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롯데·신세계, 골목상권 침해 논란 ‘딜레마’
…펫숍,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가능성도
롯데·신세계, 유망 신사업에서 계륵이 된 ‘펫 비즈니스’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유통 대기업인 롯데와 신세계가 야심차게 추진 중이던 반려동물 분야 사업 성장세에 적신호가 켜졌다. 수년 전부터 지속돼 온 골목상권 침해 논란 속에 반려동물 관련 사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에 앞서 대기업과 소상공인 등 이해관계인들이 동반성장위원회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상생 협약을 진행 중인 가운데 이 협약에 대기업의 신규 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펫 비즈니스가 ‘계륵’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상생 협약, 롯데는 수용·이마트 ‘난색’

반려동물 분양을 비롯해 관련 용품 판매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펫숍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단체인 한국펫산업소매협회(펫소매협)는 2018년 6월 롯데와 신세계 등 대기업의 반려동물 관련 사업 진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펫숍 소매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동반위에 신청했다.

중기 적합업종은 중소기업이 하기에 적합한 업종을 지정해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취지로 2011년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동반위는 적합업종 지정 논의에 앞서 지난해 10월 실태 조사를 마친 후 대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 등 업계 의견을 수렴해 올해 1월 자율적인 상생 협약을 유도하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절충안에는 영세 소상공인과 대·중소기업의 사업 범위와 확장 제한 범위 등 가이드라인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펫소매협의 요구 사항은 △이마트 ‘몰리스 펫숍’, 롯데마트 ‘펫 가든’ 등 대기업의 대형 점포 확장 자제 △다이소·올리브영·GS25 편의점 등에서 판매 중인 반려동물 용품 품목 제한 △쿠팡·다이소·위메프 등 온라인몰의 반려동물 용품 판매 제한 등이다.

펫소매협 관계자는 “대기업의 시장 확장 속도가 거세지면서 영세한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생계 곤란을 호소하는 곳이 늘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기존에 하던 것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확장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반위 관계자는 “적합업종 지정에 앞서 상생 협약을 유도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협약으로 갈지 권고 사항(적합업종 지정)으로 갈지는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상생 협약을 수용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상생을 위해 펫가든을 더 확장할 계획이 없고 현상 유지 또는 축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마트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상생 협약에 전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몇 가지 있어 반대라기보다 현업에서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가 상생 협약 도출에 실패하면 동반위는 6월 말 개최되는 전체 회의에서 중기 적합업종 지정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펫 산업 분야의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골목 상권 침해 논란 때문에 펫 사업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어려웠는데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사실상 사업 확장이 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펫숍이 중기 적합업종을 넘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펫소매협은 대기업의 반려동물 사업 진출과 확장을 사실상 원천 봉쇄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추진 중이다.

펫소매협 관계자는 “현재 생계형 적합업종법에 따르면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아닌 경우 생계형 적합업종으로도 신청할 수 없는데 절차상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보호가 필요한 업종에 대해서는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펫소매협은 올해 4월 소상공인 상생 현장 간담회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만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2018년 12월 도입된 생계형 적합업종은 권고 사항인 중기 적합업종과 달리 법적 강제력이 있는 규제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해당 업종에는 대기업이 5년 동안 진입할 수 없다. 위반하면 시정 명령, 매출 5% 이내의 이행강제금 부과 등 강제적인 조치가 내려진다. 중기 적합업종이 아니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할 수 없어 펫소매협은 먼저 중기 적합업종을 추진한 후 생계형 적합업종을 추진할 방침이다.

펫숍이 중기 또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롯데·신세계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사업을 하는 모든 대기업이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다른 대기업들도 펫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에 들어서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펫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9000억원에서 2018년 3조원으로 추산된다. 2027년에는 6조원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원·빙그레·하림·풀무원 등 식품 기업들은 펫 푸드 시장에 진출했고 LG생활건강은 반려동물용 세정제 사업을 전개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 밖에 쇼핑몰과 호텔은 돌봄과 관리, 카셰어링 업체 쏘카는 반려동물 동반 고객을 겨냥한 이동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관련 사업 영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롯데·신세계, 유망 신사업에서 계륵이 된 ‘펫 비즈니스’

◆ 대기업 막는 적합업종 제도, 실효성 논란


대기업들의 사업 확장 추세에 영세 소상공인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펫숍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대형 전문점 형태의 이마트 몰리스 펫숍과 롯데마트 펫가든을 위협적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반려동물 이름인 ‘몰리’에서 이름을 따온 ‘몰리스 펫숍’을 2010년부터 대형마트와 트레이더스·스타필드를 포함한 전국 35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롯데마트도 2012년부터 카테고리 킬러형 매장인 펫가든을 전국 14개 매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반려동물 용품 판매뿐만 아니라 분양·호텔·미용·장례·관리업 서비스 등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롯데마트는 분양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2016년 불법 사육장인 ‘강아지 공장’이 사회 이슈가 되면서 펫숍 분양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분양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입양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적합업종 제도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지난 5월 외식업계가 음식점업을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지 않고 대기업과 상생을 택하면서 중기·생계형 적합업종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그동안 이 제도를 통해 강제적으로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았지만 소상공인의 경영난이 해소된 사례를 찾기 어렵고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 침해와 업계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문구류가 중기 적합업종이 되면서 대형마트에선 묶음 판매만 허용한 결과 소상공인 보호는커녕 곁가지로 다이소가 가장 큰 반사이익을 누렸다”며 “대기업 펫숍 규제가 결국 다른 중견업체나 외국계 기업이 엉뚱하게 수혜를 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은 용품과 서비스만으로는 매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분양부터 케어·용품 판매 등이 모두 연관된 비즈니스인데 이 중 일부만 할 수 있게 되면 대기업이 하기에 상당히 모호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점포 안에 있는 동물병원이나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숍 운영 주체는 대기업이 아닌 임차인으로 들어온 자영업자들”이라며 “적합업종 제도는 이들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