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야 실익 챙겨…누구나 약점이 있다는 사실 기억해야

‘양의 모습을 하면 잡아먹힌다’…강자와 협상에서 이기는 법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세상에 쉬운 협상은 없다. 특히 협상에서 상대방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강자와의 협상’은 거의 절망 수준이다. 다른 대안이 없어 상대의 요구들을 수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가진 것을 다 내줬다면 영원한 약자다. 노련한 협상가는 힘의 균형을 뒤집기 위해 몇 가지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종종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강자와의 협상에서 조금 더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어떤 전략을 내세워야 할지 알아본다.

◆‘지피지기’가 승패를 가른다

한국프레임은 자전거 프레임 전문 생산 업체다. 품질은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최근 3년간 매출이 정체된 상태다. 자전거는 계절성이 강하다. 비수기에도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창원공장 카본 프레임 생산 라인은 거의 멈춰 있다.

그런데 지난 주 바이키라는 자전거 생산 업체로부터 납품 제안을 받았다. 이 회사는 업그레이드된 신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자금력이 탄탄한 회사이기 때문에 계약이 성사되면 안정적인 거래가 예상된다. 영업팀장이 구매 담당자를 만나 협상을 시작해 보니 역시 납품 단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대당 26만원을 제시했지만 상대는 20만원으로 낮추고 납기마저 빠듯하게 요구한다. 대당 20만원으로는 남는 게 없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영업본부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더니 공장을 세워둘 수 없으니 이번 납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바이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바이키의 내부 상황도 한 번 들여다보자. 바이키 역시 구매 담당자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번에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신모델을 출시해야 하는데 협력 업체가 골치를 썩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저렴해 개발을 맡겼던 중국 업체가 6개월이나 지나 최근 갑작스럽게 납품을 못 한다고 통보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관여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품질·납기·가격 어느 것 하나 빠뜨릴 수 없다. 기술개발팀 도움까지 얻어 수소문한 끝에 한국프레임을 겨우 찾아냈다. 다른 경로를 통해 파악해 본 결과 품질이 우수했고 게다가 창고에 쌓아둔 재고도 충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시가 급한 마음에 바로 견적 제출을 요청했다. 협상장에 나타난 한국프레임 영업팀장은 다소 빡빡한 납기 일정과 함께 대당 26만원을 제시했다.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목표 가격과 완제품 출시 기한을 맞춰야 했다.

구매 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짐짓 여유 있는 태도로 일관했다. 프레임을 제조하는 경쟁사 몇 군데를 거론하며 가격과 납기를 맞추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후 협상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바이키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프레임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납기는 맞출 수 있지만 단가 20만원은 남는 게 없다며 하소연했다. 이에 바이키는 상대가 혹할 당근을 하나를 제시했다.

프로젝트 전체 기간이 3년이니 프레임 납품 계약을 1년이 아닌 3년으로 장기 계약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그러자 상대는 그 자리에서 회사에 전화를 걸더니 밝은 표정으로 납기는 물론 단가도 맞춰 주겠다고 했다.

이 협상으로 바이키 구매 담당자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내부 상황은 사실 녹록하지 않았다. 믿었던 중국 업체가 납품을 포기하는 바람에 한국프레임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자칫 프로젝트는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었고 개인에게도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를 상황이었다. 바이키도 따지고 보면 한국프레임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상대를 압박한 결과 바이키는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협상 시작 전 미리 파악했던 내용을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프레임은 자사의 매출 확보에만 몰입돼 고객사의 내부 상황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야 실익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 회사의 재무·생산·영업·제품 개발 등 가능한 한 정보를 많이 확보해야 유리하다. 바이키 구매 담당자는 이를 미리 조사해 활용했지만 한국프레임 영업팀장은 그렇지 않았다. 협상 준비에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바이키 역시 한국프레임과 마찬가지로 내부 사정이 절박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상대가 왜 나와 협상하려고 할까’, ‘그들이 내게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등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그는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를 은근히 압박해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협상은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갑이라도 준비가 불충분하다면 을에게 밀릴 수 있다.

협상력은 실제로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상대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두 회사의 사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바이키에도 약점이 있었다. 한국프레임의 협조가 절실했다.

하지만 구매 담당자는 내색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상대를 압도했다. 반면 한국프레임 영업팀장은 매출 부진과 장기 계약에 목마른 나머지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엄밀하게 따져 보면 둘 다 약자다. 하지만 어떤 태도를 상대에게 보여 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던 것이다.

◆전략 없는 협상이 ‘약자’를 만든다

이제 본론을 얘기할 차례다. 협상의 칼자루를 상대가 쥐고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디팩 맬호트라 교수와 맥스 베이저먼 교수는 저서 ‘협상 천재(Negotiation Genius)’에서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때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자신이 약자라는 것을 밝히면 안 된다. 약점을 밝히고 결과가 좋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이유에서다. 협상 속담에 ‘양의 모습을 하면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상대는 우습게 보고 쥐어짜려고 할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두 사람 모두 약자다. 다른 대안이 없다. 하지만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인 구매 담당자와 스스로 위축된 영업팀장의 협상 결과는 달랐다.

둘째,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상대에게도 약점은 있다. 겉으론 태연해 보여도 조금만 파보면 다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상대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다.

‘왜 나와 협상하려고 할까’ 하고 유추해 봐야 한다. 분명히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상대가 당신에게 필요로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만약 협상이 깨진다면 상대는 어떤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래처를 변경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의 내부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뛰어난 협상가의 태도다. 아마추어는 자신의 상황에만 집중하지만 프로는 상대의 상황에 더 집중한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셋째, 당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무기를 활용해야 한다. 당신에게는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협상 테이블 위에 내놓아야 한다. 굳이 ‘낮은 가격’일 필요는 없다. 품질이 더 우수하거나 양질의 서비스, 좋은 명성, 강한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남들과 다른 차별점을 올려놓고 협상의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상대가 꿈쩍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협상 테이블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무기를 보여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 겉으론 그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가능성이 많다. 당장은 아니지만 상대의 인식은 서서히 바뀌고 있을 것이다.

넷째, 우군을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회계사·변호사·저명한 교수 등)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당신의 취약한 점을 보완해 주고 당신이 빠뜨렸던 점을 짚어 줄 것이다.

또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업체나 이해관계인(공동투자자·바이어·파트너 등)을 끌어들이자. 상황에 따라 언론이나 사회적인 여론 형성도 도움이 된다. 같은 목소리도 여러 명이 함께 낸다면 상대에게 주는 임팩트가 다르다.

다섯째, 때로는 얼마 안 되는 힘조차 모두 버려라. 상대는 때때로 가격·납기·서비스 조건에 대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수도 있다. 약자라면 강자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맬호트라 교수는 상대 요구를 가감 없이 수용하라고 한다. 일단 물러서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냥 물러서지 말고 딱 한마디만 남기라고 한다. 요구 조건으로 인해 어려워지게 될 속사정을 숨김없이 말하는 이른바 메시지를 던지라는 것이다.

다소 억울한 마음, 타결 결과를 보고했을 때 자신의 처지 등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얘기다. 이어 상대가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굉장히 고마울 것이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 메시지는 상대에게 승리감과 함께 미안함을 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관철됐다는 승리감 그리고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는 미안함 말이다. 그러면 누가 알겠는가.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이 수정된다든지, 또는 다른 거래로 보충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장의 이익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이익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와의 거래는 일회성이 아니고 계속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 대목에서 일부 사람들은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다. 그게 먹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속에는 힘에 관한 중요한 ‘통찰’이 숨어 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면 힘을 과시하는 것을 그만두고 차라리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대든다면 상대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기려고 덤비면 상대도 맞서 싸울 것이다. 약자에게 이런 패턴은 참담한 결과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싸우거나 공격적으로 협상할 의도가 없다고 분명히 하면 상대방 역시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약점을 가진 자가 약자가 아니다. 약점을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약자다. 약점과 정면으로 승부해 약점의 한계를 넘는 사람이 강자다. 주어진 약점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자세가 강자와 약자를 가른다. 약해서 약자가 아니라 전략이 없어서 약자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8호(2019.06.10 ~ 2019.06.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