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 기업 밸류업 프로젝트의 열쇠…‘C레벨 팀’ 그리고 ‘선순환 구조’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사모펀드(PEF)는 국내 M&A 시장에서 메인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2005년 처음 도입된 이후 14년의 역사를 지난 PEF는 이제 기업의 가치를 키우는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지난해 국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인수했다가 매각한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은 MBK가 인수할 때만 해도 국내 금융지주사들 중 관심을 두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MBK가 다시 되팔 때는 경쟁이 몰려 신한금융그룹에 매각됐다. 올해는 사모펀드들이 보유한 포트폴리오의 매각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통상 5~8년의 라이프사이클을 갖는 펀드 만기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조 단위 딜이 등장했다. 오렌지라이프·ADT캡스·코웨이 등 PEF가 보유했던 회사들이 성공적으로 매각됐다. 한편에선 PEF에서 PEF로의 매각인 세컨더리 마켓도 활성화되고 있다.
성공적인 인수·합병(M&A) 딜 사례가 나오면서 PEF의 ‘밸류업 전략’에도 관심이 쏠린다.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여 시장에 되파는 과정에서 막대한 차익을 거두는 비결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M&A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열쇠는 결국 사람 관리라고 말한다. 남상욱 딜로이트안진 M&A그룹 전무는 “비즈니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가치를 키울 수 있는 경영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외부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데 공을 들인다. “싸게 샀다, 비싸게 샀다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서 기업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플랜을 사모펀드가 세운다면 플랜을 실행해 줄 사람들, 즉 믿고 맡길 경영진을 세우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PEF들이 보유한 포트폴리오 회사의 임원’이라는 새로운 직종이 생기고 있다. 사모펀드의 기업 투자가 늘면서 전문 경영인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PEF 전문가들에게 사모펀드 포트폴리오 회사의 전문 경영인의 조건에 대해 물었다.
스타 플레이어 CEO는 ‘비추’…화합이 중요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일은 최고경영자(CEO)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실제 사모펀드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대상은 CEO뿐만이 아니다. 재무(CFO)·운용(COO)·마케팅(CMO)·개발(CDO) 등 이른바 C레벨 임원들이 PEF의 고정 경영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요 PEF 운용사들은 실사 과정에서부터 플랜을 세운다. 외부 환경을 진단하고 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묘안을 고민하는 동시에 이를 실현할 ‘C레벨 경영팀’을 구성한다. 이미 점찍어 둔 후보군을 인수 전에 만나기도 하고 전문 헤드헌터에게 추천을 부탁하기도 한다. CEO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만 많게는 10여 명으로 구성된 경영팀으로 움직인다. 홀로 튀는 스타플레이어는 그래서 최적의 인재가 아니다. 한 명의 선수보다 조화로운 경영팀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둔다.
무조건 외부 인재 영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업 통합에서 화합이 중요하다. 실사 과정에서 20~30년 동안 일해 온 기존의 내부 임원진에 대한 평가도 동시에 이뤄진다. 각각의 기업 전략에 따라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외부 인재 영입에 팔을 걷어붙인다. 같은 업종 혹은 유관 산업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인재를 영입한다. 동종 업종이 아니더라도 영업 능력이 탁월하다면 다른 영역이더라도 앞다퉈 영입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이나 학력보다 경력과 실력이다. 국내 대기업 문화와 달리 부사장보다 더 나이가 적은 사장이 앉는 곳도 많다. 경력도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기간’이 아닌 실제 ‘성과’를 본다. 일례로, 과거 KKR은 오비맥주를 인수한 다음 실사를 통해 영업본부장이었던 장인수 전무를 CEO로 선임하고 전권을 위임했다. 그는 고졸 신화, 영업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인물이었다. 오비맥주는 업계 2위에서 1위로 올라섰고 KKR은 5년 만에 4조원의 차익을 올렸다.
한 국내 토종 PEF 관계자는 “과거의 트랙 레코드를 중요하게 참고한다”며 “업계의 평판과 트랙 레코드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C레벨 임원진을 적극적으로 발탁한다”고 말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직책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다면 무엇을 배웠는지 등 경험치와 성과를 중요하게 본다. 또한 평판이 중요하다.
철저한 보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특징이다. PEF들은 기업을 인수한 뒤 임직원 성과 보수 체계에 먼저 손을 댄다. 핵심 경영진의 연봉은 기존의 연봉을 반영하되 철저하게 성과와 연동한다. 연봉과 연말 상여금 이외에도 ‘M&A 보너스’를 챙기는 게 독특한 부분이다. 한 외국계 PEF는 기업 가치가 상승해 성공적으로 매각되면 수익의 일정 부분을 경영진과 임직원들에게 돌려준다. 주요 경영진에게는 차익의 약 3~5%를 돌려준다. 각 딜마다 다르게 적용되지만 많게는 대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해 벌 수 있는 돈을 한 번에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확실한 보상 체계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이 밖에 전체 임직원들에게도 매각 위로금 형태로 성과를 공유한다. 지난해 SK텔레콤에 2조9700억원에 매각된 ADT캡스는 정직원 전원에게 M&A 보너스를 지급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자와 경영진의 이해관계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노력한 부분에 대해 경영진도 보상을 받도록 평가 기준에 상호 합의하는 것이다. PEF와 경영진의 의사소통은 ‘이사회’를 통해 이뤄진다. 경영진과 투자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사회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대기업 총수와 같이 포트폴리오 회사에 적극적으로 간섭하기보다 감독과 선수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될 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전적으로 맡기고 평가와 보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비결이고 평가할 때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진에 대한 평가는 이사회에서 실시하는데 다양한 수치 중에서도 ‘매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현금 흐름’ 등 세 가지 지표가 CEO 평가에서 중요한 항목이다. 특히 EBITDA와 현금 흐름은 M&A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PEF 밸류업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것은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주주·경영진·직원·고객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매출이 일어나고 회사가 커진다. 그렇게 한 번의 성공적인 경험을 하면 일종의 ‘경영 용병’으로 확실한 트랙 레코드가 쌓이는 셈이다. 다른 PEF의 포트폴리오 회사에서 서로 모셔가는 상황이 된다. 일종의 프리미엄이 붙으면서다.
일례로, 과거 어퍼니티의 포트폴리오 회사 중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한 차례 실력을 입증한 신원수 사장은 그 뒤 어퍼니티의 또 다른 포트폴리오의 이사진으로 발탁된 바 있다. 최근 조 단위 딜에 성공한 또 다른 사례로는 오렌지라이프의 정문국 대표, ADT캡스의 최진환 대표가 첫손에 꼽힌다. 코웨이도 딜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앞서 CEO가 한 차례 바뀐 바 있다.
오렌지라이프의 정문국 대표는 과거 알리안츠생명과 에어스생명 등에서 대표이사로 일하며 성과를 입증해 2014년 MBK파트너스에 영입됐다. ING생명의 대표로 취임한 뒤 크게 조직 혁신, 상품 혁신, 디지털 혁신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오렌지라이프는 재무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급여력비율(RBC)이 2014년 388.6%에서 2018년 425%로 업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ADT캡스의 최진환 대표는 컨설팅사를 거쳐 현대카드에서 정태영 사장의 ‘오른팔’로 활약하다가 칼라일그룹의 삼고초려 끝에 ADT캡스에 합류했다. 카드업에서 보안업으로의 이직이었지만 고객 기반의 비즈니스로 고객을 유치하고 상품과 서비스 해지를 최소화하는 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고객 관리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최 대표는 SK텔레콤에 인수된 이후에도 계속해 대표직을 수행 중이다. 새로운 주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CEO는 교체되고 다른 C레벨 경영팀의 70~80%는 남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PEF가 발탁한 CEO들의 면면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산업의 흐름을 잘 이해해야 한다. 둘째는 고객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내부 조직에 팀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중·장기 전략을 잘 짜야 한다. 흔히 ‘재무통’이 선호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재무는 ‘툴’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산업’, ‘고객’, ‘조직’이다. 세 개의 요건이 충족되면 수치는 결과로서 저절로 따라온다는 게 밸류업에 성공한 PEF들의 조언이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9호(2019.04.08 ~ 2019.04.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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