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김종갑 사장, 지원금 끌어오기 안간힘
…“무리한 밀어붙이기보다 지속 가능성 논의 필요” 지적도
한국전력, 재정난 우려에 文 공약 한전공대 추진 동력 ‘흔들’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호남권 ‘제2 포스텍’을 꿈꾸는 한전공대(KEPCO Tech) 사업이 점차 윤곽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호남지역 에너지 특화 대학인 한전공대의 2022년 개교를 목표로 설립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부지 선정에 이어 4월 11일 전남도의회가 ‘한전공대 설립 운영에 따른 지원 동의안’을 처리하며 설립 계획이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주시의회가 4월 18일 나주시의 재정 지원금 1662억원에서 산학연 클러스터 부지 매입비 331억원을 제외하는 내용으로 축소 수정한 재정 지원 동의안을 상정한 후 통과시켜 애초 예상과 달리 지방자치단체 재정 지원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나주시는 대학발전기금 1000억원에 부지 제공 비용 600억원을 합쳐 약 16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었지만 과도한 지자체 재정 부담 우려로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지역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을 둘러싼 타당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설립부터 운영까지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데다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산불 피해에 대해 한전 책임론까지 부상하고 있어 한전이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나온다. 누적 적자로 비상 경영 체제를 가동 중인 한전은 한전공대 설립에 따른 재정난 가중 우려 속에서 개교까지 해결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김종갑 한전 사장이 설립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한전공대 추진 동력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국전력, 재정난 우려에 文 공약 한전공대 추진 동력 ‘흔들’
◆ 한전은 적자, 대학은 공급과잉

한전은 2018년 연결기준 영업적자가 2080억원으로 나타났다. 2017년 영업이익 4조9532억원에서 1년 새 무려 5조원 이상이 증발했다. 한전이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은 2012년 이후 6년 만이다. 이는 연료비 상승과 원전 이용률 하락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올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한전이 작성한 ‘2019년 재무 위기 비상 경영 추진 계획(안)’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영업적자 2조4000억원에 당기순손실 1조9000억원을 전망했다. 한전은 연말까지 ‘재무 위기 비상대책위원회(TF)’를 가동해 약 1조7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해 예상 영업적자를 1조원 이내로 최소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전의 누적 부채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 114조원이 넘어섰다.

한전의 적자 누적으로 한전공대 설립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설립과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렇지 않아도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의 재정에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한전공대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7년 전남도지사 시절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건의한 지역 대선 공약이다. 올해 1월 부영CC 일원 120만㎡를 부지로 선정했다. 대학 40만㎡, 클러스터 40만㎡, 대형 연구 시설 40만㎡ 등이다.

전남도와 나주시는 앞서 4월 3일 한전공대 개교 연도인 2022년 3월까지 10년간 매년 대학발전기금으로 각각 100억원씩 총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재정 지원 방식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설립 당시 울산시가 매년 100억원씩 15년간 1500억원, 울주군이 10년간 500억원을 지원한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2018년 9월 발표된 중간 용역 결과에 따르면 한전공대는 6월 대학 설립 관련 기본 계획 수립, 9월 학교법인 설립, 2020년 도시 계획 변경, 2020년 6월 캠퍼스 건축 허가·착공, 2021년 6월 대학 설립 인가, 2022년 2월 캠퍼스 준공 등의 절차를 거쳐 2022년 3월 개교를 목표하고 있다.

해당 연구 용역을 담당한 컨설팅 회사 AT커니는 당시 ‘(한전공대) 설립 타당성이 매우 크지만 성공적 설립을 위한 방향 설정과 지원이 중요하다’고 결론 냈다. 한전공대는 에너지 분야에서 20년 내 국내 최고, 30년 내 5000명 규모의 세계 최고 공대를 지향한다. 학생 수는 6개 에너지 전공별로 100명씩 계획된 대학원생 600명, 학부생 400명이다. 여기에 외국인 학생을 고려해 플러스알파로 설립된다.

재학생은 입학금·등록금·기숙사 비용 등 학비가 면제되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산학연 클러스터 내 구축 예정인 연구 시설 내 상주 연구 인력까지 고려하면 대학은 5000명 규모로 커진다. 대학을 이끌어 갈 총장은 노벨상급 국제상 수상 경력을 갖고 기업가적 능력과 국제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물을 초빙할 예정이다. 연봉은 미국 톱 수준의 연봉(100만 달러+a)을 제공한다.
한국전력, 재정난 우려에 文 공약 한전공대 추진 동력 ‘흔들’

◆ 제2 수도공대 되나…논란 ‘도돌이표’

문제는 돈이다. 설립에만 최소 5000억원~최대 7000억원이 소요되고 연간 운영비도 600억원이 예상된다. 한전이 재정난 가중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전공대 설립에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액수는 5월께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전 측은 5월 중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 상반기에 기본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한전공대의 지속적 운영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지만 아직 정부 지원 방안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와 특별법 등을 통한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야권의 반발도 부담이다. 자유한국당은 한전공대 설립을 계속 반대해 왔다. 지난 1월 한국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들은 한전공대 설립 추진을 철회하라는 성명서까지 내놓았다.

재원 조달도 문제지만 일부 전문가는 여전히 설립 타당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그리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대학 설립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과기대 특성화대는 광주·대전·포항·대구·울산 등 권역별로 이미 5곳(카이스트·포항공대·광주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울산과학기술원)이나 있다. 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빚더미만 키운다는 비판과 함께 ‘제2 수도공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62년 한전은 전문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서울 마포에 2년제 수도공업초급대학을 설립했다. 이 학교는 1964년 4년제인 수도공대로 개편됐다. 한전공대처럼 학비 전액이 면제돼 인기를 끌었지만 보조금 삭감 등에 따른 재정난을 겪다가 1971년 홍익대에 통합됐다.

교육계에서는 국내에 이미 수십 개의 공대와 특성화 공대가 있고 저출산과 대학 폐교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굳이 무리하게 혈세를 투입해 가며 대학을 늘리는 것에 대해 반론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한전 측은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전공대 설립단 관계자는 “한전공대는 고려할 점이 많고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도 많다. 일반 대학이 아닌 특성화 대학을 만드는 것이므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설립과 운영비용은 아직 변동 가능성이 높아 지금은 소극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학계에선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로 이해관계인과 전문가들 간 의견 수렴 절차가 생략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책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 분야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원자력발전이 중단된 상태라 한전의 적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오피니언 리더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호 이해를 통해 대안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설립뿐만 아니라 설립 이후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해관계인들이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