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인천국제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을 나오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청라국제도시 초입에 자리한 ‘하나금융타운’이다. 2015년 1단계로 하나금융그룹 통합 데이터센터가 이곳에 들어섰고 그 맞은편에 지난 5월 2단계로 문을 연 그룹의 연수 시설인 ‘하나 글로벌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3단계 사업으로 향후 이곳에 ‘금융전략기획본사’를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바로 인천 청라 통합데이터센터에서 ‘디지털 비전 선포식’을 열고 “전통적인 금융그룹의 모습에서 탈피해 데이터 기반 회사로 변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로 그 새로운 비전이 이곳 청라의 ‘하나금융타운’에 다 담겨 있는 셈이다.
◆“금융그룹의 미래, ABCD에 달렸다”
지난해 3월 3회 연임에 성공한 김 회장은 올해로 8년째 하나금융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 회장은 그동안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작업을 비롯해 굵직한 고비를 넘기며 오늘에 이르렀다. 위기의 순간마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살려내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 덕분이다.
지난해 하나금융그룹 설립 이후 최대 실적(2018년 연결 당기순이익 2조2402억원)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김 회장은 상승세를 이어 가기 위해 ‘데이터 혁신’에 힘쓰고 있다. ‘손님의 기쁨, 그 하나를 위하여’라는 하나금융그룹의 기본 철학을 바탕으로 디지털 채널 비율을 향후 40%까지 대폭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2017년 말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미래금융R&D본부·미래금융전략부·글로벌디지털센터를 신설해 ‘디지털 금융’에 확실한 무게중심을 실었다. 그중에서도 하나금융그룹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반을 미래금융전략부에서 총괄하고 있다. 이와 함께 2018년 초부터 하나금융그룹의 ‘디지털 전환 특화’ 조직인 DT랩(Digital Transformation Lab)을 따로 구성해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DT랩 내부에 데이터만 관리하는 데이터 전담 조직도 신설했다. 정보통신기술(ICT) 계열사인 하나금융티아이 산하의 DT랩은 지난해 10월 ‘하나금융융합기술원’으로 확대 개편됐다.
그룹 전반에 걸쳐 인공지능(AI)·빅데이터·블록체인 등 미래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전략을 실행해 나가는 데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100억원을 투자한 이곳 하나금융융합기술원에는 현재 AI와 빅데이터 관련 석박사급 인력 40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나금융융합기술원장은 2018년 초 하나금융에 영입된 김정한 최고데이터책임자(CDO)가 맡고 있다. 김 CDO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장 출신으로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이용한 메모리(SSD) 시장 1위를 달성하는 데 주역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현재 하나금융그룹의 미래를 ‘머니 뱅크’가 아닌 ‘데이터 뱅크’로 만들기 위해 기초 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 회장은 데이터 혁신을 위해 줄곧 ABDC를 강조해 왔다. A(인공지능), B(블록체인), C(클라우드), D(데이터)를 일컫는 말이다. 이를 위한 하나금융그룹의 전략은 ‘H-ABCD’다. H는 하나금융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휴머니티’의 의미도 담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데도 중심은 ‘사람’, 즉 고객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6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먼저 AI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활 속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손님 동반자적 ‘금융 비서형’ 서비스를 구현하고 둘째, 오픈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기술과 외부 제휴를 통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부동산·자동차·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활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셋째, 클라우드와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인 GLN(Global Loyalty Nework)을 통해 오픈 월렛(Open Wallet : 완전 개방형 전자지갑) 모형의 글로벌 페이먼트 허브를 만들어 나가는 한편 인도네시아에서 라인 메신저를 활용한 디지털 뱅크 사업을 개시할 계획이다. 넷째, 핀테크 기업들과의 상생 생태계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다섯째,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자산 규모와 상관없이 어느 손님에게나 맞춤형 자산 관리 서비스를 통한 자산 증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기반의 포용적 금융을 선도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금융의 혁신 성장과 포용 성장을 주도하며 손님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준비해 나간다는 목표다.
◆글로벌과 디지털, 두 마리 토끼 잡는 ‘GLN’
그중에서도 최근 김 회장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국내 최초의 전자 지급 수단 해외 결제 시스템인 GLN 서비스다. 서비스를 개시하기까지 김 회장이 4년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김 회장이 지난 5월 글로벌금융학회 정책 심포지엄 행사 이후 “인수·합병(M&A)보다 핀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GLN 사업 확대에 힘쓸 것”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보인 바 있다.
GLN을 통해 김 회장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단초가 되는 것은 2015년부터 운영 중인 국내 최초의 금융그룹 통합 멤버십 서비스 ‘하나멤버스’다. 하나은행을 포함해 하나금융그룹 6개 관계사의 다양한 금융거래와 제휴사 혜택이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앱)’에 결합돼 있는데 현재 누적 회원 수가 약 1600만 명에 달한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사나 하나멤버스를 이용하면 ‘하나머니’가 적립되고 또 계좌 연결을 통해 하나머니를 자유롭게 충전할 수 있어 송금·결제·환전·전용 금융 상품 가입 등 생활에 필요한 금융 서비스는 물론 각종 쿠폰·룰렛·하나머니GO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단순한 금융 서비스 앱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생활 금융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GLN은 이와 같은 서비스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나금융그룹의 GLN은 전 세계 14개국 총 58개사가 파트너십을 갖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금융회사와 유통회사 등 포인트 사업자들의 디지털 플랫폼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현금·포인트·마일리지와 같은 디지털 자산으로 결제·송금은 물론 인출까지 할 수 있는 ‘글로벌 허브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고객들의 지갑을 디지털 플랫폼의 형태로 연결하는 것을 넘어 해외 고객들까지 하나의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포부다. 해외 어디서든 ‘하나머니’로 결제가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GLN 서비스는 하나금융그룹 통합 멤버십 ‘하나멤버스’ 앱 또는 제휴사 자체 앱에 탑재돼 있어 별도의 설치나 가입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실시간 국가별 환율이 자동 적용돼 환전 절차 없이 편리하게 선불이나 직불로 결제할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4월 23일 대만 결제 서비스 오픈을 시작으로 태국에서도 5월 결제 시스템을 오픈했다. 간단한 예로, 여행 떠나기 전 환전이 필수로 여겨졌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나멤버스 사용자라면 환전 없이도 ‘하나머니’를 통해 주요 가맹점에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대만에서는 최대 면세점인 에버리치면세점과 자판기, 전통시장인 야시장 내의 가맹점들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향후 순차적으로 대만 최대 편의점인 훼미리마트, 대형마트인 RT마트, 대만 대형 백화점 체인 신광미츠코시백화점, 택시조합인 대만 대차대 등 주요 가맹점에서도 쉽고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조만간 하나금융그룹을 이용하지 않는 고객에게도 이와 같은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거래는 달러 기준으로 1회 600달러까지 가능하다.
하나금융그룹은 연내에 베트남·일본·싱가포르·홍콩 등에서도 결제 서비스를 오픈하기 위해 활발히 논의 중이다. 지난 7월 3일에는 토스를 운영하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토스가 GLN 플랫폼에 공식 참여하는 등 향후 확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토스앱에 하나금융그룹의 GLN이 탑재되는 만큼 향후 토스 사용자들 또한 토스 앱을 통해 별도의 설치 없이 손쉽게 GLN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하나금융그룹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국내를 넘어 해외 고객까지 서비스 대상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일본의 고객이 대만의 면세점에서 GLN 서비스를 통해 편리하게 결제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을 불러오겠다는 것이다.
GLN 서비스는 하나금융그룹이 현재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사업’이 하나금융그룹의 미래 비전 속에서 어떻게 하나로 맞닿을 수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서비스인 셈이다. 하나금융그룹은 2025년까지 글로벌 이익 비율 4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글로벌캠퍼스’…디지털 인재 육성
하나금융그룹이 ‘머니 뱅크’에서 ‘데이터 뱅크’로 전환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 인재 육성이다. 하나금융그룹의 디지털 전환에서 김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금융그룹은 현재 1800명 수준인 통합데이터센터 인력을 향후 3500명까지 확대하고 정보기술(IT) 관련 인력과 현업 직원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5월 오픈한 청라의 ‘하나글로벌캠퍼스’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하나글로벌캠퍼스 오픈 기념식에 참석한 김 회장은 “이곳은 고객 중심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의 초석이 될 디지털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라며 “전 세계 하나금융그룹 임직원들이 지식과 경험을 소통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허브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글로벌캠퍼스는 KEB하나은행·하나금융투자·하나카드 등 그룹 전 계열사와 관계사, 전 세계 24개국 190개 글로벌 네트워크의 임직원을 위한 교육 시설로 전 세계 하나금융그룹 인재들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글로벌 허브이자 디지털 인재 육성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부지만 17만6107㎡(약 5만3000평) 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다. 이와 함께 그룹 IT 신기술 사관학교 등 ‘IT 전문 교육’을 통해 매년 200명 이상의 전문 인재를 육성하는 등 디지털 인재 육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는 은행 업무를 하는 누구라도 IT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김 회장의 믿음을 바탕으로 내부 임직원들의 디지털 역량을 기르는 데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전 직원에게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업계 최고의 전문가와 교수들을 모셔와 핵심 인력과 일대일 멘토링 교육을 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최근 신설된 ‘융합형 데이터 전문가(DxP)’과정이다. 하나금융그룹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김형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외 서울대 통계학과·산업공학과·융합과학기술 대학원 등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학과의 교수진이 참여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의 수익 창출이 가능한 영역을 중심으로 그룹 관계사의 우수 직원을 선발한 뒤 심층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현업에서 벗어나 약 4개월간 전일 집합교육을 통해 집중 연수를 받게 될 예정이다. 교육과정을 거친 인재들은 향후 하나금융그룹의 모든 분야에서 혁신 사업 발굴부터 기술 개발, 구현, 적용·운용에 이르기까지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업·벤처 투자 확대…3년간 30조원
디지털 인재 육성에서 내부 임직원들의 IT 역량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하나금융그룹에서 중요하게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이다. 김 회장이 목표로 하는 ‘고객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혁신’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손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은 2015년부터 KEB하나은행을 통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하나 원큐 애자일 랩(원큐랩)’을 운영하며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한 경험이 있다. 실제로 이를 통해 하나금융그룹의 디지털 전환에 성공적인 협업으로 연결된 사례도 적지 않다. 원큐랩 4기 출신인 ‘마인즈랩’과 AI 대화형 금융 플랫폼 ‘하이(HAI) 뱅킹’을 공동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성공 사례를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모험 자본 활성화를 통해 혁신 금융에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하나금융그룹의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그룹 차원에서 ‘혁신금융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창업과 벤처기업의 ‘혁신 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협의체다. 김 회장이 직접 의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밖에 하나금융 계열사의 주요 임원 17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협의회 산하에는 ‘기업여신시스템개선협의회’와 ‘창업벤처투자협의회’ 등 2개의 분과협의회가 운영된다. 기업여신시스템개선협의회는 일괄 담보 제도 정착, 기술 평가와 신용 평가의 일원화 등 기업 여신 시스템 혁신과 관련 대출 지원 확대를 담당하게 된다. 창업벤처투자협의회는 직간접 투자와 펀드 조성 등 ‘모험 자본 공급 확대’를 맡게 된다. 이번 혁신금융협의회 출범을 계기로 혁신금융 지원을 향후 3년간 20조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통합 취급 금액은 30조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작년 말 설립된 벤처캐피털 ‘하나벤처스’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제1호 펀드인 ‘하나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펀드’를 1000억원 규모로 결성했는데, 회사 설립 후 첫 펀드를 1000억원 규모로 조성하는 것은 국내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하나금융그룹이 550억원을 출자했다. 민간 부문 투자를 활성화해 혁신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하나금융그룹의 강력한 의지를 보인 부분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출범식에서 “혁신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하나벤처스를 통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하나벤처스는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2019.07.15 ~ 2019.07.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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