐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후원하는 대산문화재단의 해외 번역, 출판 사업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1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된 광화문글판은 교보생명의 브랜드를 한 차원 높인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계절마다 시의성 있고 정감 어린 글귀로 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글판의 문안 선정 작업은 이제 회사가 아닌 시민들을 대표하는 위원들에게 맡겨져 시민들이 주인이 됐다.


신 회장은 대산 신용호 창업자가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데 이어 22년 만인 2018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이지만 문학과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한 예술인 부자가 세운 전대미문의 기록이기도 하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4호(2019.03.04 ~ 2019.03.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