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정신이 희망이다]1부 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들…기업가 정신 루트를 가다
-대구에서 삼성상회 연 29세 이병철…뚝심 하나로 미포만 모래밭에 조선소 세운 정주영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한경비즈니스=대구·울산|안옥희 기자]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북한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세계 최빈국에서 반세기 만에 세계 7대 수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초고속 경제 발전을 이룩한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기업가들의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이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어려움과 불확실성, 규제 강화 등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했다. 창업 정신을 상징하는 현장을 찾아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났던 1세대 창업가들의 창조적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대구 삼성상회, ‘글로벌 삼성’의 출발점
대(代) 이은 인재 경영 기틀 닦은 이병철

삼성그룹의 기틀을 닦은 호암(湖巖) 이병철 창업자(이하 호암)의 경영 이념은 ‘사업보국’과 ‘인재제일’로 요약된다. 특히 그는 경영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룩하고자 했다. 호암의 기업가 정신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은 대구다. 대구는 단순한 창업지를 넘어 글로벌 삼성의 모태가 된 지역으로 의미가 깊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그룹의 역사는 대구의 한 쌀가게에서 시작됐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난 호암은 29세 되던 1938년 개천이 흐르던 달성공원 옛터에 자리를 잡고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열며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17㎡(5평) 남짓한 사무실에 전화기 한 대와 국수 기계, 직원 40명으로 출발한 삼성상회의 주력 상품은 별표국수였다. 1980년대 말부터 1992년까지 사용됐던 별 모양의 삼성 로고는 별표국수에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로고인 3개의 별은 각각 ‘크고 강력하고 영원함’을 의미한다. 이후 삼성전자의 전자제품이 성장하고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면서 별 모양이 사라지고 오늘날의 계란형 영문 기업 이미지(CI)로 바뀌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호암의 기업가 정신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3월 18일 대구 삼성상회 옛터를 찾았다. 바로 앞에는 크레텍책임이라는 이름의 공구 전문 업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크레텍책임 건물 외벽에는 1997년 철거되기 전 삼성상회 옛날 모습이 찍힌 사진이 걸려 있다. 삼성상회 옛터가 있는 북성로 거리는 100년 가까이 된 역사가 깊은 거리다. 본래 하천이었다가 1953년 복개된 뒤부터 주변에 공구골목·오토바이 골목이라는 상권이 형성됐다. 삼성상회 옛터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생가가 가까이 있어 지금은 이색적인 문화 체험 코스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인재를 중시했던 호암의 인재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민 전상재 씨는 “이병철 창업자와 같이 장사하던 분들의 후손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장사하는 가게들이 있다. 전해 듣기로는 삼성상회는 열심히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곽기웅 씨는 “이병철 창업자가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신용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시 시장에선 무게를 속여 적게 주는 곳도 많았는데 삼성상회는 저울로 곡물 무게를 정확하게 재 판매했기 때문에 정직하게 장사한다는 신용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겐 쌀 한 바가지라도 더 줬다는 얘기도 많다. 평가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호암은 “내 생애의 80%는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데 보냈다”고 말할 정도로 인재 선발과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꼭 참여했고 면접 때 유명 역술인을 동원해 관상까지 봤다는 일화는 그의 인재 찾기에 대한 열의를 보여준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호암의 인재 제일주의 원칙은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삼성창조캠퍼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과거 제일모직 공장 터가 있던 부지로 현재는 삼성기념관의 성격인 삼성창조캠퍼스가 조성돼 있다. 철거된 옛 자재로 복원한 삼성상회 모형과 호암의 동상도 있다. 도로명부터 호암의 호(號)에서 따온 ‘호암로’다.

삼성창조캠퍼스는 9만㎡ 용지에 벤처창업존·문화벤처융합존·주민생활편익존·삼성존 등 4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이 중 삼성의 역사와 호암의 기업가 정신을 보여줄 전시 공간인 삼성존은 전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삼성의 모태가 된 이 공간은 시민과 창업자들의 꿈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제일모직 기숙사 전시관도 마련됐다.

1954년 호암은 제일모직 공장을 만들면서 여직원들을 위한 최신식 기숙사를 함께 지었다. 미용실·세탁실·목욕실 등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최고급 시설이었고 화장실도 당시 유명 호텔에서나 볼 수 있던 수세식으로 만들었다. 1960년대 이 기숙사를 둘러본 박정희 대통령이 “이 정도면 딸을 맡길 수 있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작업 환경이 좋아야 능률이 오른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호암의 사업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삼성상회를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온 호암은 나라에 부족하고 꼭 필요한 물자만 찾아 공급한다는 전략으로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해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사업 기반을 모두 잃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선구안으로 1952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재창업했다.

무역업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던 시기 호암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해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웠다. 그리고 1956년 세운 제일모직이 성공하면서 국내 대기업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후에도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1983년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한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다.

놀랍게도 삼성전자는 그해 11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전했다. 당시 세계 최고 반도체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일본이 6년 만에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것과 비교해 이는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만류했던 반도체 사업은 36년이 지난 지금 삼성의 실적을 견인하는 일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고 본격적으로 휴대전화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의 ‘글로벌 삼성’을 만들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했던 호암의 창업가 정신은 아들 이건희 회장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 등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창업 당시 자본금 3만원으로 시작한 삼성그룹은 2018년 기준 62개 계열사 자산이 총 418조2170억원으로 성장했다. 창업 당시 40명에 불과했던 임직원 수는 현재 약 50만 명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 교수는 “경제개발 초기는 한국 역사상 창업자 정신이 가장 제약 없이 발휘됐던 시기였다. 지금의 재벌 기업들이 다 그때 탄생했는데 그중에서도 삼성이 글로벌 일류 기업이 된 것은 그만큼 창업자의 경영 이념이 후대에 잘 전달돼 왔다는 의미”라며 “지금은 한국의 주력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어려운 시기다. 사회가 삼성 창업자처럼 혜안을 가지고 있고 리더십을 겸비한 사업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경영 풍토를 만들어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울산 모래밭에 세운 조선소’
무에서 유를 창조한 혁신적 기업가 정주영


“이 돈을 보시오. 이것이 거북선이오.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두뇌가 있소. 영국 조선의 역사는 1800년대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300년이나 앞서 있었소. 다만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동안 아이디어가 녹슬었던 것이 불행한 일이지만 잠재력은 그래도 갖고 있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이하 아산)은 평소 즐겨 하던 말인 ‘이봐, 해봤어?’의 정신에서 방법을 찾곤 했다. 그는 1971년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 건립에 어려움을 겪자 해외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5만 분의 1 백사장 지도와 500원 지폐 속 거북선으로 영국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조선소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어려운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미포만 모래밭을 대형 조선소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이 유명한 일화 때문에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는 아산의 불굴의 도전 정신과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아산 서거 18주기를 이틀 앞둔 3월 19일 찾은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일대 곳곳에서 창업자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본사 주변에는 울산 최초의 종합병원인 울산대병원과 현대예술공원·현대백화점·현대호텔·사원아파트·초중고등학교 등 다양한 지역 인프라가 구축돼 있었다. 이 시설들은 모두 아산이 직원들과 지역주민의 문화생활과 복지를 위해 건립한 것이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에 있는 팔각정 형태의 안내소를 지나면 문화관 1층에서 아산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아산기념전시실이 나온다. 이곳에선 아산의 업적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패 사례 또한 전시하고 있다. 성공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시도했고 실패를 성장 기회로 삼았던 아산의 도전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표적으로 1965년 현대건설은 첫 해외 공사 수주였던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기술력 부족으로 큰 적자를 냈다. 하지만 이때 기술을 배워 온 덕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본사 정문에서 보이는 한 건물에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아산이 생전 강조하며 원동력으로 삼았던 사업보국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구다.

본사에서 10분 거리에는 아산이 평소 즐겨 찾았다는 만둣집이 있다. 1976년에 문을 연 이 가게는 4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게 주인은 “시어머니가 40년 넘게 장사하셨다. 만두 맛은 계속 업그레이드돼 정 회장님이 찾을 당시와는 달라졌다. 이쪽에 먹을 것이 많지 않아 자주 오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아산은 사업을 키워 재벌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아산기념전시실에는 그가 생전에 신었던 낡은 구두 두 켤레가 전시돼 있는데 모두 2001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하기 전까지 10년 이상 신었던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 회장은 낡은 구두에 쇠를 박고 다닐 정도로 검소했다”고 회상했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20년 이상 조선업에 종사했다는 김진수 씨는 “‘왕회장님’의 불도저 같은 경영 스타일이 지금 시대정신과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당시엔 실제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됐다. 현대중공업 부장·과장 등 일반직 직원들에게는 너무나 엄격했지만 생산직과 협력 업체 노동자들에겐 너그럽고 따뜻했다. 점수를 매긴다면 일반직 직원들에겐 0점짜리, 생산직들에겐 80점 이상일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박진수 씨는 울산 동구를 가리켜 ‘현대왕국’이라고 명명했다. 울산 토박이라고 소개한 그는 “아산로 진입부와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을 시작으로 북구와 동구는 거의 ‘현대 땅’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 사람들은 동구 쪽을 ‘현대왕국’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대예술공원 부지는 원래 공원 부지가 아니라 일반 상업지구인데 정 회장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지역 사회공헌과 복지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아산로는 명촌교 북단~성내삼거리를 연결하는 총연장 4.8km에 너비 30m의 왕복 6차로 도로다. 태화강 하류와 울산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KCC 울산공장 바로 옆을 지난다. 택시를 타고 시속 80km로 아산로를 통과하는 데만 6분 이상이 걸렸다. 아산은 또 교육에 대한 남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편안하고 안정된 가정이 회사 발전의 반석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직원 자녀와 배우자, 부모를 위한 교육 시설들을 곳곳에 설립했다. 울산대도 그중 하나다. 학교 내에는 아산의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는 아산리더십연구원이 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김구한 아산리더십연구원 연구교수(문학박사)는 “아산은 황량한 벌판에 현대라는 깃발을 꽂고 도전·개척 정신으로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 온 ‘한국형 최고경영자(CEO)’의 대표 주자다. 그가 닦아 놓은 산업 토대가 오늘날 첨단 산업의 발달을 꽃피웠고 작지만 부강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젊은 세대에 아산의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선 케이스 스터디 방식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청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체화할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가들의 성공 사례에만 초점 맞춰 신화화하기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처럼 젊은이들이 그들의 사례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링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기업가 정신 루트 탐방…대구에 삼성상회 연 청년 이병철·뚝심으로 ‘모래밭 조선소’ 세운 정주영
ahnoh05@hankyung.com




[커버스토리=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인덱스]
①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한국, 기업가 정신 쇠퇴” 56.4% “기업가 정신 교육 필요” 87.3%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들…기업가 정신 루트를 가다
-도전과 모험이 혁신을 부른다’…다시 읽는 슘페터와 드러커
②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누구나 창업해야 하는 시대, 지식만 가르치는 건 직무유기죠”
-스타트업 육성하는 벤처 1세대…언론 노출 꺼리지만 ‘멘토’ 자처
-‘기업 가치 1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창업자들
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삼성, C랩 통해 스타트업 설립 지원…‘제2의 삼성전자’ 탄생 기대
-현대차, 반세기 달리며 ‘품질 경영’ 장착…미래차 게임 체인저로
-SK ‘직물 공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반도체·바이오에 공격 투자
-LG, 4대째 이어진 ‘연암정신’, 초일류 기업 만들다
-롯데, 기업 문화 혁신에 팔 걷어…유연근무제 도입·남성육아휴직 의무화
-포스코, 기업 시민 위한 ‘위드 포스코’ 새 비전…비철강 ‘강자’ 노린다
-한화, 과감한 투자·빅딜로 태양광 등 수직계열화…‘글로벌 한화’ 날개 편다
-신세계, ‘유통 혁신의 아이콘’…배송 경쟁력·스마트 초저가로 승부
-두산, 경영 혁신으로 ‘턴어라운드’ 성공…신사업 도전 나선다
-CJ, 창업 이념 ‘사업보국’ 정신, ‘K컬처’에 이어 ‘K푸드’로 확대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