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폭발적 반응, 기업가치 40억 달러로 성장…수익원은 맞춤형 금융상품 광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세계적인 투자은행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주주 연례 서한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업체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위기의식을 전한 바 있다. 정보기술(IT) 신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업체들은 기존 금융시장의 ‘빈틈’을 파고들며 소비자들이 금융 서비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 놓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 동력은 ‘금융 데이터 공개’다. 거대한 금융회사들이 쥐고 있었던 고객들의 금융 정보를 ‘고객들의 손’에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업체가 미국의 핀테크 기업 크레디트카르마다. 개인들에게 무료로 신용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 금융 상품을 추천한다.
◆8500만 회원 미국 시장 ‘필수 앱’ 등극
국내에서는 아직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미국인 8500만 명이 사용하는 핀테크 업체의 대표 주자다. 2006년 설립 이후 현재 기업 가치만 4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마이 데이터 사업’과 관련해 국내 금융업계에서 롤모델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신용 등급’은 개인의 모든 금융 생활의 기반이 된다. 주택을 구입할 때 필요한 모기지론의 이자율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신용 등급 발급 여부 등이 모두 이 개인의 ‘신용 등급 점수’를 기반으로 결정된다. 심지어 취직할 때도 바로 이 개인의 신용 점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용 점수가 650점 이하면 금융 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는 위험 등급으로 분류되는 반면 신용 점수 800점 이상은 신용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 받곤 한다. 개인의 신용 점수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광범위한 만큼 최근에는 ‘신용 점수 800점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민감하게 관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신용 점수 800 클럽’이라는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해 신용 점수를 높게 유지하기 위한 노하우와 개인 경험 등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가장 자주 들르는 사이트는 다름 아닌 크레디트카르마다. 크레디트카르마는 개인의 신용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다. 고객들은 크레디트카르마를 통해 자신들의 신용 등급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고 신용 등급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들에 대한 조언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정보가 ‘공짜’라는 점이다. 신용 정보의 ‘공짜’ 조회가 미국 내에서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 개인 신용 정보의 영향력은 이처럼 막대한 데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자신들의 신용 정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3년 미국 의회는 ‘1년에 한 번 자신들의 신용 평가 보고서를 무료로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그마저도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 외에 추가로 개인 신용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개인 신용 등급 평가 업체들에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 또한 큰 걸림돌이었다.
크레디트카르마가 파고든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물론 크레디트카르마 전에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크레디트카르마와 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 다름 아닌 ‘무료’로 개인의 금융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업체들은 약간의 비용을 고객들로 제공 받거나 혹은 공짜를 내세우더라도 엄밀히 말해 공짜가 아니었다. 개인의 신용 등급 관련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특정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걸려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크레디트카르마는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면 개인 신용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첫 사이트 등록 당시 ‘개인 고객의 e메일과 이름, 주소 그리고 사회보장번호의 마지막 숫자 4자리’를 기입하면 간단한 본인 인증 절차가 이뤄진다. 신용 등급 관리에 애를 태우고 있던 미국인들에게는 크레디트카르마가 ‘쉽고 간단한 데다 공짜’로 까다로운 신용 등급을 관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였던 셈이다.
◆맞춤 ‘금융 상품 추천’, 수익 창출
“누구나 자신의 금융 정보를 손쉽게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고객의 금융 정보를 ‘고객의 손’에 돌려주는 겁니다.” 크레디트카르마의 창업자이자 CEO인 케네스 린이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줄곧 강조하는 내용이다.
중국 출신의 케네스 린 CEO는 4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주해 왔다. 보스턴대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스타트업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다양한 업종의 창업을 시도하며 연쇄 창업가로 경력을 쌓았다. 크레디트카르마 창업 이전에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 에이전시 멀티리틱스 마케팅(Multilytics Marketing)을 창업한 이력이 있고 금융 서비스 회사인 이론(E-Loan)에서 리서치 분석팀 디렉터를 지내기도 했다. 2007년 크레디트카르마 설립 후 2008년 개인 신용 정보 확인 서비스를 처음으로 고객들에게 선보였다. 린 CEO가 크레디트카르마를 창업할 당시 가장 먼저 주목했던 문제의식은 ‘금융 정보의 비대칭성’이었다. 금융 정보는 개인의 정보들 가운데서도 가장 민감한 정보다. 그중에서도 ‘신용 등급’은 이와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두드러지는 분야였다. ‘신용 등급’이라는 제도 자체가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의 관점에서 설계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 고객들은 신용카드 발급이나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금융회사들의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개인 고객들이 겪는 이와 같은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크레디트카르마는 신용 등급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를 위해 ‘무료로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원칙은 포기할 수 없는 전제 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크레디트카르마는 어떻게 개인 고객들에게 신용 등급과 같은 금융 정보를 무료로 제공할 수 있을까. 린 CEO는 “크레디트카르마는 신용 정보 업체가 아니고 이와 같은 정보를 지닌 금융사와 고객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크레디트카르마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크레디트카르마는 미국의 3대 신용 평가 업체 중 2개인 트랜스유니언(TransUnion)·에퀴팩스(Equifax)와 제휴, 이들 업체가 제공하는 개인의 신용 정보를 개인 고객이 열람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더욱이 1주일에 한 번씩 신용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때문에 개인 고객들이 자신의 신용 점수가 어떻게 변동하고 있는지 조금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 고객들이 직접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신용 정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신용 정보와 관련해 중요한 변동이 생겼을 때 ‘알림 e메일’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크레디트카르마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순히 개인들의 신용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개인의 금융 정보를 분석한 다음 특히 어느 부분의 관리가 취약한지, 어떻게 해야 신용 등급을 개선할 수 있는지 등의 조언을 덧붙인다.
크레디트카르마에 ‘돈이 되는 고객’은 따로 있다. 개인 고객들에게는 철저하게 무료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금융회사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크레디트카르마가 이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다름 아닌 광고다. 크레디트카르마는 개인의 신용 정보를 바탕으로 금융 조언을 제공하며 이와 함께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금융 상품’도 추천한다. 만약 고객이 추천 받은 금융 상품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실제로 구매로까지 연결된다면 금융회사가 그에 대한 수수료를 크레디트카르마에 지불하는 형태다.
금융회사에도 크레디트카르마는 자신들의 상품 광고를 내보내기 위한 매우 혁신적인 채널 중 하나다. 개인 고객들의 신용 정보를 바탕으로 그 어느 곳보다 ‘세분화되고 타깃화된’ 광고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예로, 신용 점수가 우수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상품을 광고할 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미디어 광고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애초에 대출 받을 수 없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크레디트카르마는 이와 같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다수의 우량 고객들에게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크레디트카르마의 분석에 따르면 월 방문자 가운데 대략 30% 이상의 고객들이 추천 받은 융자 상품 등에 가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 채널로서 크레디트카르마의 높은 효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금 등 서비스 확대, ’자산 관리’ 방점
28세의 청년 매트 씨는 신용카드를 처음 발급한 이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43세의 본다 씨는 몸이 아파 직장을 잃고 재정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들은 크레디트카르마를 통해 자신의 신용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면서 잘못된 카드 소비 습관을 바로잡고 경제적 자산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15년 크레디트카르마에서 진행한 ‘마이 머니 스토리(My Money Story)’에 소개된 사연들이다.
개인 신용 정보를 조회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크레디트카르마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비단 금융 정보 조회 서비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그보다 개인들의 ‘자산 관리 서비스’에 더욱 방점을 찍고 있다.
이는 최근 크레디트카르마의 성장사를 보면 더욱 선명해진다. 2015년 12월 모바일 알림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인 스노볼을 인수한 크레디트카르마는 2016년 원프라이스택시즈닷컴(OnePriceTacex.com)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AFJC코퍼레이션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뒤이어 유실 자산 회수 서비스인 ‘클레임독(Claimdog)’을 인수하며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폭을 대폭 확장해 나갔다. 실제로 크레디트카르마는 2016년 세금신고서 작성 서비스에 이어 2017년 유실 자산(Unclaimed money) 찾기 서비스를 새롭게 출시했다.
미국의 세금 납부는 신용 정보 확인만큼이나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회계사를 고용해 이와 같은 세금 납부 문제를 해결해 왔다. 크레디트카르마는 이처럼 복잡한 세금신고서 작성 등을 대행해 주는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
유실 자산 찾기 서비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개인 고객이 찾아가지 않는 유실 자산은 특정 기일이 지나도 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 이를 주 정부에 넘기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바쁜 개인 고객들이 이와 같은 유실 자산을 일일이 확인하고 회수하기는 불가능하다. 크레디트카르마는 유실 자산 찾기 서비스를 통해 개인 고객들이 이를 손쉽게 확인하고 자산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이 역시도 모든 서비스 이용은 공짜다. 최근의 행보도 ‘자산 관리 플랫폼’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준다. 2018년 개인 자산 관리 업체인 ‘페니(Penny)’와 모기지(주택 담보대출) 플랫폼 어프로브드(Approved)를 인수한 데 이어 가장 최근인 2019년 5월 영국의 무료 신용 정보 플랫폼인 노들(Noddle)을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크레디트카르마의 수익원은 고객들의 금융 데이터 분석에서 나온다. 이와 같은 서비스 확대를 통해 개인 고객들의 ‘신용 정보’와 ‘세금 정보’는 개인의 금융거래 기록 가운데서도 가장 민감하고 파워풀한 정보다. 유실 자산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크레디트카르마가 고객에게 무료로 금융 정보를 보여주는 대신 손에 쥐게 되는 데이터가 ‘방대’하고 ‘민감’할수록 이를 분석한 금융 상품 맞춤 광고의 정확도와 효율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 광고 채널로서 크레디트카르마의 입김 또한 세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고객들의 민감한 정보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나타내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린 CEO는 “크레디트카르마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개인 고객들이 신용 등급 관리를 통해 돈을 절약할 수 있고 금융회사는 고객을 얻을 수 있고 우리는 돈을 벌 수 있다”며 “모두 윈-윈-윈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돋보기= ‘마이 데이터’ 뭐길래, 금융 생활 어떻게 변할까
최근 국내 금융업계에서 ‘크레디트카르마’와 같은 핀테크 업체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정부가 추진 중인 ‘마이 데이터 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마이 데이터 산업은 쉽게 말해 각 기관마다 분산돼 있는 개인의 금융거래 정보를 ‘한눈에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곳에 모으는 사업을 말한다. 현재 개인들이 금융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은행·보험사·카드사·통신사 등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금융회사들이 개인의 금융 정보를 보유,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 데이터 사업이 시행되면 개인들은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통해 이와 같은 각 금융회사들의 정보를 한 번에 열람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시행 중인 핀테크 서비스 중에서는 레이니스트에서 운영 중인 ‘뱅크샐러드’가 가장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혁신 경제’의 일환으로 2023년까지 국내 데이터 시장을 30조원 규모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에 힘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 혁신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 중 하나가 ‘마이 데이터 사업’인 셈이다. 하지만 마이 데이터 사업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넘어서야 할 산이 있다. 소위 ‘데이터 경제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의 개정이다.
그중 국내에서도 ‘크레디트카르마’ 같은 사업 모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용정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개정안에는 신용조회업과 구분되는 ‘본인 신용정보 관리업’을 별도로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마이 데이터 사업자를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의 ‘금융 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에서 시작된 기존 은행권의 금융 결제망 개방 등의 움직임도 기대감을 더하는 요인이다. 금융 결제망을 시작으로 향후 금융 정보가 개방된다면 다양한 핀테크 업체들을 통한 서비스 혁신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민정 자본시장연구원은 “향후 금융 데이터의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SNS와 위치 정보, 의료 정보 등의 다른 데이터까지 결합된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따라 금융 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이와 같은 긍정적인 기대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보 보안과 관련한 철저한 안전과 보안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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