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원내대표와 조국 수석의 ‘얄궂은 운명’…‘모범생’ 대 ‘입 큰 개구리’ [홍영식 한국경제 논설위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대(82학번) 동기다. 학창 시절 서로 관계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 원내대표는 조 수석에 대해 “동기들보다 나이가 어려 귀여운 동생 보듯이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조 수석은 또래보다 초등학교에 2년 빨리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원내대표는 또 “(조 수석은) 대학 때 별명이 ‘입 큰 개구리’였다”며 “우리가 어떤 주제로 얘기를 하든 나타나서 앉자마자 본인의 이야기를 한 다음 인사하고 가곤 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2011년 발간한 ‘진보집권플랜’에서 나 원내대표에 대해 “대학 시절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모범생이었다”며 “노트 필기를 잘해 가끔 빌려 쓰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대학 졸업 이후 다른 길을 걸었다. 조 수석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로스쿨을 졸업했다. 전공은 형사소송법이다. 1993년 울산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개월 넘게 옥살이를 했다.
2001년 동국대 법학과 조교수로 옮겼다가 이듬해 서울대 법대 조교수가 됐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과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일 때 혁신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이 됐다.
나 원내대표는 1992년 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7년여간 판사로 일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당 쇄신 차원에서 각 분야의 젊은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는데, 나 원내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여성 최다선(4선)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보수 진영 당의 최초 여성 원내대표가 됐다.
두 사람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간접적으로 충돌한 적도 있다. 나 원내대표는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후보로 출마했고 조 수석은 상대 진영 후보인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멘토단으로 활동했다. 나 원내대표는 2012년 TV에 출연해 조 수석이 박 시장을 도운 것이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선거 과정에서 생각이 다르니 그러지 않았겠나”라고 웃어넘겼다.
◆ ‘82학번 동기’ 기싸움 팽팽
당시엔 직접 부닥칠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와 여권을 향한 공격 선봉장 역할을 해야 하는 제1야당 원내대표는 정치적으로 서로 대척점에 서야 하는 처지다. 친구로서의 우정을 접고 서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나 원내대표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 31일 두 사람은 국회에서 처음 격돌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규명을 위해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다. 조 수석이 관할하는 조직에서 터진 일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12년 만에 국회에 출석시킨 주역은 나 원내대표였다. 운영위 소집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나 원내대표는 “공적인 일인데 옛날 친분은 상관이 없다”고 강공을 예고했고 조 수석은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다짐했다.
나 원내대표는 회의 시작 전 증인석을 찾아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조 수석에게 악수를 청했고 조 수석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이에 응했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자 나 원내대표는 맹공을 퍼부었고 조 수석은 적극 방어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양두구육(羊頭狗肉 : 겉과 속이 다름)”이라고 몰아붙였고 조 수석은 “삼인성호(三人成虎 : 거짓이라도 여럿이 말하면 속는다)”라고 맞섰다.
나 원내대표는 “이 정부는 민간인을 사찰하고 공무원 핸드폰을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으로 캐고 자신들의 실세 비리는 묵인했다”며 “청와대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대해 몰랐다고 해도 직무유기, 보고받지 않았다고 해도 직무유기, 알고 뭉갰어도 직무유기”라고 조 수석을 직접 겨냥했다.
이에 조 수석은 “현 정부 들어와 수백, 수천 명의 정보 요원을 철수시킨 뒤 열 몇 명의 행정 요원을 갖고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제가 정말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저는 즉시 파면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이미 판례에 따라 민간인 사찰과 블랙리스트에 대한 범죄 혐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명확한데 이에 비춰 볼 때 민간인 사찰을 했다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든 일이 없다”고 맞섰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무원 휴대전화 조사와 관련해서도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사찰하면 그 사람의 사생활과 양심, 영혼까지 다 나온다”며 “조 수석은 영혼 없는 탈곡기, 사찰 수석”이라고 공격했다. 또 “조 수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4월 자신의 트위터에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 계좌 뒤지기는 불법’이라고 했다”며 “공무원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 동의서를 받고 뒤진 것은 조 수석이 트위터에 올린 ‘영장 없는 이메일 수색’보다 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수석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라는 요구까지 했다. 스스로 물러나라는 얘기다.
◆ 나 원내대표, ‘장자’ 인용 조 수석 작심 비판
두 사람의 갈등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나 원내대표는 2월 26일 ‘장자(莊子)’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해 비판했다.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아도 그것을 이어주면 걱정할 것이요(鳧脛雖短 續之則憂), 학의 다리가 비록 길어도 그것을 자르면 슬퍼할 것(鶴脛雖長 斷之則悲)’이라는 문구다. 조 수석이 청와대 국민 청원에 대한 답변을 통해 고위 공직자 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제외할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자신의 편견과 아집으로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조 수석이 국회의원만 빼주겠다고 흥정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국회를 조롱하는 행태라는 얘기다. 조 수석이 페이스북 글에서 “3·1운동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벌인 촛불 혁명”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자기만의 프리즘으로 국민을 이념에 따라 갈라 치고 독선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모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압력 문제를 놓고 부딪쳤다. 나 원내대표는 “조 수석이 얼마 전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를 맡은 동부지검 주임검사가 통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권한을 남용해 검찰을 주무르고 있었다는 자기 고백”이라며 “만약 검찰 통제가 사실이라면 직권남용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공세를 취했다.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조 수석이 ‘블랙리스트 사건 주임 검사가 통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조 수석은 그런 말을 전혀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가짜 뉴스에 기반을 둔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앞으로도 자치경찰제 입법, 고위 공직자 범죄수사처 신설 문제 등 두 사람이 부닥칠 현안들이 즐비하다.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맞닥뜨린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소임을 마친 뒤 다시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5호(2019.03.11 ~ 2019.03.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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